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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Oct 15. 2023

그저 평범한 하루


 인왕산에 다녀왔던 날이었다. 문정에서 인왕산 초입, 윤동주 문학관 정류장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친구와 약속한 시각에 맞추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고양이 집사가 된 이후로 외출 전에는 힝구를 챙기느라 이른 약속을 잡은 날은 더욱 정신이 없다. 힝구를 챙기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결국 나는 빈속에 산을 올랐다. 땀까지 흘리고 났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친구와 무엇을 먹을지 얘기하는데, 음식보다도 먼저 막걸리가 떠올렸다. 역시 등산하는 날, 전과 막걸리가 없다면 왠지 허전하다. 


 빈속에 땀을 흘린 뒤,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쭉 들이켠 막걸리 두세 잔에 금세 알딸딸해졌다. 친구와 카페로 자리를 옮겼고, 친구와의 대화는 오랜 시간 이어졌다. 

 어느 순간, 엄청난 피로감이 밀려왔다. 연신 하품하며, 우리는 그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각자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헤어졌고, 나는 가락시장행 3호선 지하철을 탔다. 북적북적한 지하철 안, 다행히도 금방 자리가 났고, 피곤했던지 바로 잠들어버렸다. 문득 잠에서 깨고 고개를 들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낯익은 사람이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자다 깬 내가 잘못 본 것인지, 한참 동안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니 확실했다. 올해 초에 끝나버린 인연,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기절하다시피 고개를 떨구고 잠들어 있었고, 다행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돌리다 발견했기에 그 사람은 나를 보지 못한 듯했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생각했다. 인사를 해야 하나, 하지만 금세 그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 끝나버린 사람은 그저, 지하철에 함께 타고 있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무엇보다도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난 것에 놀랍도록 동요하지 않은 내가 신기했다. 진짜 이제 한 관계가 끝이 났다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느꼈다. 지하철이 한 역에 정차했고, 먼저 지하철에서 내리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반가웠다고 속으로 인사를 하며 그 사람과 드디어 이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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