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아 moi Jun 14. 2024

집사의 반성문


 평소라면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향했을 테지만, 어제는 야구 경기 관람을 참지 못하고 약속을 잡아버렸다. 사실 응원하는 팀이 있거나 야구 경기를 즐겨 보는 건 아니지만, 경기를 직관하는 재미와 맥주 한 캔에 어울리는 음식을 먹는 재미는 놓칠 수 없었다.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응원으로 쏟아 내리라는 마음으로 찾은 경기는 역시나 즐거웠다.


 즐거운 관람을 위해,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라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던 나는 어제도 한화 팬 응원석에 앉아 두산을 응원했다.(두산이 이기고 있었기에) 한화 팬 사이에서 두산을 응원하려니 뱃속에서 질러 나오는 함성이 자꾸 목젖에 막혔고, 자주 주변을 살피게 했다. 그래도 한화의 즐거운 응원가에 흥이 절로 났고, 신이 난 나는 소리 없는 응원을 이어갔다.


 역시 오늘도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겼다. 이 즐거움을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사람들과 맥주 한 잔을 더 하기로 했다. 결국 늦은 시간이 돼서야 집에 도착한 나는, 집안 상황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고, 놀람은 곧 죄책감으로 변했다.




 아침이면 츄르를 달라고 닦달하던 힝구가 어제는 너무 조용했다. 졸린가?

바쁜 출근길, 평소처럼 츄르를 건넸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까지만 해도 평소와 같은 하루였다. 힝구도 평소처럼 마중을 나와 있었기에, 이상할 것 없던 하루였다.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화장실을 지나쳐야 하는데 무심코 바라본 화장실 문틈으로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흔적들이 집 안 여기저기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곧 힝구가 아침에 먹은 츄르를 게워 내고 또 게워 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동급식기에 수북이 쌓여있는 하루치 사료들을 보니 확실하다. 힝구는 혼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힝구를 세세히 살피자, 힝구의 몸 곳곳에서 힝구의 현재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라는 생각과 무책임함으로 내 고양이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에, 집사로서 힝구에 대한 글을 써왔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힝구의 건강과 내 즐거움을 맞바꾼 것 같아. '나는 집사 자격이 없구나'라는 자책은 지금도 계속 중이다.  




 힝구를 데리고 병원을 다녀와야 했기에 오늘은 반차를 쓰기로 했다. 쉬고 싶은 마음에 어제 쓸까 말까 했던 연차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었다. 마음은 급하고 업무는 손해 잡히지 않는다. 결국 답답한 마음을 어찌할 방법이 없어, 변명 같은 글을 쓰며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을 쏟아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무실에도 고양이 복지가 필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