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해본 적은 없다. 달리기는 잘하지 못한다. 100미터 달리기나 운동회를 위해 이어달리기를 몇 번 해봤다. 올림픽 단거리 우승자의 "총알 같은 사나이", 일반 시민들의 마라톤 대회, 그런 화제는 내게 다른 행성 이야기다.
운동을 특별히 잘하는 건 없지만 건강 관리를 위한 수영, 에어로빅, 피트니스 프로그램 등은 틈틈이 해봤고, 요가는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리드미컬한 댄스 동작들은 수수께끼 같은 스텝들을 하나씩 익혀가는 재미가 있어서 문화센터 같은 데서몇 가지를 배워봤다. 스텝 배우며 땀 흘리는 댄스는 운동도 되고 신체 지각 훈련이 되어지능 향상도 있다고 하니 지능도 조금 혜택을 받았을 것 같다.
내게 신기한 사람들은 마라톤 달리기 주자, 한 직장 10년 이상 근속자, 100 페이지 이상 논문 척척 쓰는 연구가들, 그 글의 지구력과 노력에 감탄이 나온다. 나도 노력은 꽤 하지만, 지구력은 노력만으로 만들 수는 없다. 체력이 제일 중요해 보이고 타고난 체력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22일간 21개 글을 매일 브런치에 올렸다. 작은 성취감도 느꼈고, 매일 규칙적으로 글 쓸거리를 탐색하는 즐거움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컨디션에 신호가 왔다.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지난주(5월 첫째 주)부터 자주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통행 제한이 단계적으로 해제되어 가고 있다. 함께 활동적인 움직임들이 늘고, 탁자에서 글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게 되어 한밤중까지 글쓰기에 몰두하다 보니, 수면 시간, 기상 시간이 점점 왔다 갔다 하더니, 피로감이 쌓이기 시작한다. 이제 글쓰기에 대한 욕심과 계획을 수정할 때가 됐다는 신호다. 더욱이 평생 할 거라면 지금부터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한다. 왕성한 의욕을 좀 뒤로 물리고 내 여건에 맞는 글 쓰기 페이스를 찾을 시간이다.
산책하다가 문득 글귀가 떠올라 잘 됐군! 하며 기억하고 있다가 돌아와서 차분히 되새기며 글을 쓰는 것까지는 고무적이다. 그런데 글을 빨리 쓰고 싶어서, 아니면 빨리 써야 할 것 같아서 산책을 대강 마무리하고 오는 건, 글 쓰기의 욕구가 나보다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오늘 올리기 위해 어제 마무리한 글을 시간 안에 올릴까 잠시 생각하다가 좀 묵혀서 다음에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부터 다시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느낌으로 글 손님을 맞기로 했다. 내가 글을 짓는다고 생각했는데, 때때로 나의 관념과 지식과 상념과 인식을 잠시 비워두고 글 손님이 반갑게 찾아오도록 기다림도 해야 할 것 같다.
글 쓰는 주인으로 살면서 지성과 감성과 이성의 감각을 연마하고 사는 삶이란 축복의 삶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인식과 관념은, 우리가 주인처럼 보이지만,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내 인생의 손님이다.
주인만이 손님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의 노예가 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반갑게 맞아들일 수 없다. 역으로 추론해보면, 반갑지 않은데 해야 할 무엇이 있는 건 거기에 예속된 것이지만, 물론 삶은 '주인과 예속'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훨씬 그 이상이다. 이분법적 설명이 가능한 건, 철학자들의 관념 정의나 명제 추론 과제에서 벌어지는 놀이일 뿐이다.
그래도 삶을 놀이처럼 즐기려는 여유를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전투처럼 덤벼들면 모든 것은 전쟁이 되고, 놀이처럼 즐겁게 하려고 의도하면 유쾌한 놀이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