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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Dec 13. 2023

나의 가족

독립효과


 가족은 어렵다. 내 가족에 대한 마음은 복잡하다. 애틋하다가도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곤 한다. 오빠와는 달리 딸이었던 나에 대한 엄마의 관심은 때론 숨이 막힐 정도였다. 서른 살을 넘은 후에도 엄마는 걱정이라는 말로 나를 자꾸 붙잡았다.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저녁 8시부터 엄마의 연락이 시작되었다. 불안과 함께 살아온 엄마의 곁에서 나도 자꾸 불안해졌다. 조금이라도 그 불안을 내려놓으라고 말했지만, 엄마와 평생을 함께한 불안은 쉽게 놓을 수 없는 듯 보였다.


 독립 전, 가족을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불안으로부터 도망쳤다. 하루도 집을 비운 날이 없었던 엄마, 여행을 빼고는 나 역시도 집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와 엄마의 정서적 유대감은 내 생각보다도 깊었나 보다. 이사 날, 짐 정리를 마치고 나를 도와주러 왔던 엄마와 오빠가 떠나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깊이의 허전함을 느꼈다. 그것은 내 안의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허전함이었고 결국 나는 울고 말았다. 하지만 그날 느낀 감정은 일시적으로 끝이 났다.

 독립 이후 1년 반가량은 소극적 자유만을 느끼며 살았다. 독립과 함께 코로나가 겹쳤고, 주말마다 중앙대 미래교육원에서 심리학 강의를 듣느라 나는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처음으로 온전하게 혼자가 되었고, 쓸쓸했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더 이상 매일 같이 외줄에 올라탄 것 같은 불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핸드폰을 갖게 된 이후부터 매번 귀가 시간문제로 엄마와 부딪혔다. 엄마의 연락은 늦었다는 이유가 아니라 늦을 것 같아서였다. 엄마의 연락이 시작되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는 엄마에게서 절대 분리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다 독립 후 시작한 동갑 친구들과의 모임은 천국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엄마의 연락이나 통제 없는, 이십 대 때도 느끼지 못한 진짜 자유였다.



 그렇게 가족을 잊어가며 독립생활을 즐겼다. 가족에 대한 생각이 불쑥 떠오르기 전까지 말이다. 가족의 존재감이 나를 다시 짓눌렀다. 한번 떠오른 가족의 존재감은 내 마음 한편을 불편하다 못해, 어떤 날은 아프게 했다. 내 독립이 가족으로부터의 도망이었기 때문이었다. 묘한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사실 독립 후 2년간은 본가에 가는 것이 싫었다. 독립 이후, 왠지 모를 어색함, 관계의 틈이 자꾸 커지는 모습을 외면하는 나 자신이 불편했고, 내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그건 언니가 떠오르면 죄책감이 느껴질 만큼의 행복이었다.
소설 <눈부신 안부>



 그러다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로 이사 오기 전, 한 달 정도 본가에서 시간을 보낸 이후, 나는 진짜 독립을 했다. 본가로 들어가기 직전에야 아빠는 내가 독립했던 집을 방문했다. 그날 가족 모두와 공인중개소를 방문하며, 처음으로 함께 내가 살 집을 보러 다녔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무엇인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했다. 그날 이후, 도망치듯 떠났던 내 첫 독립의 죄책감이 점점 옅어져 갔다. 오빠와도 다시 예전처럼 철없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엄마와 아빠의 나이 듦이 눈에 들어왔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마음의 부채, 나 스스로 만들어 낸 그 죄책감, 그로 인한 부채감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다. 딸이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할까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은 본가를 다녀오는 길을 묵직하게 채워주셨다. 가족, 아직도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매번 엄마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몇 번이고 감사함을 말로 전하며, 가족에 대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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