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아 moi Jul 04. 2023

세탁기 캣휠

궁금한 건 못참지 힝구

 

 드럼세탁기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면, 신세계가 펼쳐지기라도 한 듯, 우리 집 고양이는 세탁기 문 앞에 서서, 문에 아주 코를 박을 듯이 그 안을 구경하기 바쁘다. 요란한 소리가 싫을 만도 할 텐데, 요리조리 세탁물과 함께 돌아가는 세탁기 안이 신기한가 보다. 자신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시간 속 장소이기 때문일까.

 궁금한 게 생기면 무조건 툭툭 건드려 보고 떨어뜨려 봐야 직성이 풀리는 힝구 입장에서는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이 세탁기 문이 답답하고 얄밉겠지.


 갓 세탁을 마치고 세탁기 문이 활짝 열려 있던 어느 날이었다. 드디어 자신의 궁금증을 풀 시간이 온 것이다. 둠칫둠칫 침대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힝구의 몸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우다다다다' 몹시도 바쁜 발소리가 들려온다.


 세탁기 안은 막 세탁을 끝낸 상태였기에, 따끈한 온기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을 품어줄 만큼 작고 어두운 공간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를 조심스럽게 맡으며, 힝구는 세탁기 안으로 발을 한발 한 발 내디딘다. 생각해 보니 세탁기 통속은 고양이가 좋아할 요소가 다 모여있구나.

 '킁킁킁'  힝구는 지금 집사 몰래 탐험하니 더욱 흥미진진한 상황이다.


 자기 몸이 세탁기 안으로 쏙 들어간 순간, 도르륵 돌아가는 통에 휘청하지만, 왠지 재밌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장난감을 발견이라도 한 듯 한창, 그것도 혼자서 재밌는 시간을 보낸다.

 딱, 집사에게 들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힝구 요놈!'



 집사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힝구가 호시탐탐 세탁기를 노리는 것을 종종 목격해 왔기에 세탁기 문단속을 철저히 했건만, 그런데 좌우로 흔들리는 통속에서 자유자재로 몸의 중심을 잡으며 놀고 있는 힝구를 보고 있자니, 집사로서 이런 열악한 환경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며, 문득 캣휠에 대한 욕심이 생겨버린다. 이것은 힝구를 위한 욕심인가, 나를 위한 욕심인가. 나는 급하게 힝구를 세탁기에서 꺼내며, 세탁기를 단속한다.


 세탁기의 재미를 알고 나자, 세탁기를 돌리는 날이면 힝구는 그 앞에서 보초를 서기 시작한다. 이제 힝구와의 눈치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문이 열리자 힝구가 달려온다. 어림없다. 나는 잽싸게 세탁기 문을 닫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냥냥냥' 나에게 항의하듯 힝구가 울기 시작한다.

마음 약해진 집사는 다짐한다.


'힝구야, 집사가 열심히 돈 벌어올게. 캣휠 사러 가자.'







이전 12화 우다다가 시작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