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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람 Jan 15. 2024

육아의 맛

아이 덕분에 울고 웃는다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

일어나자마자 허리가 아파 한걸음 내딛기도 버겁다. 전날 강행한 일정 때문이리라. 복도에서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는 이웃으로 인해 결혼하면서부터 정해두었던 각자의 방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 안방을 큰아이에게, 복도가 붙은 중간 크기의 방을 우리 부부방, 그리고 작은 방을 둘째가 쓰는 것으로 다시 정했다. 벽지부터 커튼까지 하나하나 아이를 생각하며 만들었건만, 아이들의 숙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침대, 옷장, 화장대, 책상, 서랍 등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모두 옮겨야 했다. 아이들을 친정에 부탁드리고, 6시간 안에 청소까지 마무리해야 했다. 이런 날은 일찍 자는 아이들의 잠투정이 두려워진다. 버저비터로 간신히 골인! 불태웠던 우리의 몸은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본격적으로 경고를 울려댔다.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간밤에 근육이 모두 풀린 상태에서 움직이려니 가장 고통스러운 곳은 허리와 골반이었다. 눈뜨자마자 라면을 끓여 먹자던 남편은 내가 뒤뚱거리며 걷는 것을 보자 휴대폰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식사가 끝난 후 남편은 연신 나가자고 하는 첫째 아이와 함께 나갔다. 모유수유를 병행하는 둘째는 전날의 서러움을 토하며 엄마에게 투정을 한껏 부리고 있다. 부모란 온몸이 아파도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받아줄 수 있는 이들이 아닐까. 결국 해내고야 마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게 둘째의 설움을 오롯이 받아내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문소리와 함께 “엄마!” 하는 카랑카랑한 소리가 들렸다. 사랑스러운 두 남자가 귀가했다. 둘째를 눕히고 첫째의 부름에 답하러 나갔다. 목도리와 패딩을 벗기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지금부터는 당시의 나의 감정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대화를 그대로 담아본다.     


“아들내미 얼굴 갈았다.”

“응? 어디? 무슨 말이에요?”

“코 밑에~. 누나야~ 하면서 뛰어가다가 쿵 넘어져서 갈렸다. 아들내미는 아빠랑만 나가면 꼭 어디 다쳐온다.”     


그 말에 마스크에 손이 갔다. 혹여나 아이가 아플까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마스크를 천천히 내리니 아이의 상처가 드러났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긁힌 상처에 흙이 묻어있고, 피와 진물이 나오고 있었다. 상처를 한번 잘 보라는 남편의 말에 물 묻힌 건티슈로 살짝 닦아보았다. 속이 쓰려왔다. 다쳐온 건 아이인데, 아이는 너무나 해맑다. 다행인 것일까. 속상함을 뒤로하고 어느덧 잘 시간이 지나버린 둘째를 재우고 나왔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씻은 뒤, 챙겨둔 밥을 다 먹었다고 엄마에게 말하기 바빴다. 아이의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손톱을 깎으려 자리를 잡았다. 손톱을 거의 다 깎았을 즈음이었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


고개를 돌려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고 있는 아이에게 눈을 맞췄다. ‘잘못 들었나...?’     


“엄마, 괜찮아~ 괜찮아~”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예쁜 눈을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해오며 많았던 순간순간 괜찮다고 하던 말을 아이는 나에게 전하고 있다.

자신의 상처에 아파하지 말라고, 자기는 괜찮다고 하는 듯했다. 정신없이 흘러가던 시간들이 괜찮아졌다. 고단했던 나의 하루가 웃음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겁나 힘들지만 이 맛에 육아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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