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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람 May 17. 2024

그저 우리의 날이길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겨도 ‘날이 아니다.’ 여기길

결혼하면서 남편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있다.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하는 말이 있다는 것.      

“오늘은 날이 아니다.”     


처음에는 자꾸만 날이 아니라고 하는 남편이 못마땅했다. 왜 자꾸 날이 아니라고 하는지. 계속 그런 말을 하니까 더 꼬이고 날이 아니게 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남편이 날이 아니라고 하면, 그 말을 지워가려고 노력했다.      


“아니야. 오늘은 날이 맞아요. 왜 자꾸 날이 아니라 그래. 날이다~ 날이다~ 아주 좋은 날이다.”     

남편에게 최면을 걸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나에게 좋지 않은 기운이 흐르는 날이 있으면, 남편은 또 이렇게 말했다.      

“날이 아니다. 그런 날이 있다니까요~ 그런 날은 ‘날이 아니다~’하면서 숨죽이고 있어야 된다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넘어가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되려 최면에 걸렸나 보다. 나도 모르게 남편이 하던 말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첫째 아이가 말을 배우고 잘하게 되었다. 자기가 사고를 하나씩 치고 나면 이따금씩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엄마 날이 아니다.”     


놀라웠다. 직전에 혹은 그날에 그 말을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상황에 맞는 말을 하다니.

‘이 아이 뭐지?’하는 생각과 함께 문득 두려워졌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 괜찮을까?’


남편에게 들었을 때는 무작정 불편한 말일뿐이었다. 어느덧 나까지 쓰게 되었고, 말을 배우는 아이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날이 아니다.”      

우리 아이를 위해 이 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못마땅하거나 불편하다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이 말이 우리 아이의 언어, 생각, 가치관, 인성, 신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여러 방면으로 고심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우리 아이가 이 말을 적절히 쓰면 좋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이에게 생각지 못한 일이나 버거운 일이 생기더라도 그저 ‘날이 아니다.’ 여기고 잠시 쉬었다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으면 한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 하루도 잘 지내기를 바란다. 좋은 일만 생기고, 평온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염원한다. 그저 내가 바라는 우리의 날이기를 소망한다.      


허나 매 순간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염원하고 소망하는 것이리라.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그저 ‘오늘은 나의 날이 아니었구나.’ 생각했으면 한다.

내 의도와는 달리 상황이 흘러가거나, 견디기 힘들 정도의 시련이 찾아와도 ‘나의 날이 아니었으니, 오늘은 집에 빨리 들어가서 푹 쉬고, 내일 다시 일어서보자.’라며 얼른 넘겨 버렸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금 오늘은 나의 날, 우리의 날이길 바라며 하루를 시작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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