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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Oct 11. 2023

소소한 소비는 쏠쏠하게 재밌다.

탕진잼에 관하여


탕진잼, 탕진하는 재미의 줄임말


 독립 전, 매일 같이 찾아오는 내 택배 상자 행렬에, 오빠는 '머선 일이고, 너도 탕진잼에 빠졌냐며' 웃음 섞인 핀잔을 주곤 했다. 그랬다, 사는(buy) 사는(life) 맛이 났다.

 살다 보면, 삶의 기준이라든가, 생각의 기준이 어떤 경험으로 변하곤 한다. 회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들게 돈을 버는 데, 이것 하나 못 사냐?! 갑자기 원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하는 내가 억울해졌다. 그 시절, 왠지 마음에 화가 많았던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무섭게 클릭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구입하기 버튼을 말이다. 거기에는 합리화도 한몫했다. 나는 사야 할 물건의 합리적 가격을 따지고 따져, 소비를 하는 사람이라고, 이런 합리화에 나는 합리적 탕진을 멈출 수 없었다.



 그전까지 인터넷 쇼핑 속 장바구니는 내 소비 욕구를 내려놓기 위한 한 단계처럼 사용했다. 갖고 싶다면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놨다. 종종 장바구니 리스트들을 방문하여, 고민했고, 마음 내려놓기를 끝내면, 그 리스트에서 삭제하는 것도 나름 미니멀라이프를 사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렇게 억눌렀던, 소비 욕구가 풀려나자, 우리 집에서는 쓰레기 버리는 날이 되면, 택배 상자를 배출하기 바빠졌다. 아직 쓸모를 얻지 못한 물건들이 수두룩했고, 반품 또한 빈번했다. 출근하는 나를 대신해, 반품 택배 인계는 엄마의 몫이 되었다. 엄마는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내 부탁을 들어주곤 하셨다. '우리 딸이 아주 쇼핑에 재미 들이셨어.'

 

 그 당시, 내 주된 쇼핑목록은 작은 액세서리, 아기자기한 굿즈들, 왠지 이것만 있으면 건강해질 것 같은 작은 운동 소도구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물건의 그 기능을 제대로 사용한 것은 쇼핑 중 내 마음속에서였다. 또한, 내 독립과 동시에 내 선택을 받지 못한 채, 본가 내 방 붙박이장 속에 잠들어 있다.



 탕진잼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택배 배송 안내 문자를 받고 그 물건이 내 손에 의해, 포장이 뜯길 때가 아닌가 싶다. 마치 생일선물을 받았을 때의 그 설렘과 분명 상자 속 물건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실물이 어떨지, 그 궁금증에 언제나 택배 상자 개봉은 즐겁다.

 요즘, 내 탕진잼은 소소한 굿즈 모으기이다. 원래도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굿즈들, 특히 문구류 사 모으는 것을 좋아했지만, 최근에는 편의점에서 자체 컬래버레이션한 굿즈들을 사 모으거나, 고양이 관련 굿즈등에 탕진하며 쏠쏠한 재미를 느낀다. 예쁜 쓰레기라 불리는 그 아이들은 내 책장마다 놓여 있고,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탕진잼의 귀여운 결말은 계속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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