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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람 Mar 29. 2024

첫째의 질투,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오늘도 아이 둘 가정보육에 힘쓴 하루였다. 요 근래는 ‘첫째의 질투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

두 번째 코로나 확진의 여파로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기에 오후에는 친정엄마가 오셔서 아이들을 봐주고 계신다. 그 틈에 30분 정도 쉴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을 때였다. 첫째 아이의 악쓰는 소리와 둘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눈 딱 감고 조금 더 쉬려고 했으나 반복해서 들리는 소리에 다시금 친정엄마와 아이들에게 향했다. 나가자마자 친정엄마께서는 말씀하셨다.

“둘째가 좀 가지고 놀려고 하면 지 거라고 확 뺏어간다! 잘 놀고 있는데~ 그래가 난리 아이가~ 몇 번이나 그런다. 좀 주면 될 거로~”     


상황 파악이 끝난 나는 둘째를 방으로 옮기며 말했다.

“그거 첫째가 좋아하는 거라 그런가 보다. 다음에는 둘째 거를 따로 줄게요. 각자 자기 것, 같이 가지고 놀 것을 구분해서 알려주면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방에서 나와 첫째에게 왜 그렇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는지, 둘째가 놀고 있는 것을 막고 뺐었는지 물었다.

“아~ 할머니가 아가 안고 있어서~!”

첫째의 말에 놀랐다. 단순히 장난감 문제가 아니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단골집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내용이 떠오르며, 아이의 마음에 감응되었다.

“둘째가 태어나 집에 있는 것을 비유하면, 남편이 바람피워 데려온 첩이 집에 들어앉아 있는 것과 같다.”     

둘째를 임신했던 때, 엄마와 아빠도 집에서 돌보기는 했으나 몇 개월 동안 집과 친정을 오가며, 첫째를 주로 봐준 양육자는 할머니였다. 할머니와 애착형성이 되어 있었던 첫째는 아직도 할머니를 많이 좋아한다. 오롯이 자기를 안으며 애정을 쏟았던 할머니였는데, 나 아닌 다른 아이를 안고 지키는 할머니라.     


첫째의 짜증과 질투가 순식간에 납득이 되었고, 꼬옥 안아 주었다.

“우리 아가가 그런 마음이었구나~ 할머니가 둘째 아가만 안고 있어서 섭섭했구나~ 둘째 아가는 혼자 못 앉아 있어서 그러셨을 거야~ 대신에 엄마가 꼬옥 안아줄게^^”     


다음날 오전이 되어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장난감 두 개를 챙겨 아이들과 놀이 매트로 향했다. 장난감을 한 개씩 쥐여 주고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모두 앞에 앉혔다.

서로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으면, “‘장난감 바꿔 놀아도 될까? 고마워~’라고 얘기하고 바꿀 것!”이라는 규칙을 정했다. 물론 아이들이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일부러라도 첫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혼내거나 야단치는 목소리가 아니라 부드럽고 타이르는 소리로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들어보았다. 그런 나의 노력을 첫째가 조금씩 알아주는 듯했다. 오히려 둘째를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둘째가 침을 흘리자, “엄마요! 아가 침~!” 기대어 있던 둘째가 옆으로 넘어질 것 같자, “엄마요! 아가 넘어진다요~!” 둘째가 손가락과 함께 손수건을 입에 와앙 물고 있자, “엄마요! 아가 손수건 물어요~!” 등 내가 둘째를 못 보고 있어도 상황을 다 알려주었다.     


그러다 “엄마! 책 읽어 주시와~용~!”이라는 말과 함께 책을 가져왔다. 책을 읽을 때는 첫째를 옆에, 둘째는 앞에 앉힌 채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에 집중했다.     

그렇게 한동안 책을 읽으며 평화롭고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과 보낸 이 시간을 통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무조건 둘째를 질투한다는 생각이 첫째를 더 외롭게 만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첫째도 아직은 관심이 필요한 아가일뿐인데.’

첫째가 둘째를 질투한다는 생각으로 첫째에게 이해를 강요하고 있었다. ‘둘째가 더 어린데, 왜 저럴까.’

그런 나의 마음은 아이에게 전해졌고, 아이는 고적해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 둘 육아는 더욱 힘들어졌다.  


찰나의 생각 변화는 나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마음과 노력은 첫째에게 통했다. 이윽고 첫째는 안정을 찾았고, 나는 아이 둘 육아를 잠깐이나마 편안하고 수월히 여기게 되었다.     


아이 둘 가정보육을 하다 보니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성장하고 있다.

가정보육이 아니라도 육아를 하다 보면 무릇 겪게 되는 시간이다. 나와 같은 이들이 걸어가는 시간에 나 또한 함께이니, 혼자라 생각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오늘도 아이 둘과 함께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어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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