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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Dec 15. 2023

위로를 위한 '진짜 위로'

한아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한아 작가님의 글 <'진짜 위로'를 배워가는 중입니다만> 


온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며,
'진짜 위로'를 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에 있다.


 이 문장이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퇴사 직후 제주도 2주 살기가 시작되었다. 둘째 날이 되어서야 제주 바다를 마주했고, 협재해수욕장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나 혼자 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과 드디어 제주도에 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단톡방에 톡을 보내려는데 연락 하나가 와있었다.


 내가 잘 못 본 것인가, 읽고 또 읽었다.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문자였다. 2주 전에도 어머니 생신이라 약속에 못 나올 것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사실 그 친구와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할 정도의 친분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구가 느낄 그 상실감이 느껴졌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서 받은 부고는 공적인 관계의 사람들이거나 지인 친인척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의례적인 인사로 시작한 위로의 말을 건네곤 했다. 상실과 그 슬픔의 크기를 감히 가늠할 수 있을까. 그저 내가 누군가의 슬픔에 이입할 정도 관계의 거리를 가진, 그런 친구가 전하는 부고 소식에 온전하게 그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 내 친구 어머니의 부고는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 부모를 잃은 그 친구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담담하게 전화를 받은 친구에게 나는 어떤 위로의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 의례적인 말로 친구의 슬픔을 어찌 위로할 수 있을까. 위로라는 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하며 어렵게 말을 이어가다 장례 준비로 정신없을 친구와의 전화를 서둘러 끊었고, 못다 한 말을 문자로 전했다. 그날 나는 온 마음으로 친구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진짜 위로, 지금까지 나는 진짜 위로를 하고 있었던 걸까. 위로란 무엇일까. 그 친구의 슬픔을 마주한 순간, 나는 사고가 정지된 듯, 오류가 나버렸다. 그리고 위로에도 배움이 필요함을 그 순간 깨달았다.

 위로는 공감에서 시작되며,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필요하다. 상대에게 그 마음이 전해져야 위로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해진 마음이 상대방의 괴로운 마음, 그 슬픔을 덜어주고 달래줄 수 있기를 바라던 나는 여전히 배움의 과정에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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