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의 날씨는 생각보다 변화무쌍했다. 사계절 주기와 기후 상태는 한국과 비슷하나 하루 내의 편차가 심해서 한여름 8월과 한겨울 12월을 제외하고 다른 날들은 아침에 겨울로 시작해 한낮엔 한여름 날씨가 되거나, 여름이라고 얇은 옷으로 외출했는데 갑자기 초겨울 찬 바람이 불어오기도 한다.
한해 두 해째까지도, 여름이 와서 봄 겨울 옷 정리하고 나면 찬바람이 몰아쳐 다시 옷장을 뒤지곤 했다. 평소 기상을 확인하지 않거나 보온 관리에 조금만 방심해도 감기에 걸리기 쉽다. 그래서인지 리옹에는 늘 감기로 콜록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들은 병원도 잘 가지 않고 평소 약도 잘 안 먹는 채 견디는 걸 많이 봤는데, 근래 코로나 사태가 악화되면서, 프랑스 사망자가 급속히 증가한 것과 아마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리옹 우측에는 알프스 산맥이 뻗어 있고 왼쪽 아래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이 있어 기상의 급격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날이 맑을 때면 5구에 위치한 푸흐비에르 언덕에서 알프스 봉우리의 만년설을 볼 수 있는 날도 더러 있다.
푸흐비에르 언덕에서의 리옹 시가지, 구글 이미지
리옹에 가서 처음 놀랐던 건, 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척 더러웠고, 거리에 걸인들이 많았고 히피들이 어마하게 큰 개들을 사람 다니는 도심 큰길에 아무렇지 않게 풀어놓거나,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 담배 피우는 거였다. 이 풍경이 너무 일상적이어서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불편한 내색을 드러내 놓고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표정이나 눈빛의 차가움은 나와 다르지 않았다.
초반 3개월은 리옹 1구 올드타운에 위치한 사설 어학원에 다녔는데 그 학원의 비용이 조금 비쌌지만 교민 한국인 직원이 있어서 생활 관련 여러 가지 정보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어학 연수생들이 많이 다녔다.
임시 숙소가 있던 3구 Sax-prefecteur에서 어학원까지 버스로 10분 정도 가고, Hôtel de ville Luis pradel 정류장에 내려서 언덕 사잇길을 15분 걸어가면 몇백 년 흐른 옛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학원 건물이 좁은 골목길에 나타난다. 수업 전이면 강사와 학생들이 모여 있기도 하고 한국 학생들의 익숙한 대화들도 들린다.
위,호텔드빌(시청) 테호 광장. 아래, 루미에르 축제 전경, 구글 이미지
아침반 수업은 9시에 시작해서 점심시간 1시간을 끼고 오후 3시에 마치는 주 5일간 과정이었다. 남편과 나는 다른 레벨 수업이어서 간혹 오전반과 오후반을교대로 다니면서 좁은 공간 속에서 오래 같이 지내는 시간을 조절하기도 했다.
수업에는 한국 학생이 보통 50퍼센트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중국, 일본, 유로존, 남미 국가 순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강의실에도 쇼핑 거리에도 항상 있었고, 밝은 표정에 세련된 차림새로 어디서나 한눈에 보였다.
우리가 도착한 당시에는 한국 마트를 겸한 아시아계 작은 마트가 6구 어디쯤 한적한 곳에 있어서 다니기에도 불편했고 물품도 별로 없던 차에, 올드 타운과 다운 타운이 인접한 중심부에 한국 마트가 생겨 이후 생활하는 동안 한국 식료품은 언제든 편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리옹 중심가 코흐텔리흐, 구글 이미지
아시아계 식료품도 함께 구비되어 있었고, 일본인이나 유럽계 학생들 중에 김치를 사가는 모습도 몇 번 보았다. 김치는 종*집 포기김치 두 봉지면 우리 2인이 한 달을 먹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턱도 없이 적은 양인데, 아무래도 요리 형태나 방식이 달라지면서 자연히 김치 섭취가 줄게 되었다. 모든 종류의 매운 김치들을 매우 좋아하다 보니 항상 경미한 위염이 있어 의사의 주의를 듣곤 했었는데 이곳에서 김치 섭취가 자연 줄게 되어 덕분에 위장 상태가 좋아지기도 했다.
맵고 칼칼하고 짭짤한 음식과 멀어지면서 입맛도 식성도 점차 변했지만, 어느 날에는 한국의 좋아하는 음식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며 잔뜩 침이 고여 괴로운 적도 있다. 파리와 달리 리옹에는 한국 식당은 "코리안 바비큐", "강남" 등 몇 개 없는 데다, 전자는 일반적 한국식 요리가 마련된 뷔페 레스토랑이지만 한국적 특색이 명확해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리오네즈들이 많이 간다.
점심을 위해 2개의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준비해서 어학원 카페에서 수강생들과 어울려 먹기도 하고, 날이 따뜻할 때는 학원 앞 공원 벤치에서 햇빛을 쪼이며 먹기도 한다. 유럽인들이 특히 선탠을 좋아하는 줄 알지만, 실상은 일조량이 무척 적어 해가 환하게 쨍한 날엔 거리 벤치며 야외 카페로 모두 쏟아져 나온다.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우리도 해가 맑은 날엔 해맞이하러 산책을 서둘러 나간다.
까흐노 광장 공원, 구글 이미지
사설 어학원에서 3개월 과정을 마치고 비용이 보다 저렴한 대학 부설 어학원으로 옮겼다. 사설 어학원의 15명 이내이던 정원보다 2배쯤 않았고 대학 시설 안에 있어 시설 규모도 당연히 컸으며, 그만큼 소란스럽고 그만큼 다채로운 활동들이 많았다. 수업 과정이 무척 짜임새 있게 진행되어 체계적인 수업은 가능했으나, 인원이 많고 꽉 짜인 스케줄 등으로 자유롭게 언어에 대한 즐거움을 체득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수강생의 국적 연령층이 다양하여, 수업 시간에 그들이 각국의 발음으로 만들어내는 프랑스어는 시간이 흘러도 알아듣기 쉽지 않았는데, 참 신기하게도 강사는 자신의 모국어여서 그런지 다 알아듣는다. 새로운 어학원에서 우린 세 학기 어학연수 과정을 마치고 각자 계획하던 대로 다시대학원 과정에 진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