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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Apr 11. 2024

나의 뮤즈 고양이에게 츄르를

츄르 cheers


내 글감에서 힝구의 비중을 생각하면 저작권료로 하루 츄르 10개 정도쯤이야. 기꺼이 드리리.


 글감조차 떠오르지 않는 날들은 자주 있다. 오늘의 글감이 주어졌음에도 도저히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고 머릿속은 미세먼지가 가득 낀 듯, 막막하기만 하다. 그럴 때면 나에게는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힝구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힝구를 보고 있다고 해서 요 녀석이 글감을 '툭'하고 던져주는 것은 아니지만, 힝구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툭'하고 튀어나온다.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인 힝구는 내 모든 일상에 스며들어 있으니, 현생에 집중하느라 유난히 글쓰기 모드로 전환되지 않는 날이면, 입력값 힝구 하나로 내 머릿속은 잊고 있던 지난 추억을 포함해 평범한 하루를 힝구로 보내는 법과 내 상상 속의 힝구 등 갖가지 결괏값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어제 오랜만에 침대 패드를 세탁기에 돌려 빨래건조대에 널어놓았다. 아니 또 언제 고양이월드가 개장했냐며, 당연하다는 듯 그곳에 올라간 힝구는 무적이었다. 평상시라면 도약대가 없어 올라갈 수 없던 꼭대기 선반까지도 넘보기 시작하는데,

 저기 그곳은 내 작고 소중한 피규어들과 아끼는 블루투스 스피커에 힝구의 냥펀치 한방이면 나가떨어질 도자기로 만든 탁상시계가 놓여있는 내 최애템 보관층이라고.


 나는 내 물건들을 사수하기 위해 급히 빨래 건조대를 옮겨놓았다. 사실 힝구에게 빨래건조대 위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저곳 할 거 없이 모두 재밌기만 한 힝구는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공평하게 대했다. 오직 재미만을 위해서. 그저 집사의 마음만 불안불안할 뿐이지.  

 생각해 보니 힝구에게도 매일 비슷한 일상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그 건조대가 신선했겠구나. 평소와 다른 높이에서 바라본 집 풍경이 이 작디작은 녀석에게는 얼마나 새로웠을까. 또 혼자 전지적 집사 시점에서 모든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것도 나름 직업병인가.


 일상 목차가 자꾸 힝구로 채워진다. 그날을 다른 것으로 채웠다 해도, 일상 한편에는 언제나 힝구가 있다. 욕실 청소를 하는 날에는 힝구의 작은 화장실도 함께 청소하는 날이고, 택배 상자를 받아 즐거운 날은 숨숨집 상자가 생겨 힝구도 즐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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