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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Aug 02. 2023

고양이와 여름휴가 중입니다.

서로의 껌딱지 되기


 휴가 첫날, 늦은 오후까지 그동안 미뤄뒀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후덥지근한 집 밖을 피해, 집 안으로 바삐 돌아왔다. 집 밖은 위험하다 했으니,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난 후, 피부는 타들어 갈 듯 뜨겁다 못해 따가웠고, 지난 주말, 다녀온 물놀이의 여파로 온몸은 근육통으로 몸살 일보 직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형서점에 들러, 읽고 싶었던 책들을 한가득 사 들고 온 나는, 급히 집 안으로 들어가며, 이번 휴가의 본격적인 시작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새 책 냄새가 좋다. 활자로 가득한 책장(冊張),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왠지 설렌다.

 에어컨이 돌아가기 시작하며, 시원해진 집안, 수박을 통으로 갈아 만든 수박 주스를 쭈욱하고 마시니, 달고 시원하다. 며칠 만에 본 듯, 격하게 나를 반겨주고 있는 힝구의 배를 만지며, 골골송을 듣기 시작한다. 언제나처럼, 골골송의 주인공은 나, 휴가가 실감 난다.


 몇 달만의 쉼,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한껏 늘어질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내 휴가를 알고, 이번 주 내내 자신 옆에 있을 집사가 좋은 건지, 내 품에 폭하고 몸을 기대 온다.

 보송보송 시간을 보내는 데 갑자기, 스마트 폰 진동이 울린다. 택배 도착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다급히, 현관문을 열자, 어제저녁, 힝구와의 즐거운 휴가를 위해 주문한 신상 장난감 박스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힝구 10개월 인생에 이런 신세계는 처음이겠지.’

혼자 흐뭇해하며, 힝구 앞에서 당당하게 박스들을 언박싱하기 시작한다. 게 한 마리가 떡하니 등장하자. 힝구가 흥미를 보인다.


‘집사 요것이 모냐옹?!‘

‘인싸냥이라면, 이런 인싸템은 한번 가지고, 놀아봐야 하니 준비해 봤단다.’


  ON 버튼을 누르자 둥둥 둥둥 일렉트로닉 음악이 흘러나오며, 게 다리를 현란하게 움직이는 게 한 마리가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다. 힝구는 집안의 가구며 박스며 여기저기를 엄폐물로 사용하며, 맹수로서의 본능을 제대로 뽐내기 시작했다.

힝구는 맹수다.

냐옹!



 드디어 게를 쓰러뜨리며 사냥에 성공하자 의기양양한 맹수 한 마리는 당당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궁둥이 팡팡팡을 해주며 힝구의 승리의 기쁨을 더욱 돋궈준다.

 성공적 장난감 쇼핑에 나도, 힝구도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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