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내게 기회를 허락하며 얻은 것들
두잉레터에 연재한 <회사를 떠난 지금,> 두 번째 글입니다.
<회사를 떠난 지금,>은 회사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일의 방식을 찾아가는 여섯 분의 커리어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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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상아입니다.
하고 싶다는 바람과 안된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건, 마치 차의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있는 것과 같아요. 내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진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죠. 이번 인터뷰에서는 진로를 결정하던 때부터 원하는 길 앞에서 오래 망설이다가 회사를 떠나 드디어 시원하게 액셀을 밟으며 나아가는 중인 문다영 님을 만나봤어요. 어떻게 과감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수 있었는지 들어볼까요?
Q. 퇴사 후 9개월 동안 ‘시도'와 ‘모험'의 시간을 보내셨다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오래전부터 하고 싶던 일들을 마음껏 펼쳐보는 시간을 보냈어요. 글과 사진으로 저만의 콘텐츠를 쌓아가면서 진 ZINE이나 인터뷰집 등의 결과물을 내는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하고, 경력과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에서 파생된 새로운 영역의 프로젝트도 경험했어요.
저에게 퇴사란 ‘철저하게 준비해서 넥스트 플랜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었는데요, 리스크를 감수해보자며 모험의 터널을 지나다보니, 원하던 일이 커리어로 이어졌더라고요. UX* 기획자에서 콘텐츠 마케터로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 UX (User experience):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면서 어떤 문제를 겪는지 파악하고, 사용자 경험을 만족시키기 위한 전략을 제시하는 일
Q. 어떻게 커리어 전환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볼까요? 먼저 터널구간의 다양한 활동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무엇이었나요?
온전히 내 만족을 위해 창작에 몰입한 모든 순간이요. 책등이 없는 작은 소책자 ‘진 ZINE’을 접하게 되었는데, 뭐든 내 마음대로 가볍게 만들어도 된다는 점이 부담을 없애주더라고요. 여행의 순간, 배우고 느낀 것, 나 사용법, 영감 수집 등을 진으로 만들어갔어요.
예전부터 독립출판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니 결국 포기하게 됐거든요. 그런데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순수한 저만의 이야기를 담은 진이 모이니 독립출판물이 되었고 페어까지 참여할 수 있었어요. 시시콜콜해도 괜찮은 ‘진 ZINE’을 만들면서 그랬던 것처럼, 터널구간에서의 시도 덕분에 완벽주의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게 됐어요.
Q. 완벽주의를 내려놓게 된 첫 계기가 궁금해요.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난 뒤 만족감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오래 고민하고 겨우 용기 내서 시도해보고는 ‘역시 난 안 돼' 체념만 반복했죠. 퇴사하고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했는데요, 그 프로젝트를 끝내고 회고하면서 ‘이거면 충분하다’는 감정을 처음 느꼈어요. 버겁다고 느끼거나 회의감이 든 순간도 있었어요.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는 과정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 내 모습을 인정하니 나와의 연대감이 높아지더라고요. 그동안 반복적으로 주저앉곤 했던 악순환에서 해방되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프로젝트의 목표가 완벽히 달성되지 않았고, 계약이 연장된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실패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게 신기했어요. 언제나 ‘이 정도는 돼야지’하는 높은 기준이 있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완벽한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 중 ‘작은 마침표’를 찍은 기분이었어요.
작지만 소중한 첫 성공의 경험 덕에, 내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쓰면서 이 기간을 우당탕 지내보자 다짐했어요. 이전까지 시도하려다가 되돌아왔다면, 이번엔 넘어지더라도 여기저기 부딪혀가며 앞만 보고 가보자 생각했죠. 물론 주저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가봤어요. 덕분에 저만의 속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고, 좋아하는 기꺼이 해보도록 허용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나는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가야만 하겠구나, 이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어도 몇 번이고 그 방향으로 나를 데려다 놓아야겠구나’ 하는 확신까지 갖게 되었고요.
Q.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갈망이 오래 지속되어 온 것 같은데, 계속 주저하게 했던 이유가 뭐였는지 궁금해요.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전공, 직업 등을 선택하는 순간마다 고민이 반복되었죠. 배고픈 창작의 길인가, 아님 안정적인 길인가. 전공을 택하는 갈림길에서 인문학과 예술을 선택했고 문화예술 마케팅 회사에서 인턴도 하면서 열정을 불태워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자질이 부족해 보였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과 큐레이터의 일을 병행했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가 반복되더라고요. ‘바라는 걸 하기엔 난 재능과 확신이 부족하다.’ 그렇게 결론 내리고, 유망한 직업을 갖자고 결심했어요.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걸 다 내려놓을 순 없어서 절충점을 찾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면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UX (User experience) 분야를 선택했죠. 처음에는 일도 만족스러웠고 월급으로 누리는 것들이 감사했어요. 하고 싶은 일을 내려놓은 보상 같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다시 갈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고요.
Q. 퇴사를 한 이유가 여기 있었나요?
이전에도 회사에서 주체적으로 일하는 데 한계를 느꼈지만 월급 그리고 명함에 새겨진 회사나 직급에서 따라오는 사회적 인정감이나 소속감 등을 쉽게 내려놓을 순 없었어요. 회사 생활은 다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빈자리를 회사 밖에서 채워나갔어요.
동료들과 자격증 공부를 하며 강연이나 워크숍에도 참여하고 참여자를 모집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일 회고 커뮤니티를 주최하기도 했어요. 회사 밖에서 나를 알아가면서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장면에 본업과 관련된 게 하나도 없지?’ 하고 싶었던 일을 한 번은 제대로 해봐야겠다며 퇴사를 결심했어요.
Q. 안정적인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기에 퇴사를 결심하기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스스로를 옭아매는 생각 때문에 달려 나가고 싶어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죠. 소속과 월급이 없는 삶을 걱정하는 저에게 인생 선배들이 그러더라고요. 지금 손에 쥔 게 커 보이지만 그걸 놓아야만 원하는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요. 그 말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어요. 그동안 성실하게 쌓아온 통장이 있으니 당분간 원하는 걸 마음껏 해보자고 용기 내보았죠.
회사 밖으로 나와보니 정말 회사가 아니어도 돈을 벌 기회들이 있더라고요. 프로젝트 단위로 일할 기회도 생기고 소소하게나마 소득도 따라오고, 제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기회들이 많았어요. 그 기회로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하게 되었고요.
Q.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셨나요?
퇴사하고 얼마 안 되어 좋아하던 커뮤니티 브랜드에서 채용공고가 떴어요. 원하던 포지션은 아니지만 덕업일치를 해보고 싶어서 솔직하게 지원 의사를 밝혔죠. 이 포지션에 적합하지 않은 경력이지만 너무 좋아하는 커뮤니티라 뭐든 일해보고 싶다고. 제 메일을 보고 대표님이 기회를 주셔서 바라던 커뮤니티 매니저를 해보게 되었어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면서 수많은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 작가 15인을 인터뷰하고 책으로 엮어내는 일이라든지, 공예 브랜드를 기획하는 등 직장인일 때는 돈을 내고 배우던 것들을 일로 경험하면서 포트폴리오까지 쌓을 수 있어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얻게 된 것들이죠.
Q. UX 기획자에서 콘텐츠 마케터로 커리어 전환을 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해요.
퇴사를 고민할 때 커리어 전환을 하고 싶었지만 경력이 없으니 지원할 수 없었죠. 그런데 회사 밖에서 내가 원하는 곳 가까이 나를 데려다 놓으니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매일 일상에서 경험한 것들을 수집해서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면서 느낌표를 찾아내는 커뮤니티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그곳에서 함께하는 분이 채용 정보를 알려주셨어요. 꾸준히 지속한다는 건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이라면 분명 이 일이 잘 맞을 거라면서요. 그렇게 콘텐츠 마케터로 지원했고 입사를 앞두고 있어요.
목표를 향해 안간힘을 써도 쉽지 않았을 일인데, 좋아하는 일을 즐기다 보니 눈앞에 기회가 찾아온 거예요. ‘과연 좋아하는 길을 가도 될까?’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시작한 퇴사라이프를 ‘좋아하는 길에 답이 있다’는 확신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어요.
Q. 모험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제는 모든 걸 제 기준으로 보면서 나만의 방식을 찾으려 한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부러운 마음에 남을 그대로 따라 하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그게 자책으로 이어졌어요. 남들이 좋다는 길에서 인정받으려 열심히 했는데 그 길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지 않으니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껴졌고요. 메타인지가 부족했죠.
내가 원하는 걸 제대로, 끝까지 해보니 어떤 게 나랑 맞는지, 맞지 않는지 알겠어요. 나에게 잘 맞는 방식은 직접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더라고요. 누군가가 알려주는 답을 따라가기보다 스스로 내게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고 믿어요. 나만의 리듬을 찾고 관찰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 과정을 즐기는 건 여기서부터 시작하더라고요. 전 시작은 잘하지만 마무리가 안 되는 사람이거든요. 예전엔 단점을 고치려 애썼는데, 지금은 내가 잘하는 시작에만 집중해요. ‘작심삼일을 백 번 하면 1년이야’ 하면서요. 나를 몰아세우고 자책하던 사람에서 스스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으로 바뀐 게 가장 큰 소득이에요.
Q. 마지막으로 새로운 출발을 앞둔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퇴사하고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사람이 갑자기 바뀌지 않더라고요. 새로운 기회 속에서 만족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남들과 비교하며 자책과 후회를 하는 시기도 주기적으로 찾아왔어요. ‘이 길 맞나?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지금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저항감이 불쑥 들곤 했어요.
그런 감정에 지배당해서 에너지를 낭비한 적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하듯 나도 힘껏 나를 응원하고 믿어주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또 관성처럼 반발감이 찾아오겠죠? 그럴 때면 ‘저항감이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내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야’라고 말해주면서 오히려 잘하고 있다고 지지해주고 싶어요.
자신이 만든 디깅노트 Digging Note와 진 ZINE을 소개하는 다영 님의 반짝거림을 보며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의무만 있고 기회가 없는 삶은 억제된 삶이다. 기회만 있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 기회와 의무가 융합된 삶이 참된 삶이다.’
실망과 자책을 쌓으며 기회를 꾹꾹 눌러 참아온 두어 Doer님이 계시다면, 자신에게 대담 한 스푼과 다정 한 스푼을 허락해보면 어떨까요? 나에게 보내는 용기와 지지는 답답한 마음속 마중물이 되어줄 거예요.
Editor. 김상아
Photo. 김상아
발행일. 2024. 2. 1.
두잉레터에 연재한 <회사를 떠난 지금,> 두 번째 글입니다.
<회사를 떠난 지금,>은 회사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일의 방식을 찾아가는 여섯 분의 커리어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