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아이는 같지 않다.
이제는 어렸던 나를 보내줄 때인가 보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기억이 나던 때에도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몸과 마음은 자랐지만, 종종 그 기억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는 그곳에서 벗어날 때인가 보다.
둘째를 임신하고 첫째 아이는 외가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임신극초기에 겪었던 코로나와 심한 입덧으로 인해 아이를 내 품에서 마음껏 사랑을 주며 키우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집에서 단둘이 있게 되면 서럽게 우는 아이에게 연거푸 미안하다고 되뇌었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울면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보았다.
내 집이 아닌 곳에서의 생활. 이모를 엄마로 알고 지냈던 시간. 사촌 언니, 오빠의 눈총. 내 것이 아니었기에 탐내어서는 안 되었던 것들. 알면서도 티 내지 않으려 했던 노력.
아직 너무 어린 나의 아이에게 내가 겪었던 남의 집 살이를 똑같이 겪게 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몰려왔다. 남편을 붙잡고 내가 아프고 힘들어도 그냥 아이를 계속 집에 두자고 했다. 그때의 내 상태를 알고 있던 남편은 그저 나를 위로했다. 곧이어 마음이 진정되고 나면 첫째와 둘째를 잘 지키기 위해서 현상 유지하며 함께 있을 때 최대한 사랑을 쏟는 것이 최고라고 다독였다. 그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에게 최대한의 사랑을 쏟으며 출근하는 아빠와 함께 아이를 외가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그랬던 오늘이 아이를 통해 또 한 번 특별해졌다. 내 다리에 앉아 책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를 보며 이제까지 해본 적 없었던 새로운 생각이 스쳤고, 아이를 외가로 보낸 후 펼쳐진 나의 생각의 나래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죄책감을 털어주었다. 곧 나는 상쾌해졌다.
아이는 나와 같지 않았다. 나와 같은 환경에 있지 않다. 나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다. 아이는 10달을 소중히 품어 세상에 나왔다. 출산 후 회복되지 않은 몸이었지만, 산후도우미의 손도 빌리지 않은 채 내 품에서 모유를 먹고 발길질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 반의 시간을 그렇게 살 비비며 사랑을 쏟았다.
코로나와 둘째 임신을 겪으며 아이가 향해야 했던 외가는 당연히 엄마와 함께 있는 것보다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자식을 챙겨야 했던 친척이 아닌 제 손으로 딸을 키우지 못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변하고자 하지 않던 것들도 손자를 위해서는 변화했다. 온 정성을 쏟아 부족함 없이 해주려 했다.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애처로워 혹여나 불안해할까 애지중지 소중하게 대했다. 오직 아이에게 집중했고, 눈길을 보냈다.
내가 내 과거를 떠올리며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어린이집이 아닌 외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아이는 나보다 훨씬 사랑받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어린 나에게 우리 아이를 투영하지 않기로 했다. 어린 나를 편히 보내주기로 했다.
집과 외가를 오가며 아이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이제는 나의 마음도 알아주어 곧잘 달려와 안기기도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이가 참 보고 싶다. 아이는 내가 많은 것을 배우게 하고 깨닫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종종 아이에게 나의 과거, 나의 잣대를 가져다 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더욱 경계해야겠다. 우리 아이 덕분에 나는 내 어린 시절의 나를 잘 보내줄 수 있었고, 또다시 한걸음 내디뎌보려 한다.
고맙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