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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ow yourself 욕망은 경험으로 실현된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by 보리 Bori

“하고 싶은 일은, 언젠가 결국 하게 되어있다.”


원하는 일을 위해 여러 번 전직을 하면서 깨닫고 받아들이기로 한 나의 천성이다. 재무에서 공간 기획으로, 다시 브랜드 마케팅으로, 또다시 콘텐츠 에디터로. 15년간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몸부림쳤지만,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이 괴로워서 본성을 억누르려 애쓴 순간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일보다 잘하는 일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자신이 쌓은 자산을 기반으로 피보팅 해야 한다” 는 말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상식적이어서 그렇게 해보려고도 했지만 결코 나는 내 욕망을 이길 수 없었다. 잘하는 일이 아니고, 내가 기반으로 한 일이 아니어도 하고 싶은 건 해야만 했다.

꿈꾸던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 괴롭고 힘들 때마다 후회하기도 하고 다시 되돌아가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또 원하는 길로 들어서곤 했다. 그렇게 애쓰고 괴로워하고 또 노력하면서 능력이 개발되었고, 하면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 물론 잘하는 역량을 기반으로 할 때보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기는 했지만 그리도 결국, 마침내, 원하는 바를 이뤄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남들이 옳다는 말에 흔들리기는 했지만 결국 나에게는 통하는 말은 아니었구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해내야만 하는 욕망이 정말 강한 사람이구나. 앞으로도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다 느끼는 걸 결국은 해내는 방향으로 살아가겠구나’ 하며 내 정보를 업데이트해 가던 중, 책에서 ‘코나투스’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의지를 코나투스라고 불렀다. 그는 인간이 억압에 저항하고 집요하게 삶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코나투스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코나투스는 분투하는 특성으로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지킬 수 있는 힘이다. 스피노자는 코나투스가 밖으로 표출되면 열정이 되지만, 안에 머물 경우 의지의 형태를 띤다고 말한다. 열정과 의지는 어쩌면 한 끗 차이인 것이다.
- 김보라,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83쪽


코나투스? 이 단어 어디선가 본 적 있는데? 문장집을 검색해 봤더니 야마구치 슈의 책에서 3년 전 수집해 놓은 문장이 검색되었다.

스피노자는 본래 자신다운 자신으로 있으려는 힘을 코나투스라고 불렀다. 라틴어로 ‘노력, 충동, 경향, 성향'이라는 뜻. 사람의 본질이 그 사람의 외모나 직함이 아니라 코나투스에 의해 규정된다고 믿었다. 당연히 코나투스는 다양하며 개인마다 다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를 두고 좋거나 나쁘다고 규정할 수 없으며 코나투스의 조화에 따라 결정된다.
- 야마구치 슈, 일을 잘하는 법, 42쪽


본래 자신다운 자신, 사람의 본질 이라니! 생긴 꼴값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었다. 영상을 몇 개 보다가 나의 인생책을 쓴 니체나 에리히 프롬이 스피노자와 철학적 공감대를 이룬 이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스피노자를 제대로 알아봐야겠다 싶어 해설서를 찾았다. 제목에 끌려 선택한 책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을 읽고는 완전히 스피노자에 빠져들었다. 감상과 생각을 꼭 남겨야겠다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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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너무 좋다!’고 느끼는 책은 크게 두 종류인 것 같다. 갇혀있던 사고의 틀을 와장창 깨 주거나, 혹은 느낌적으로 알던 것을 정연하게 표현하고 정리해 주는 경우. 이 책은 후자였다. 어렴풋하게 품고 있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어 공감받는 느낌이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감정(특히 부정적 감정)이 왜 생기는 건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방법론도 유용하게 다가왔고. 무엇보다 타고난 욕망을 데리고서 자유롭게 살려면 ‘경험에 의한 이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도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같아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은 의사이면서 철학, 역사 등 인문학을 공부하는 저자 심강현이 스피노자의 사상을 풀어내는 해설서다. 욕망과 감정과 자유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풀어가는데, 난해한 표현 없이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써져 있고 욕망과 감정, 감정과 자유, 다시 자유와 욕망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차례로 풀어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서 공감하며 읽다 보면 주요 키워드들이 유기적으로 이해된다. 철학책에 친숙하지 않은 입문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감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 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 반이다.


저자는 ‘스피노자의 철학은 어떻게 하면 상처받은 이들이 스스로 슬픔을 치유해 내고 끝내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 고심했던 사유의 흔적들일 것(51쪽)’이라고, 또한 ‘스피노자가 에티카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먼 곳의 빛나는 것만을 찾으려는 우리들에게 과연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그 삶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길, 미리 정해진 목적이나 정답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해답을 얻게 될 과정을 위한 약간의 도움말이었을 것(63쪽)’이라 말한다.


삶에서 추구하는 바가 있으나 마음에 품고만 있고 실천하지 못해 아쉽거나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

감정(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많이 휘둘린다고 느끼는 사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왜 사는 걸까? 하는 고민을 부쩍 많이 하게 되는 사람


이런 이들이라면 분명 공감하며 읽을 것 같고(내가 그랬듯이), 실제로 이런 고민을 하는 지인 여럿에게 선물해 주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이들도 많았는데, 모두에게 책을 선물할 순 없으니, 도대체 이 책이 뭐길래 이리 호들갑인지 가늠이나 해볼 수 있도록 저자가 소개하는 스피노자 사상을 주요 키워드별로 짚어보고 수집한 문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1부 ‘욕망’


욕망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165쪽
자신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려는 생명의 힘을 코나투스라고 합니다. ‘자기 보존의 욕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코나투스야말로 스피노자 사상을 설명해 주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입니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84쪽

스피노자는 욕망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삶을 전진시키는 원동력이라며 이를 ‘코나투스’라 명명한다. 코나투스 conatus는 노력, 추구, 경향, 관성을 뜻하는 라틴어인데 쉽게 말해 타고난 성정, 기질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은 의식적인 자유 의지에 따라 생동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욕망이 우리를 움직인 것이라 말한다. (매트릭스의 파란 알약처럼 그저 순응하고 살라는 건가? 혹은 숙명론인가? 하는 반감도 살짝 들 수 있지만, 뒤에서 이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이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스피노자는 범신론적 관점을 가진 철학자이다. 모든 존재가 하나의 실체(신)이고 생명에게는 각자에 맞는 고유한 완전성이 있다고 말했다. 마치 권투에 체급이 있듯이 말이다. 때문에 모든 존재의 본질과 그 다양성을 인정하며 선악은 그 자체가 갖는 특성이 아니라 그것이 맺는 관계에 따라 정해질 뿐이라 보았다. 나와 관계를 맺은 어떤 것이 선인지 악인 지는 자신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실재성은 곧 완전성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2부, 82쪽
대자연 속에서는 원래 선한 것도 원래 악한 것도 없다. 선악은 ‘관계’에 의해서만 가려질 뿐. 그 관계가 ‘결합’이라면 그것은 그에게 선이며, 관계가 ‘해체’라면 그것은 그에게 악이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90쪽


2부 ‘감정’


스피노자는 감정의 위력 앞에 끌려다니는 우리의 상태를 감정을 ‘겪어 나간다’는 말로 표현했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대처해 행동하기보다는 외부에서 주어진 사건이나 남들의 말과 행동에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알처럼 수동적으로 겪어 나갈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라는 말이기도 하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160쪽

저자 역시 감정을 ‘우리 영혼의 무능력한 파수꾼’이라 표현하며, 우리는 늘 예민한 감정과 정서의 문을 활짝 열어 둔 채 생활하기 때문에 밖에서 들어온 자극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것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이기 마련이고 때문에 인간은 대부분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수동적인 감정(정념)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욕망이 실현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라 표현했다. 욕망이 실현되는 긍정적인 감정은 ‘기쁨’의 형태로, 욕망을 거스르거나 억누르는 부정적인 감정은 ‘슬픔’의 형태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감정은 욕망이 실현된 이상적인 상태로 3부 ‘자유’에서 자유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언급하며 2부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유와 욕망을 연결하고, 그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사고보다 감성이 강한 이들이라면 공감될 문장들이 가득하다. 경쟁심·경외심·경멸의 미움, 복수, 미련, 후회, 규정, 교만, 자기 멸시 등 감정의 실체를 뜯어보고 이를 어떻게 다스릴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우리 도토리들은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도토리들 앞에서는 경쟁심을, 우리보다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왕밤 앞에서는 경외심을, 또 상대가 도토리에 미치지 못하는 좁쌀이라고 생각될 때는 경멸을 느낀다. 경쟁심은 질투의 온상이며, 경외심은 질투를 포기한 상태이고, 경멸은 질투마저 아까운 대상을 향한 멸시이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156쪽
가장 소심하고 겸손한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은 보통 강한 명예욕과 질투를 갖는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230쪽
대개 규정은 부정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 볼펜을 빨간색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 볼펜은 더 이상 파란색도 노란색도 아니며, 그 어떤 색도 아닌 빨간색으로 한정된다. 보통 규정짓는다는 것은 그것 이외의 것이 더 이상 아님(부정)을 공표하는 선언과 같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163쪽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도 상처받은 열등감과 그로 인해 짊어지고 가야 하는 모멸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무던히 애쓴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159쪽
타인에게 우리 슬픔의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복수심’이 담당하고,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책임을 모두 뒤집어씌우는 것은 ‘양심의 가책’이 담당한다. 어찌 보면 복수심과 양심의 가책은 감정의 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난처함을 쉽게 극복해 보려는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188쪽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분석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고독과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차라투스트라가 초인을 열망하며 스스로 산정의 동굴로 들어가 끝내 깨달음을 얻어 돌아오듯이, 때론 우리에게도 잠시나마 우리를 쉬게 할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하다. … 동굴은 들어가기 위한 동굴이 아니라 나중에 그 속에서 다시 나오기 위한 동굴이다. 그리고 동굴에서 나올 때마다 우리 손에는 자신을 돌아보며 얻어낸 작지만 큰 성찰의 조각들이 하나씩 쥐어져 있을 것이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184쪽


3부 ‘자유’


1부에서 우리에게 자유 의지는 없다며 욕망(코나투스)이 우리를 움직인다고 말했는데, 이는 자칫 그저 숙명을 받아들이라는 말로 들려서, 삶에 주도성과 능동성을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3부에서는 ‘자유’를 욕망을 실현하는 것, 원하는 바를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타고난 본성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이상적인 삶을 위해서는 욕망을 성취할 수 있는 자기 내부의 역량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단지 무언가를 ‘하고 싶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할 수 있음’으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나갈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에 도달할 것.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던 일을 여러 번 실패를 거쳐 드디어 처음으로 해내게 되었을 때 지금껏 나를 구속하던 그 일은 이제 자유롭게 해낼 수 있는 기쁨으로 변한다. 즉 자유란 다른 게 아니라 기쁨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209쪽

이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양과 늑대와 양치기 개'의 이야기를 전한다. 들판에 평화롭게 살던 양들은 언제 어디서 오는지 모를 늑대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했는데 어느 날 양치기 개가 나타나서 이 늑대의 공격을 막아준다. 양들은 개를 통해 늑대의 움직임을 살피고 피신하는 법을 배워가면서 자유를 느끼게 된다. 결국 양(욕망)이 자유를 느끼는 과정은 개(이성)를 통해 가능해진다는 것.

욕망과 무지만을 쥐고 태어난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경험을 통해 서서히 이성을 일깨우게 되고 그 이성이 크게 자라나 자신의 행동을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기쁨과 자유가 가능하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218쪽
사고(이성)는 욕망의 열을 잃어서는 안 되고, 욕망은 사고(이성)의 빛을 잃어서는 안 된다. - 윌 듀런트, 철학 이야기 김의경 옮김, 흥신문화사, 1987, 168쪽


이제 이야기는 자존감으로 옮겨간다. 스피노자는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명예욕과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기만족을 구분한다. 명예욕에 눈이 멀어 모두가 좋다고 해서 덥석 시작한 일은 일생의 고문이 될 수도 있다.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며 답답함을 느끼며 다른 일을 꿈꾸며 여유가 생기기를 바라지만 꿈꾸는 일은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한다. 하고 싶은 일을 동경하기만 하는 가짜 삶을 사는 것이다.

남들이 다 좋다고 말하는 기준에 따라 아리 속에서는 ‘사회적 자아’라는 껍질이 만들어지고 주로 경제적 지위, 명예, 권력에 집착하게 된다. 내 속에 사회적 자아가 강해질수록 정작 필요한 ‘진정한 나’는 메말라 간다. 이런 반복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느끼는 자기만족과 남들에게 받는 인정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243쪽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 진실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부문에서 뛰어난 사람은 하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 그리고 그것에 영혼을 송두리째 바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 에픽테토스, 에픽테토스의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삶의 기술, 강분석 옮김, 사람과책, 2001, 47, 60쪽
소유나 존재냐를 썼던 에리히 프롬은 우리 삶의 형태를 크게 존재와 소유로 구분한다. ‘존재’(진정한 자아)란 자신의 능동성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말하며, ‘소유’(사회적 자아)란 그런 능동성이 결여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을 소유를 통해 해소하려는 삶의 양상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권위의 존재가 아닌 사람은 권위를 소유하려고만 한다.”
남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충만한 능동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반면 그런 능동성이 결핍되면 우리는 결핍된 양만큼 더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그 결핍을 채우려 한다. 우리가 당당히 존재하지 못할 때 소유하려고만 하는 것.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244


그럼 자기만족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스피노자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을 통해 이성이 깨어나고 힘을 발휘할 것이라 말한다. 나의 자존감을 채우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나아가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 또한 경험의 이성이 힘을 발휘하여 역량이 되어가는 건, 행동을 통해 실현된다고 말한다.

이성을 통해 상황의 원인을 인식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새로운 원인이 되어 그 상황에 참여하는 행동이다. 지금껏 정념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이성의 빛에 의해 수동적인 ‘겪음’을 벗어나 능동적으로 ‘할 수 있음’으로 향해 가는 것이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226쪽
나는 경험이나 실천과 일치하지 않는 사안을 관조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 스피노자, 정치학 논고, 신학정치론 정치학논고, 389쪽


또한 스피노자는 현실을 떠난 것은 자유가 아니며, 현실에 닿아 있는 것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유가 보인다며 지금 발붙이고 있는 현실에서의 현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며 미래의 목표를 위해 오늘은 늘 희생되고 과정이 무시된다는 점을 꼬집는다.

이성을 꾸준히 도야해서 어느 시점에 도달해 드디어 완성된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단련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이성을 쓰면서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또 누군가를 이해하는 완벽한 이해의 시점이 미래 어딘가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꾸준히 알아 가려는 이해의 과정 자체가 이미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289쪽
먼 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푸념은 그가 걸어온 모든 길을 마치 육상 경기장의 트랙 같이 완전한 원환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그의 모든 길은 나못에 새겨진 ‘나선형이 길’이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지라도 도착 지점은 늘 출발 지점으로부터 일정 부분 상승한 곳에 놓여 있기 마련이다. 마치 나사가 회전하며 높이가 변하듯이 그는 한 바퀴를 돌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지점 사이에 틈(차이)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만든 틈이야 말로 그가 살아온 의미일 것. 나선을 따라 걸었던 모든 길이 경험이라면, 나선이 회전하며 만든 틈은 바로 삶이 지닌 의미이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290쪽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영원함에 대한 질시도, 또 유한함에 대한 한탄도 아닐 거다. 다만 우리가 맞이하는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순간에 영원을 새겨 넣는 일이다. -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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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의 시선을 오래 의식하면서 살다가 뒤늦게 전직과 이직을 하며 도전의 진폭을 키워왔는데, 그 과정에서도 나는 스스로를 믿어주기보다 끊임없이 의심해 왔던 듯하다. ‘잘못된 선택 아니었나? 삽질이면 어쩌지?’ 2년 전에 밑미를 그만두고는 하마터면 다시 안정적인 길을 가겠다며 나의 코나투스를 무시할 뻔했는데, 요즘 드는 생각은 마음의 소리를 따르길 너무 잘했다는 것. 하고 싶은 일에의 마지막 도전이라며 능력 있는 에디터가 되어보겠다고 정진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일하는 과정 자체의 재미를 느끼고 나아가 나에 대한 신뢰감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력을 키우기까지, 그리고 나에 대한 믿음을 갖기까지 마지막 10% 정도가 부족했던 상태에서 이를 채우지 못하고 포기했으면 어쩔 뻔했나 아찔한 생각도 들었다.

나선형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조금씩 성장하며 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말에서 스피노자의 논리가 내 경험과 켜켜이 조응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처럼 주저하고 용기가 부족한 이들에게 도전하고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내 생각을 설득력 있게 대변해 주고 응원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철학책은 유난히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독자가 쉽고 편하게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붙여보는 저자 인터뷰 전문.

궁리 출판사 심강현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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