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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Dec 19. 2023

길 위의 고양이

 

 나에게는 힝구를 만나기 전, 두 번의 길고양이 인연이 있었다. 고양이의 골골송이 무엇인지도 모를 시기, 내 세상의 반려동물은 반려견뿐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반려견을 키우고 싶었지만, 엄마의 반대에 그저 관련 책들을 보는 것으로 반려견에 대한 마음을 대신했을 만큼, 내 관심은 한결같았고 유일했다. 그리고 내 유일무이한 반려견 동이와 함께 한 시간까지 합치면 나는 평생 고양이를 알지 못했고, 고양이는 내 관심 밖의 존재였다.

 

 동이를 보내고 한참이 지난 후, 우연히 접하게 된 고양이 영상에서 예측할 수 없는 고양이의 엉뚱한 매력(a.k.a. 병맛미)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고양이에게 이런 매력이 있다니 나는 그동안 고양이에 대한 편견으로 사랑스러움을 보지 못했구나. 



 그즈음 내가 살던 아파트에는 이쁘장하게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자주 눈에 띄었다. 코리아숏헤어 중 치즈태비였던 세림이, 아파트 이름을 따서 우리는 세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세림이는 우리 아파트에서 인싸냥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말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세림이이면서 만복이었던 치즈냥이었던 것이다.


세림이, 만복이


 고양이는 처음이라서, 강아지와는 다른 표현 방식으로 종종 소통의 오류를 겪으며 이 알 수 없는 존재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고양이 간식을 준비했다. 세림이를 만나는 날이면, 배가 고플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집으로 뛰어가, 세림이가 좋아할 간식과 함께 길고양이에게 턱없이 부족한 음수량을 채워 줄 물도 한 컵 떠 왔다. 세림이의 입맛은 생각보다 확고했다. 츄르 하면 고양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었던 내 생각은 너무나 편협했다. 츄르가 모든 고양이의 최애 간식은 아니었음을 세림이에게 배웠다. 


 안타깝게도 세림이가 구내염을 앓다 힘겨운 길 생활을 쓸쓸하게 마쳤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전해 들었다. 내가 독립해 나오기 전, 비 오던 그 겨울밤, 서글프게 울며, 내가 살던 아파트 1층 문 안까지 나를 따라 들어왔던 순간이 떠올랐다. 나를 애처롭게 부르던 그 아이가 떠올라 책임감 없이 섣부르게 마음을 준 나에게 화가 났다.



 2016년 여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친구와 청계천에 다녀온 오빠는 새끼 고양이를 봤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아기 고양이라니, 나는 당장 그곳으로 향했다. 세상에나 삼 남매였다. 수컷인 첫째는 첫째다워서일까, 새끼 고양이면서도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다. 둘째 역시도 수컷이지만 이 고양이는 영상 속에서나 봐왔던 그 개냥이였다. 셋째는 새침한 암컷이었는데, 사람의 손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삼 냥이를 부르는 내 휘파람 소리에 가장 수다스럽게 반응하던 참 예쁜 아이였다.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 나를 향해 냐옹거리던 그 아이가 생각난다.

 

 오빠와 나, 그리고 오빠 친구까지 어느 순간 우리는 캣맘이 되어있었다. 새끼 고양이 남매를 만나러 간 날부터, 나는 그들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찾았다. 어느 순간, 독립을 했는지 보이지 않는 첫째, 그 이후 둘째와 셋째를 돌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밥을 주러 가면 밥보다도 우리를 향해 애교부터 보이던 그 아이를 사랑했다. 처음 바짝 선 고양이의 꼬리에 어리둥절했지만, 우리의 손길을 좋아하던 둘째를 통해, 고양이의 꼬리 언어가 얼마나 복잡하고, 확실한지 배웠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간 동안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우리는 결정의 순간에 있었다. 서로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주고 있었던 걸까.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쉽게 헤어질 수 없었다. 우리를 따라, 우리 집 앞까지 따라오던 둘째를, 그 지역 캣맘이 마련해 놓은 집으로 데려다줘도, 우리를 계속해서 따라왔다.

 반려견 동이를 보내고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는 내 다짐이 흔들렸고, 우리 집의 최고 결정권자인 엄마에게 몇 번이나 피력했지만, 나는 둘째와 셋째를 내 반려묘로 데려오지 못했다. 매번 헤어질 때마다 자꾸 미안하기만 했다. 


 우리가 떠나는 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돌아갈 둘째의 뒷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양이에 대하 내 마음이 그들을 더 상처 입히고 있는 것은 아닐지, 혹여나 우리를 따라왔다가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점점 커졌다.

 그러다 고양이 집 근처, 건물 1층에 있던 옷 공장에 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 공장주인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보금자리를 챙겨 놓았다. 늦은 밤 그들을 찾았던 그날, 자고 있던 그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평온해 보였고, 나는 점점 발길을 줄였다. 


 내 삶이 바빠 오랜만에 둘째와 셋째를 찾아간 날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둘째가 먼저 다가와 줬다. 내 곁을 떠나지 못하던 둘째와 한참을 함께 있는데, 문득 세림이가 떠올랐다. 또다시 내가 책임지지 못할 헛된 희망과 상처를 주지 않을까 무서웠다. 무심하지만 따뜻한, 옷 공장 사장님의 배려, 그들을 위한 자유로운 보금자리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기로 했다. 문득 생각날 때면 분명, 그곳에서 잘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고, 믿었다.



 최근 둘째의 소식을 들었다. 7년 만에 둘째를 만났다는 오빠의 연락과 함께 짧은 영상을 받았다. 여전히 건강해 보이는 둘째는, 오빠를 기억하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에 일방적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끊었음에도 둘째는 여전히 오빠를 반겼다. 반가움과 미안함 마음이 들었고, 여전히 그 옷 공장에서 자유로운 외출냥이로 살고 있는 둘째 곁에 보이지 않는 셋째의 부재가 마음이 아팠다.

 

 괜찮다면, 본가를 방문할 그날, 둘째 냥이를 만나러 가봐야겠다.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아니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쉽게 인연을 끊었던 이 미안함을 담아 반가운 인사를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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