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양이와 함께 글을 씁니다 _앨리슨 나스타지>
고양이처럼 신비로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이런 탄식은 고양이의 매력이 각 시대의 작가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고 매혹시켰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이 책의 저자는 많은 작가들의 표현을 인용함으로써 자신 역시 고양이 덕후임을 고백하는 듯했고, 그 고백은 고양이에 대한 찬양처럼 느껴졌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고양이와 작가들의 운명적 끌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고양이에 대한 작품들을 남긴 작가 한 명 한 명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그저 어느 시대에서나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 많은 작가가 있으며, 그들이 고양이와 감정적으로 얼마나 깊게 교류했는지, 자신의 뮤즈가 기꺼이 되어준 고양이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친 존재인지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페이지마다 공감했고, 수긍했다. 그렇다, 고양이는 사랑이고, 영감의 원천, 뮤즈다. 그들의 모든 행동이 나의 시선을 끌고, 마음을 끄는지 알게 된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솔직한 존재, 태생의 우아함을 가졌지만, 때론 예상 밖의 행동들로 나를 얼마나 놀라게 하는지,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그들의 집사가 될 것이다.
그들이 멀리서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기만 해도, 그 부름에 응답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았든, 그들이 내 앞에 등장한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을 향한 모든 이들의 관심과 시선을 묶어둔다.
냥므파탈, 이 단어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하며, 내 마음을 이렇게 고백해 본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내 글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이 고양이다. 나의 고양이 힝구, 나의 뮤즈, 그는 글감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만약, 내가 지난해, 힝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힝구에게 마음을 주지 못했다면, 내 페르소나를 발굴하고,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떨어지고, 올해 재도전에서 나는 내 고양이에 대한 계획뿐이었다. 그렇게 집사라는 페르소나를 얻으며, 나의 뮤즈와 함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 노트북의 키보드와 내 손을 정복하며, 내 관심을 끌어내고 마는 그에게 나는 언제고 매혹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