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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Jan 15. 2024

강릉, 겨울 여행

눈 내린 여행길


 오랜만에 여행을 가기로 한 날, 사람들과 만나기로 한 석촌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왔을 때만 해도, 우중충한 하늘에서 흩날리던 눈은 곧 그칠 듯하면서도, 비로 바뀌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촌역을 빠져나와 보니, 눈발이 제법 굵어져 있었다. 잠시 들린 카페 통창 너머의 눈 내리는 모습이 겨울 여행 분위기를 더해줬기 때문인지, 나는 들뜨기 시작했다. 주문한 커피를 사 들고 다시 석촌역으로 향하는 사이, 도로 위에도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10분도 안 되는 사이에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내리는 눈 때문에 온 하늘이, 온 세상이 새하얗게 바뀌었다.


 

 지체 없이 출발했지만, 점점 시야를 방해하는 눈 때문에 길이 막히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도 서울 도심을 빠져나오니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도로에 안심할 수 있었다. 경기도를 벗어나기 시작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산에도 눈이 쌓여가고 있었다. 점점 눈발이 거세졌고, 차 지붕 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눈덩이에 놀라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오래전 함박눈이 내리던 날 무작정 떠났던 춘천 여행이 떠올랐다. 또다시 이런 겨울 여행을 한다니, 그때와 함께했던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졌지만, 곧 차 안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우울해질 뻔한 기분이 금세 사라졌다. 눈 내리던 그날, 그 새로운 여행이 옛 추억 위에 다시 새겨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달리는 차 창 밖은 장관이었다. 참지 못하고 창문을 열어 내민 손에 닿는 눈의 느낌이 좋았다. 23년 마지막을 앞두고 떠났던 여행은 잊지 못할 겨울 여행길이 될 것 같다.



 

 오전 9시 반에 출발해 정오 12시쯤 양평휴게소에 도착했다. 여행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휴게소 먹거리를 이번에도 놓칠 수 없었다. 외부 테이블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급하게 먹은 떡볶이와 핫도그는 생각지도 못한 맛난 조합이었고, 여행길 허기짐까지 더해지니 도착시간이 지연돼도 후회 없을 맛이었다.


 그 이후에도 눈 내리는 풍경은 계속됐다. 푹푹 발이 파묻힐 만큼 내린 눈을 보니, 졸음휴게소에 잠시 정차한 사이 결국 눈 뭉치를 만들어 함께 한 지인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창밖 풍경


 점점 강릉에 가까워지니 아쉽게도 눈이 비로 바뀌었다. 한없이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며 먹은 물회와 멍게비빔밥은 맛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끝난 새하얀 풍경이 못내 아쉬웠다. 내 눈 내리는 겨울 여행은 강릉에 도착과 함께 녹아내린 것이다. 그래도 그다음 날 아침, 옛 할머니 댁을 떠올리게 한 문풍지 바른 장지문 너머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그 아쉬움을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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