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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Apr 25. 2021

피상적인 것들로부터 자유,

삶의 선택이 온전하기를,



"In our own lives, living primarily for the deeper and eternal reality is often hard to do. It’s easy to keep our eyes on the superficial and less important aspects of life. How do I make more money? Or buy a new car? Or have a fancier meal? How can I better entertain myself? What new piece of clothing should I buy? And the list goes on.


Of course none of these things are evil, but they are all passing and will not have an effect upon our eternal soul. And, in fact, if we give too much attention to the superficial and least important aspects of life, they will have the effect of distracting us from that which is most important."


<Food for Eternity >,  April 19, 2021,

Monday of the Third Week of Easter

Readings for Today,

Catholic Daily Reflections  


(삶에서 보다 심오하고 영원한 실체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삶에서 쉽게 피상적이고 덜 중요한 일들에 관심을 쏟는다.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나, 새 차를 사야 하나, 멋진 식사는, 떻게 더  즐길 수 있을까, 어떤 새 옷을 사야만 하나, 목록은 점점 쌓여 간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악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곧 지나가버리고 우리 영혼의 영원성에는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사실, 우리가 피상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주력할수록, 그것들은 우리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할 것이다.)




직장에서 대우를 잘 받거나, 승진해서 월급이 오르면 능력도 인정받고 열심히 일한 대가로 보상도 받으면, 생활과 소비의 여유를 즐길 수 있으니 얼마간은 마음도 몸도 느긋해지고 충만함도 함께 따라온다. 그 즐거움과 보람이 편한 상태로 얼마나 계속될까, 또한 열심히 일하며 소모된 정신과 신체의 에너지는 다시 어떻게 충전해야 하며, 피로나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삶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매우 다양하고 그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삶임에도 자신의 의지나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도 그리고 찾았다 해도 그것들을 위한 선택들도 쉽지는 않다. 우선은 현실적인 삶을 지탱하는 각종 욕구와 필요들을 챙겨야 하고,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보다 더 큰 욕망들이 따라오기 시작한다.



우리의 욕망들이 피상적이라고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표면적인 것들로 보이지만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의미들이 모두 각자 다른 의미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명품백을 사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쪼개어 벌어들인 아르바이트 용돈으로 그 욕망을 성취하는 일이 크게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인간의 욕망은 인간 삶의 또 다른 지지대이며 그 욕망이 동기가 되어 다른 꿈을 꾸기도 하니까.


무엇이 본질적이고 무엇이 피상적인 것일까, 피상적으로 가볍게 그리고 크게 고민 없이 그때그때의 충동을 만족시키며 사는 삶이 무의미한 걸까? 우리의 충동은 나쁜 것이고 의지는 올바른 것인가? 의지적 선택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간의 욕구는 순차적으로 작동한다는 심리학자들의 이론으로 보면, 인간이 기초 생존 욕구를 충족한 뒤에는 누구나 보다 고상한 고차원의 욕구들을 원의하며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잘 성장하고 성숙하고 있는가?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충족된 다음이라면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전진하고 있는가,



어느 날은 가본 적 없지만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에 빠져 있는 것 같이 입안이 메마르고 목이 칼칼하며 온 몸에 물기 하나 없이 생명력이 다 고갈되어 완전히 메마른 모래알이 된 것 같은 날들이 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멍하게 유튜브의 미사를 보며 성경 독서를 읽고 또 읽는 것이다. 그냥 읽는다. 그런 때는 정말 아무 기력도 남아 있지 않을 때니까 입으로 중얼중얼 읽는 것만 겨우 하거나 그러다 조금 힘이 나면 영문 성경을 발음해가며 읽어나간다.


영문 성경을 읽는 건, 한글 성경은 너무 익숙해서 그냥 귀가에 눈가에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영문을 읽으며 영문을 해석하며 그 의미를 다시 곱씹어본다. 그렇게 30분, 한 시간 정도 성경 말씀에 기대어 잠겨 있다 보면 조금씩 기운이 차오른다. 어디서 차오르는지 모르지만 거짓말처럼 없던 생명력이 채워진다. 그리고 아하, 신앙의 신비여! 를  외치게 된다.  



그리고 전날을 되새겨 본다. 오늘 이토록 기력이 고갈된 이유를 찾아본다. 아, 우리가 피상적이라고 말하거나 충동적이거나 물질적이거나 쾌락적이라고 말하는 것들로 꽉 채워졌던 날은 그날은 무척 즐거웠었는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모래 바람에 쓸려간 너덜너덜한 자신이 남아 있었다.


피상적인 것들이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그것이 악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즉흥적 충동들과 쾌락들을 순간 만족시키며, 동시에 정신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들은 정신의 에너지를 소비한 만큼 주어지게 되고 그래서 피상적인 것들을 소유하게 되면 될수록 우리 자신의 생명력은 점점 고갈되어간다.



우리가 피상적인 것들을 신중하게 피하며 취사선택을 잘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생명의 에너지가 되는 본질적인 것들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신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살기 위해서 나는 성경을 읽고 신앙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기도를 매일 하는 이유도 내가 살기 위해서다.  


삶이 모래 바람에 쓸려 가듯, 모래조각으로 남아 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신앙을 붙잡고 산다. 온전히  살기 위해서, 삶의 예기치 않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인생의 쓰나미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성경 읽기를 꼭 잡고 산다. 오늘도 너무 지치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냈다. 휴, 내일도 모래바람에 쓸려가고 싶지 않다.    



사진, 크리스탈 파크 in Po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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