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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May 10. 2020

'에포케의 매너'

평가와 판단 보류는 배려이다.

 



철학 용어 "에포케"(epochē 그리스어, 판단 중지)는 판단을 잠시 멈추는 것이다. 판단 정지, 판단 보류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는 상대를 만나는 순간, 또는 만남들 속에서 상대방이나 어떤 상황들에 대해, 직감에 의해서 또는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그 사람들과 그 상황들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여 자신의 반응 행태를 표출한다.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긴급 상황이나, 또는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상황에서는 순간적인 판단이나 각 개인의 의견이 필요하기에, 이 때는 물론, 신속하게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상황의 특수한 목적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우리는 감정적 요인에 덜 영향을 받으며 비교적 이성적으로 순수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매일 무수한 판단이나 평가를 하며 살고 있으며, 인간의 이런 기능이 정지된다면, 우리의 삶은 건강하고 안전하게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판단 정지"는 어떤 상황에서 필요한 걸까, 철학적 논의는 철학자들에게 맡기고, 이 글에서는 일상의 삶에서 관찰되는 즉각적이거나 빛의 속도로 발생되는 우리의 판단과 평가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일상의 삶에서 판단과 평가 기능은 대부분 선입견과 편견을 중심으로 그 두 개의 관념에 저장된 정보에 근거하여, 대상을 파악하고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두 개 축의 기준이 강화되거나 변형되거나 수정되기도 한다.


이 판단에 관련된 기능은 의식적, 무의식적 반응이 다 포함될 수도 있기에 우리의 의식과 감정적 영역이 다 작동되는 뇌의 활발한 활동이다.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반응하는 건 자동적이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반응이 자신의 왜곡 저장된 정보에 의해서, 또는 자신의 그릇된 해석에 의해서 언제든지 판단의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은 잘 잊어버리고 있다. 탁월한 전문가도, 뛰어난 학자도, 유능한 기업가에게도 선입견과 편견은 늘 존재한다. 어제 경험한 사건이 오늘의 가르침이 될 수도 있고, 삶에 걸림돌이 되는 편견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새롭게 해석하려면 기존인식과 이해의 역량이 확대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재해석해서 다시 평가해보려는 시도보다는, 이미 틀 잡힌 선입견이나 편견에 기대어 판단를 내리게 된다. 기존의 고정 관념을 수정하는 것보다,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느낌 가는 대로, 감정 드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우리의 표현이나 내면의 평가가 떠오르면, 잠시 내려놓자. 이 기능을 잠깐 멈추면 좋을 때가, 의외로 일상에는 많이 숨어 있다. 특히 가깝고 자주 만나는 관계에서는 더더욱 " 에포케의 매너'가 필요하다. "시간 차", "정지", "보류"의 단어를 음미해보면," 여유" 와  "배려"라는 의미로 함축될 수 있다.


많은 현란한 이론들이 난무하지만, 지식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지혜롭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자기 앞의 시간들과 만남들 의미 있고 선하게 이끌 위해, 고뇌하고 사유하는 삶은 철학자의 몫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제이다.


지금 판단하고 싶고, 평가해서 치워버리고 싶은 무엇이 있다면, 시간을 두고 잠시 멈추어보자.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자,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도 그런 평가와 판단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된다면, 그때 판단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자신과 그 대상에 대해 배려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여유""배려""에포케"가 줄 수 있는 고귀한 선물이다.


당신은 오늘 "에포케"와  만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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