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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갭이어(GAP YEAR) 프로젝트

GAP YEAR : 흥미와 적성을 찾고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기간

by 보리 Bori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13년 동안, 심지어 이직을 하는 순간에도 짧은 휴식조차 없이 열심히 달렸다.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성실하게 저축하며 미래를 준비했고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최근 1년, 일에 대한 성취감과 재미가 사라지고 대안과 희망도 보이지 않으니 일이 곧 삶이라 여기던 사람은 목마른 초록이처럼 누렇게 뜨고 시들어 비틀어져가고 있었다. 두통약과 몸살약을 달고 살고 촉기가 사라져 갔다. 일기에는 회사에 몸이 메여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못해서 아쉽다는 불만과 무기력이 층층이 쌓여가고 있었다. 두 달 동안 맘 편히 휴가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 지쳐갔다.


이런 상황에서 내 집 마련이 꿈인 우리집 집돌이의 제안은 단비 같았다.

"내 꿈은 천천히 실현해도 괜찮으니까 좀 쉬어가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한번 해보면 어때?"


그동안 이 정도 일했으면 잠시 쉬어가도 되지 않을까? 쉬다가 평생 쉬어야 하게 되면 어쩌지? 월급통장에서 자동 이체되는 것들은? 괜찮아 쉬는 기간의 모든 경험이 자산이 될 거야~ 과연 기약 없이 친구의 꿈이 멀어져 가도 정말 괜찮을까? 더 늦기 전에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을 통해 흥미와 적성을 찾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된다 안된다, 괜찮다 아니다를 반복하며 생각만 하던 것들을 적어서 정리해 본다.


필요 경비

10년 넘게 일하면서 저축한 잔고가 쌓여있는 통장이 있고, 무리해서 영끌을 하지 않았기에 내 집도 없지만 빚도 없다. 급여명세서와 자동이체내역, 신용카드 명세서 등을 보며 평균적인 한 달 생활비를 계산해보고 1년 후 잔액도 예상해 본다.



하고 싶은 일 적어보기

<생산성을 높여요>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인의 브랜드를 만든 모빌스 소호님의 브런치에서 1년 전 우연히 접한 콘텐츠다. 생산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첫인상 때문인지 이 콘텐츠는 자기 계발의 끝판왕일 것 같다는 예상을 했었는데 예상과 완전 달랐다. 건강하게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때부터 생산성 높은 삶을 바라고 실천하려 애써왔지만 쉽지 않았다. 회사가 아주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갭이어 라이프는 몸도 뇌도 반복되는 패턴에 자연스럽게 익을 수 있도록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자. 이를 위해 필요한 일들과 책 읽기, 전시 보기, 여행 다니기, 기록 남기기 등등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들도 모두 써본다.


- 내가 계획한 대로,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하루와 삶을 살기

- 건강한 식습관 기르기 = 우유, 밀가루, 당분 줄이기

- 적어도 이틀에 한 번 운동하기

- 규칙적인 생활하기

- 책 읽고 생각 정리하고 실천하기

- 전국의 서점/미술관을 모두 가보고 공간과 프로그램에 대한 특징 정리하기, 지도 만들기

- 21년도의 현대미술 전시 모조리 보고 인상 깊은 작품과 작가의 기록 남기기

- 서울의 거리와 골목 (특히, 멀어서 잘 못 가본 연남동/홍대/을지로/문래동 등) 걷고 느낀 점들을 사진/영상/글로 정리하기

-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해본 갭이어의 기록으로 독립출판


많아 보이지만 막상 카테고리별로 묶어 보니 별로 많지도 않고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상상만으로도 에너지가 솟아나는 느낌이다.



그만둔다 생각하고 살아보기

매일 맞닥뜨리는 순간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다면' 하고 가정해 본다. 대부분의 시간은 희망적이고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 같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어느 주말, 늦잠을 자고 목적 없는 TV 채널 돌리기로 어영부영 시간을 죽이는 늘보가 되어 있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쉬면서 하루를 알차게 보내지 못하면 불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다.

쉬면서 괴롭지 않으려면 뭔가 장치가 필요하겠다.



회사 다니면서 아침과 저녁 리추얼 만들기

5개월 전부터 밑미의 온라인 리추얼을 시작하면서 잠들기 전 40분씩 책을 읽고 내 감정에 대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소모적인 하루 중에서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는 뿌듯함에 리추얼을 확대하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추구하던 생산성 높은 삶과 자연스럽게 목적과 방법이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혼자 놀라 했다.

아침과 저녁 리추얼을 만들어 규칙적인 생활안에 하고 싶은 것들을 구성하면 하고 싶다고 적은 일의 절반은 자연스럽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지금부터, 회사를 다시면서 리추얼을 실천해보자.


12월 전면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작년 여러 번 시도하다가 꾸준히 유지하지는 못한 아침운동과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보면서 해봐야지 다짐만 했던 모닝 글쓰기도 함께 시작했다. 저항이 큰 리추얼인 만큼 함께의 힘을 받아보고자 온라인 리추얼 프로그램도 신청하여 인증하며 함께 진행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리추얼만 잘 유지해도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지는 않았다.


1. 아침과 저녁 리추얼

아침 리추얼 : 모닝 페이지 - 과일과 커피 - 아침운동

저녁 리추얼 : 책 읽기와 감정일기


나는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한 소장용으로 인스타 피드를 아카이브 하는 경향이 있다. 나의 특성을 활용해 규칙적으로 리추얼을 하도록 장치를 만든다. 예쁘고 규칙적인 피드를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실천할 수 있도록!

가장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은 아침운동을 유지하기 위해서 잠들기 전 베개 옆에 내가 좋아하는 컬러풀한 팬톤의 양말을 두고 잠들었다. 이것도 또 하나의 장치 :)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은 알록달록한 양말 사진 대신 운동은 휴식이라는 메모장으로 피드를 대신했다.


아침 리추얼 [음악-모닝페이지-운동] 세장, 저녁 리추얼 [음악-독서-감정일기] 세장 하루 6장이 한 세트




2.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기록 남기기 : 매일 루틴 컬러링

잠자는 시간 7시간 외 남은 17시간은 하루 평균 10시간의 근무시간과 출퇴근을 위한 4시간으로 소비되었고 남은 3시간이 유일안 나의 시간이었다. 그마저도 녹초가 되어 무의미하게 흘러가거나 잠으로 채워지기 일쑤였지만 아침저녁 리추얼을 하면서 30분의 짧은 시간도 얼마나 밀도 있게 보낼 수 있는지 경험했다.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선 현황 파악이 필요했다.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체크하고 회사에서의 시간도 가능하면 확인해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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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모여 일주일 단위로 정리를 하다 보니 놓치고 있던 패턴이 보였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하찮게 여기는지, 어디서 에너지를 얻고 어디서 쉽게 소진되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는 시간은 매우 짧았으며, 무언가를 하기 위한 준비과정에 더 오랜 시간을 소요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래서 뇌와 몸에 습관을 들이는 게 필요한 거구나. 촘촘하게 루틴을 만들어야겠구나 싶다.



계획 세우고 1년 후 모습 상상해보기

리추얼로 안정적인 하루의 기초를 세웠으니, 요일별로 월 단위로 어떻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진행해 나갈지 계획을 세워본다. (글을 쓰다가 문득 느끼는 건데 나란 사람은 정말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계획이라 생각하니 뭔가 팍팍한 느낌이다. 팔딱거리는 에너지를 불어넣고 싶어 형식을 바꾸어보았다. 시점은 1년 후의 나. 계획한 대로 갭이어를 보낸 내가 어떤 모습인지 그려보는 것으로!

이 글의 제목은 상상은 현실이 된다.


갭이어를 성황리에 마친 2022년의 내가 돌아보는 1년


좋았어! 이 정도면 프로젝트 준비가 차곡차곡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D-DAY는 2021년 3월 29일 내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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