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아 moi Nov 03. 2023

물(水) 속성 고양이

맞니? 힝구야?


 힝구 인생, 1년 차, 아직 목욕은 경험해 보지 못했다. 원래 계획으로는 힝구 탄생 1년을 맞아, 힝구에게 목욕을 경험하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잦은 기침과 콧물 등의 증상을 보였고, 혹여나 약해진 면역력에 목욕이 영향을 줄까 염려되어, 힝구의 목욕을 미뤘다. 힝구가 물을 제대로 경험할 일은 자신이 마시는 물 정도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호흡기가 약해서 허피스일 수도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힝구가 지난번보다도 심하게 온몸을 들썩이며 기침하는 것이었다. 수의사 선생님께서는 잦은 약 처방을 추천하지 않는다며 약한 단계의 항생제 처방과 1주일 뒤에도 낫지 않으면, 무조건 PCR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하셨다. 힝구를 위해 더 자주 가습기 물도 교체하고, 공기청정기도 강풍 모드로 변경해 가며, 공기 질 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다.



 목욕을 해 본 적이 없어서일까, 물에 두려움이 없는 힝구가, 요즘 물에 엄청난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정수기에서 물을 받을 때면, 쪼르르 흐르는 물이 흥미로운지 한참을 쳐다본다. 초반에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면, 최근에는 아주 적극적이다. 정수기를 이용할 때, 내 옆으로 다가와 물줄기를 꼭 건드려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 물줄기를 향해 냥펀치를 날리고 만다. 왠지 언젠가 한 번쯤은 힝구의 발 맛이 첨가된 물을 마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물맛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가습기에 새로운 물을 받을 때면, 거센 수돗물 줄기를 향해 냥펀치를 날리려 하는데, 냥펀치를 날리려는 와 막으려는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힝구의 버티기가 제법이다.


아! 잡고 싶다. 너!


 물줄기가 진짜 손에 잡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지, 힝구는 발로 그 물줄기를 잡으려고 씨름한다. 일단 떨어지는 물줄기의 냄새를 맡으며 관찰을 시작한다. 물줄기의 움직임을 읽기라도 하듯, 한참을 노려보다가 조심스럽게 냥펀치를 날리며 물을 한 움큼 쥐려 한다. 그런데 물을 쥐는 순간, 물은 발가락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발바닥에는 축축하게 물기만이 남아있다. 힝구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지 이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다 찹찹하고 물줄기를 잡아먹어 버리지만, 에퉤퉤 뭐지 싶은지 뱉어내고 만다. 다시 물줄기를 향해 뽕주둥이를 진지하게 들이대 보지만, 힝구 입에는 물줄기가 흩어져 형태 없는 물뿐이다. 힝구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힝구는 여전히 이 사실이 이해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입안에서 사라져 버리는 물줄기의 형태가 신기해서인지, 오늘도 싱크대에 앉아, 수도꼭지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다.



  1일 1 수돗물이다. 이제 놀이 아닌 취미가 된 듯, 이 집안의 온갖 물줄기를 향해 그 호기심이 향한다. 세수하려고 튼 세면대 수돗물 줄기, 샤워 물줄기, 정수기, 캡슐커피까지, 힝구의 탐구력은 질릴 줄 모른다. 갓 나와 흐르는 이 물이 힝구, 네가 마시는 물이랑 같은 종류라는 것을 힝구가 언제쯤 이해할지 모르겠다. 그저 내가 마실 물만큼은 지켜내려고 노력 중이다. 어느샌가 다가온 힝구가 냥펀치로 물맛을 더하려 하기 전에 잽싸게 수돗물을 틀어 힝구의 눈을 돌리기 바쁘다.


커피 한 잔 할까요?


 그러다 힝구가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만 만날 수 있다는 수(水) 속성 고양이가 아닐까 기대해 보았다. 물을 좋아해 목욕도 좋아한다는 아주아주 희귀한 고양이, 아직 수납장에서 포장조차 뜯지 않은 고양이 목욕용품을 뜯을 날을 기대하며, 부디 힝구가 수속성 고양이는 아닐지라도, 조금은 의젓하게 목욕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놀이 후 쉬는 중
매거진의 이전글 맛동산 생산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