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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Jan 10. 2024

고양이가 있는 풍경


 힝구의 아침밥을 챙겨주고 나서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오전에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으면, 이미 배불리 밥을 먹어 충전 완료된 힝구가 집안 이곳저곳을 탐험하듯 시간을 보낸다.

 일과를 마친 후, 나도 이른 점심을 먹고 잠시 쉬려는데, 이 시간만 되면, 힝구도 자기 오전 일과를 마쳤는지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나 내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햇빛을 받으며 늘어지게 낮잠을 자거나 창밖을 구경하고 있는 힝구를 바라보다 노트북 앞에 앉아 오후를 시작한다. 잠깐 딴짓하던 내 시선이 힝구를 찾을 때면, 창밖을 구경하던 힝구도 침대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얼마나 단잠을 자는지 무방비 상태로 배를 내놓은 채 정신없이 자기도 하고, 어느 날은 눈이 부신 지, 자기 발로 눈을 가린 채 본격적인 수면을 하는데, 힝구가 내 곁에서 아무 걱정 없는 자는 그 모습이 좋다. 보통 오전에 잡다한 집안일을 끝내놓기에, 이 시간은 나에게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면서도 고양이의 낮잠을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어, 좋아하는 시간이다.



 어제는 감기와 하루 종일 내리는 눈에 살짝 게으름을 피웠다. 그런데 힝구가 창가에서 부산스럽다. 뭔가 싶어 내려다보니, 내리는 함박눈을 잡고 싶었던 힝구가 손에 잡히지도 않는 눈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어제 힝구의 채터링을 처음으로 들었다. 그만큼 눈이 잡고 싶었는지,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눈을 보며, 연신 눈을 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 결국, 힝구를 데리고 눈 내리는 옥상으로 향했다. 마음껏 잡으며 놀 수 있도록 힝구에게 내리는 눈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채터링(Chatter _새가 지저귀다, 수다를 떨다, 재잘거리다)
말 그대로 고양이가 짧게 짧게 우는 모습을 채터링이라고 하는데, 새를 사냥하기 위해 고양이가 본능적으로 내는 소리라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집돌이 힝구는 집 안에서는 용맹한 맹수지만, 바깥에만 나가면 세상 쫄보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열어놓은 이동 가방 안에서 고개만 겨우 빼꼼 내민 채, 한 걸음도 밖으로 내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새 겁쟁이 힝구는 사라지고, 다시 눈을 잡으려고 혈안이다. 그 모습에 엄마 미소가 멈추질 않았다. 좋아진 기분 탓인지 내 몸에 힘이 나기 시작했고, 그제야 노트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눈(雪)이 좋은 힝구

 

 힝구를 위해 평소보다 더 활짝 블라인드를 열어놓았더니, 눈 오는 풍경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힝구가 창가에 앉아 있어서인지 겨울 고양이, 그 포근한 털과 창밖의 새하얀 눈이 대조되며, 내 겨울 풍경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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