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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리옹에서 탈출했다.'

우리는 코로나 피난민

by Seraphim




리옹을 급히 탈출? 해 포르토에 12시간 걸려 도착하고 다음 날 18일부터 시작된 통행 제한으로 감금 상태로 30일을 지내고 있다. 아 답답하다. 저 환히 보이는 풍경 속을 지금 쯤 신나게 걸으며 돌아다니고 있을 텐데, 그림의 떡처럼, 정말 그림의 떡처럼, 보면서 침만 흘리고 있다. 이 화창한 봄날에 모두 감옥살이하고 있다니, 현실인데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책 속에서나 국제 뉴스에서나 간혹 접하던 전쟁으로 급히 피난 가는 내용들 속에 묻어있는, 일상에서는 절대 가늠이 안 되는 그 긴박함을 내 생애 동안 체험할 날이 있을까 궁금 반 불안 반 가끔 상상 우려를 했는데 이번 이 팬데믹으로 정말 긴박한 며칠의 시간을 보냈다.


포르토에 정착하기 위해 지난 10월 대강 사전 답사를 마치고 리옹으로 돌아갔다가, 11월 포르토에 다시 와서 준비를 시작했다. 살고 싶은 동네를 찾기 위해 포르토 이곳저곳을 시내버스로 돌아다녔다. 여행 가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통수단은 일반 시내버스다. 대략 노선과 목적지를 알고 나면 별 노력 없이 편하게 쉽게 경제적으로 시내 구경할 수 있고 지리를 익힐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틈틈이 부동산 에이전시에서 소개해주는 아파트들을 구경하고, 그러다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고 본격적인 이주 절차에 들어갔다.


필요 서류를 위해 남편이 1주일간 서울을 다녀올 동안, 난 낯선 포르토 임시 숙소에서 혼자 낯섦과 불안이 섞인 시간을 보냈고, 남편이 돌아온 뒤 이곳에서 1차 마무리를 위해 머물고 있었다. 12월 중순였고 연말이어서 평상시여도 분주하고 부산스러울 텐데, 이주를 준비하는 상황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초조하고 불안한 느낌 속에서 계속 부대꼈다. 그런 와중에 차츰 괴상한 소식이 들려왔다. 우한에서 시작된 그 우환이,


프랑스 생활 정리를 위해 2월 초 리옹으로 돌아왔고, 점차 그 소식들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지만 어느새 난 유럽인들의 뭐 별일 있겠어에 꽤 익숙해졌는지 마음 한편은 불안하면서도 그냥 여유로운 듯 평상시의 템포로 편하게 지냈다. 물론 리옹 아파트를 처분하기 위한 절차들을 진행하고, 이사 업체 써치 해서 견적을 받고 이사 준비를 틈틈이 하며 바쁘게 한 달을 보냈다.


모든 일정을 조율해보니 3월 16일 콩프로미(compromis, 매매 협약)를 마치고, 그 다음 날 17,18일 양일 간 리옹 업체 파트너가 이삿짐을 패킹하고 포르투갈에서 오는 이사 운송 트럭이 18일 이삿짐을 싣고 스페인을 지나 포르토에 21일경 도착하기로 했고, 우린 우리 자동차로 3일 정도 똑같이 스페인 도시들을 거쳐 그즈음 포르토에 도착하기로 하여, 23일 월요일에 포르토에서 이삿짐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 일정이 확정되기까지 30여 일 걸렸고 3월 둘째 주인 9일 이후부터 천천히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3,4일간의 프랑스, 스페인 지나 포르투갈 도착 예정의 자동차 여정에 필요한 먹거리와 가방을 꾸려놓았고, 아파트 처분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듯했다. 프랑스에서 5년의 생활을 마치고 이제 더 낯선 나라로 이주를 준비하려는데, 우리의 이주 계획도 염려스러운데, 진짜 걱정거리가 유럽에도 몰려오고 있었고, 그 주말인 13,14,15일부터 더 불안한 소식들과 그 실상들이 밀려들었다.


15일 일요일 오전, 성당 미사 금지된 지 3주 차였고, 그 다음날 예정되었던 콩프로미(매매 협약)를 위해 서류 준비를 하려는데 콩프로미를 약속했던 상대편에서 취소하겠다고 통보가 왔다. 2주일간 기다린 거였는데 하루 전에 취소한다고, 그 일정 때문에 이사 일정도 늦게 잡힌 건데, 얄미운 프랑스인 같으니라고,,, 그들이 결정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 다 거절하게 하고 2주일을 끌더니 결국 취소 통보라니, 다른 대기자도 많았는데,,, 괘씸했지만 그 사람 잘못이라기보다 바이러스한테 화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16일 월요일 저녁, 이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리옹 이사업체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낮 12시부터 한동안 프랑스 전면 통행제한이 시작되고, 직원들은 출근 의무가 없기 때문에 내일 이삿짐 포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난 불안에 떨며 울음이 터졌다. 불안했는데 태연한 척 지냈나 보다. 아니 일정상 그렇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난 마치 전쟁을 피해 내일 피난 가야 할 상횡에 놓였다. 이사는 당분간 불가능해 보였고, 우린 일단 다음 날 오후 12시 전 리옹을 떠나기로 했다. 비행 일정을 보니 리스본 경유해서 12시간 여정으로, -평소 리옹 포르토 간 비행 두 시간에 5시간 정도 여정-포르토행 비행만 있고 그것도 평소의 3배의 비용으로, 급히 예약을 마치고 이삿짐으로 정리해 놓았던 것들을 마구 헤집어 당장 필요한 짐들을 부랴부랴 챙기고, 다음 날 17일 화요일 아침, 큰 트렁크 두 개, 기내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리옹 5구 조용한 아파트 마당을 덜컥거리며 지나 택시에 무사히 승차했다. 전날 저녁 택시 예약은 되었지만 당일 아침에 택시가 못 올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택시 기사가 아침 출발 전 연락을 해왔다. 우리에게 예정대로 가느냐고,,, 다행이었다. 우린 택시 기사가 못 온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리옹 생텍쥐 공항은 정말 많이 한산했다. 우린 마스크를 했고 다소 불안한 기색으로 지나가고 있었는데, 삼삼오오 모여있던 젊은 여행객들은 아주 느긋한 모습으로, 긴장해서 지나가는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유럽 간의 비행기들이 그날에도 많이 취소되어 여행객들이 공항 앞 광장에 그렇게 모여 있었나 보다.


전광판에서 우리 항공 일정이 보이지 않아 시간이 일러서 게이트 번호가 아직 나오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취소될지도 모를 불안으로 터미널 안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우리 비행 일정은 안보였다. 이상하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남편 유레카!처럼, 아! 터미널 2에 내려야 했는데!, 여러 번 다닌 곳인데, 오늘따라 남편도 택시 기사도 같이 혼동해 터미널 1에서 내렸고 비행 정보 없다며 잠시 몹시 당황했었다. 공황 장애 재발할까 좀 걱정스럽던 순간에 남편이 항공 예약 프린트를 펼치며 보여주었다. "터미널 2"

다행히 고맙게도 불안증이 몰려오지는 않았다.


서로 피하라고 했는데, 1 터미널에서 꽤 걸어 2 터미널로 이동했고 정말 여행객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그 넓은 공간은 상점과 시설들이 폐쇄되고 닫혀서 휑하고 몹시 썰렁했다. 평소 화려하고 그 번잡하던 곳이 거짓말처럼 폐허 같았다. 여행객들은 경계와 배려 어디쯤의 서로 어정쩡한 표정들로 지나치며 불안함과 불편함을 공유하고 있었다.


리스본행 비행기에 탑승하니 200석 이상일 텐데 승객수는 대략 절반도 안된 것 같았고 그래서 기내 상황은 차분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서로 적당히 떨어져 앉았고 경계의 분위기 속에서 서로 너무 긴장하지 않으려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오후 2시경 예정대로 리스본에 도착하니 그 넓은 공항이 참 말도 안 되게 한가롭고 조용했다. 6시간을 어디에서 보내야 하나 아득하여, 우린 사람이 거의 없을 공간을 찾아다녔고 그럭저럭 쉴만한 곳을 찾았다. 공항 직원들이 휴게실의 의자와 집기들을 세정제로 계속 닦고 다녔고 여행객들은 조용히 휴식하거나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15일 일요일 오전, 콩프로미 취소 연락, 16일 월요일 저녁, 이사 취소 전화, 그리고 바로 급속 항공 예약, 급속 트렁크 정리, 화요일 아침 총알 출발, 생경한 공항 모습, 피난 같던 비행, 삼 일간 우린 태풍의 핵 가운데 있는 느낌이었고, 리스본 공항에서의 그 적막과 고요는 정말 태풍의 눈의 고요와 같았다.


포르토행 저녁 8시 비행기를 타고 이제 제2의 고향이 될 것 같은 포르토 공항에 밤 9시경 도착하니 스산하고 경직된 분위기가 낯설었다. 지난 10월 처음 포르토에 왔을 때, 공항의 느낌은 따뜻하고 차분했는데 ,,, 다른 도시에 내린 것처럼 낯설었다.


공항에서 달라진 규정은 일단 출입구에서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경비들이 모두 제지하며 지키고 있었다.

그걸 모르고 남편은 공항에서 출발 전 담배 한 대 피우러 혼자 나갔다가 멀리 보이는 출입구에서 나를 불러댔고 경비가 중간에서 알려줘 무거운 트렁크 카트 혼자 끙끙 밀고 출입구로 나가야 했다.


살림 없이 텅 비어 있는 아파트에 들어섰다. 예정 대로였으면 곧 살림살이가 채워지고 또 우리의 좀 낯설지만 일상의 삶이 시작됐을 텐데, 마치 쫓기듯, 마치 몸만 빠져나온 듯, 긴장하며 급하게 떠나와 무사히 도착하니 허전함과 무기력감이 순식간에 덮쳐왔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한참을 한기 속에 앉아 있었다.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해 씻고 잠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밤 12시가 지난 지 한참인데, 아 언제 몸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냥 멍하게 앉아 있었다. 차츰 졸음이 밀려오고 다행히 잠들 수 있었다. 잠에 취한 듯 깊이 자면서도, 파노라마 같은 꿈속을 헤매며 안도감과 고단함으로 뒤척이던 그 밤은 안갯속에 갇힌 것 같은 긴 밤이었다.


감염의 두려움과 그 긴장감이 뒤섞인 채, 언제 돌아가서 이사를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회귀할 수 있을까 그 막막함이 시작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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