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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속 급행열차에서 내렸다.'

바닷가에 둥지를 찾다.

by Seraphim




한 밤 자고 나면 기발한 물건들과 그보다 더 기이한 사건 소식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고속 열차에서 그녀는 내렸다.


초일류 문명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그녀가 원하는 것들은 카드 납부액을 비웃듯이 늘 천연스럽게 손에 와있고, 그걸 음미할 여유를 조롱하듯 또 새로운 신기한 것들이 보내는 유혹의 손짓을 거부하지 못한 채, '소소'(소비와 소유)의 쌍둥이들이 던져주는 달콤한 초콜릿에 묻혀 지냈다.


소비와 소유는 한쌍으로 와서 그녀의 감각을 순식간에 채워버릴 수 있는 강력한 마력을 발산하며 그녀 곁을 항상 맴돌았다. 마음이나 정신이 공백 상태에 머물면, 이 '소소' 마약은 즉각적으로 정체를 드러낸다. 그 유혹을 견디지 못하면, 카드사의 주요 고객으로 등극할 수도 있고 주의 요망 고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마음을 잘 채우고 사는 사람들은 소비와 소유의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필요에 의해서만 소비하고 소유할 수 있는 판단과 절제력을 가진 사람들은 영혼이 풍요로운 것일까, 그들이 불필요한 소비와 소유를 멀리하고 있다면 그들은 삶을 비옥하게 가꾸고 있는 걸까,


소비와 소유가 상승 곡선을 향해 있으면, 그녀 삶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소소 쌍둥이'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하고 무의미한 일상의 소용돌이에서 그녀는 걸어 나왔다. 회오리 같은 고속 급행열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완행 저속 열차를 타기로 했다. 낡았지만 열차 창가에서 낯설고 소박한 풍경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고속 열차가 가지 않는 수수하고 순박한 마을에 가닿기로 했다.


그녀는 빛나던 금박 새겨진 플라스틱 카드 대신 코팅 입힌 시내버스 마분지 카드를 지갑에 소중히 보관한다. 1 구역, 2 구역, 3 구역, 세 장의 버스 카드는 그녀가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데려다준다.

그녀가 사랑하는 바닷가 부근에 마련된 새 둥지는 바닷가 전망으로도 감격스러운데, 글쓰기 할 수 있는 영감(inspiration)까지 세트로 들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 안에 들어있는 초콜릿을 캐기로 했다. 아직 먹어본 적은 없지만, 왠지 깊이 숨겨져 있을 거 같다. 바다가 보이는 둥지에서 그녀는 약간 씁쓸한 다크 90% 초콜릿을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입에서 자꾸 초콜릿 향이 새어 나온다. 날개가 나오는 거면 가려울 텐데, 알을 깨고 나오는 거도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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