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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람 Jul 11. 2023

9개월째 입덧 중입니다.

코로나 확진 & 지금도 굳건한 입덧

"하루만이라도, 아니 한 시간만이라도, 단 오분만이라도 당신이 입덧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

입덧이 극에 치달을 때 한 번씩 남편에게 당신도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며 쏟아내곤 했다.

 

임신을 확인하기 전부터 입덧이 시작되었다. 4주 차가 채 되기도 전이었다. 아침이 찾아오거나 양치를 할 때면 어김없이 구역감을 느꼈다. 생리예정일 새벽이 되자마자 임신테스트기를 꺼냈다. 선명한 두줄. 감격했다. 기다리던 둘째가 우리에게 와 주었다. 기쁨도 잠시, 임신을 확인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이 회식에 다녀오며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급하게 첫째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남편은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모두가 임산부인 나와 뱃속에 있는 둘째 아이를 염려했다. 부디 코로나가 아니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그런 마음을 뒤로하고 결국 코로나 확진 결과를 받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코로나가 극심하던 2020년 6월, 남편과 나는 결혼하여 하나가 되었다. 3개월 후 첫째 아이를 임신했고, 임신기간과 출산 이후까지 코로나로부터 철저히 우리를 지켜냈다. 그렇게 지켜내 왔는데, 둘째 아이가 찾아온 지 5주 만에 확진이라니. 열은 끝없이 올라갔고, 뱃속의 아이가 걱정되었다. 타이레놀과 가글만 겨우 처방받아 왔지만 되도록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에 최대한 열을 내리는 노력만 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확진 상태에서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높은 열과 불안한 마음은 나를 한없이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든 것은 입덧이었다. 일찍이 시작한 입덧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고, 입덧약을 먹어도 별차이가 없는 듯했다. 아마 컨디션의 문제였을 것이다. 열이 오르면서 속이 짓눌렸고, 숨 쉬는 것조차 구역감으로 다가왔다. 등은 아팠고, 명치를 내리찍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덜덜 떨면서 미온수로 샤워를 했다. 내 몸이 힘들어도 열을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연거푸 닦아냈다. 다행히 40도까지 가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오들오들 떨었고, 그럼에도 열을 내리기 위한 모든 것을 시도했다. 4~5일이 지나고 열이 조금 내려갔다. 그때부터는 목에 바늘뭉치를 끼워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입덧과 함께 목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약을 먹지 못하니 회복이 되지 않았다. 먹는 것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다시 1~2주일이 지났을까. 목이 제 상태를 찾았다. 한 달이 다 되어가도 몸은 제 상태를 찾지 못했다. 입덧은 여전히 심했다. 열이 다시 높아지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입덧 때문이었다. 분명 입덧약을 먹고 잤는데, 잠에서 깨어 들른 욕실에서 계속해서 구토를 했고, 결국에는 위액까지 쏟아냈다. 임신으로 혈관이 약해진 탓이었을까.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얻은 가래에서 핏덩이가 나왔고, 피 섞인 콧물이 나왔다.


어느 날은 저녁밥을 앞에 두고 계속해서 구역질을 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진짜 토할 것처럼 하네. 방송에서 나오는 거랑 다르잖아. 나까지 울렁거릴 정도구나ㅠ”     

침대에 앉아 이마를 베개에 겨우 박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비닐봉지를 쥐어주고 갔다. 으슬으슬. 식은땀 주르륵.


입덧으로 잠들기가 어려웠다. 뒤척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임신이란 참 신기하네. 아니, 신비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분명 신체 건강히 잘 먹고 잘 자던 사람이다. 잘 때는 남편이 화장실을 가든, 이불을 덮어주든 세상모르고 잘만 잤다. 그런 나인데 어찌 이리 속이 쓰리다 못해 아프고 답답해서 잠도 못 이루고 있는 것일까. 괴로운 마음이 왈칵 올라오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가 건강히 잘 크고 있다는 신호같이 느껴져 괜스레 안심되고 고마운 마음 가득이다.       

    

컨디션과 체력의 문제였을까. 첫째 때보다도 심한 입덧에 하루 최대용량을 다 털어 넣다 보니 입덧약이 바닥을 보였다. 정기검진일을 맞추어 약을 먹고 있었는데, 왜 얼마 없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입덧약을 처방받으러 가자고 했다. 입덧약은 비급여로 금액이 비싸다. 첫째 때도 많이 먹었지만, 둘째 때는 더 많이 먹고 있으니 괜스레 돈걱정이 되었다. 누구도 눈치 주는 사람은 없는데 말이다. 새벽 3시가 되어서도 잠 못 이루는 나에게 남편은 내 입에 입덧약을 넣어주고 출근을 위해 눈을 붙였다. 코를 골고 잠든 남편이 부럽기도, 짠하기도 했다. 때로는 부러움이 얄미운 마음으로 바뀔 때도 있었다.


잠든 남편을 뒤로하고 다시 욕실로 달려갔다. 거세게 구역질을 하다 날이 밝으면 입덧약부터 처방받으러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입덧약을 줄이려던 내 다짐이 무색해졌다.      

매일을 거듭한 구역질과 구토.

“구토가 코로도 나왔어ㅠ”     

남편이 답했다.

“그건 어쩔 수 없어.”      

그래. 어쩔 수 없는 건 맞지. 그렇지만……. 그 말이 왜 그리 서운했을까. 쳇. 정말이지 단 5분만이라도 입덧을 겪어봤으면 좋겠다니까.

   

첫째를 출산하고 나서 그렇게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입덧을 하며 쭉 빠졌다. 결혼 전의 몸무게로 돌아갔다. 당연했다. 잘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토했으니까.      

입덧약을 줄이는 노력을 거듭한 끝에 6~7개월 즈음부터는 먹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입덧이 끝난 건 아니었다. 여전히 구역질을 했고, 몸무게는 늘지 않았다. 아이가 걱정되는 마음에 남편을 붙잡고 울기도 했다. 울면서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아이는 너무나 건강했다. 머리는 2주나 빨리 크고 있었고, 팔다리도 1주가 빨랐다. 다행스러웠다. 7개월쯤 되자 몸무게가 늘기 시작했다. 9개월, 어느덧 첫째를 출산할 때의 몸무게가 되었다. 그렇지만 입덧은 계속되었다. 눈을 뜨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음식물 정리는 숨을 참고 하거나, 구역질하는 나를 뒤로하고 남편이 해주었다. 뭔가를 먹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밤에는 울렁거림에 잠들기가 어렵다.


출산예정일이 다음 달로 다가왔다. 출산할 때가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덧을 하고 있다. 어느덧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임신 극초기에 아이와 함께 겪어내야 했던 코로나. 정말 힘들었지만, 아이는 뱃속에서 잘 이겨내 주었다. 나는 아이 덕분에 더 강해졌고 아이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아이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존재를 엄마에게 알리며, 안심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태동이 심한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아이는 매 순간 엄마에게 자신은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때가 되면 나가서 건강하게 만나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 생각하다 보니 아이가 참 대견하고, 아이에게 한 없이 고마워진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아이를 통해 깨달으며,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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