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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May 15. 2020

'유연한 미소'

유연함은 '시소'타기다.





신체의 유연성은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하는 게 당연한데, 우리의 사고는 언제 유연하게 만들어야 할까. 우리의 사고와 인식은, 우리의 자의식은 어떻게 유연해질 수 있을까.


TV에 1인 요리사가 등장해서 매일 다양하게 요리하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똑같고 사소해 보이는 재료들로 그들은 마술사처럼 새롭고 독창적인 요리들을 만들어낸다. 물론 매번 신기하거나 그때마다 그들만의 순수한 독창적인 요리라고 할 수 없지만, 그들 중에도 자신의 실력이나 명성에 갇히지 않으면서, 레시피를 업데이트하고, 시의성을 띤 요리들을 시도하거나, 트렌드를 적절히 수용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요리사들이 있다.


그들의 요리 프로그램은 보는 즐거움도 크고 실생활에서 응용해 볼 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그들을 보면 무척 유연해 보인다. 표정, 제스처, 말투, 요리할 때의 움직임,,, 리듬감이 있고  연출되는 매직쇼를 보는 거 같기도 하다.


그들의 특징을 관찰해 보면, 얼굴엔 평소의 자연스러운 미소가 표정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감정 표현은 크거나 격하지 않고, 부담감 없이 온화한 인상을 보인다. 혼자 프로그램을 이끌지만 시청자와 대화하듯이 내용을 채워간다. 요리도 맛있어 보이는데, 그들의 품성도 전해지는 것 같다. 물론 현실의 모습과 미디어에서 보이는 것이 꼭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화면의 느낌으로는 그렇다.


에어로빅에서도 댄스에서도 피트니스에서도 유연성이 좋을수록 실력도 흥미도 증가되지만, 유연성을 향상시키는 건 내게  어려운 과제였다. 요가를 하는 동안 동작들을 익히고 좋아하면서, 한때 요가 강사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비해 "유연성" 이 따라주지 못해 열심한 수련생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이 퍽퍽  막히면서 답답해지기도 하고. 어떤 글을 읽다 보면 모든 느낌이 딱딱하게 굳어지거나. 어떤 영화를 보면서 정서가 삭막해져 사막 속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물 흐르듯 막힘없이 읽히는 글, 대화 속에서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는 너그러움, 불편한 상황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가는 사람들,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적절함을 유지하는 사람, 일과 가정생활의 부담 속에서도 한 역할에만 함몰되지 않는 사람,..!? "


거의 환상에 가까운 희망사항이지만, 무지갯빛 일곱 색깔 삶의 이야기 속에서도 우린 모두 이상을 향해 걸어간다. 모두 김연아를 사랑하듯, 뻣뻣하고 울퉁불퉁한 자아를 더 껴안기 위해서...


유연성은 균형감각과 한쌍으로 다닌다.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면, 무게 중심을 잃은 것이면서, 동시에 유연성을 상실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기울어질 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더 주지만, 삶에서 기울어지고 있다면 되도록 힘을 빼고 한 발 물러나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기력이 없는데 힘을 쓰려면, 한 기운으로 버틸 수밖에 없지만. 그런 기운은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한 방울의 진액 마저 짜내서 결국 우리를 녹다운시킨다.  이때 잠시 주변에서 도와줄 수 있도록 자신을 지친 그대로 놔두는  어떨까.  잠깐만 비워두자. 언제나 강해 보이는 사람들 곁에는 조력자가 머물 수 없다.  천사들은 일거리 찾아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그런데 우리 곁에는 의외로 우리들을 지켜보며 함께 힘을 보태주려는 천사들이 가끔 기다리고 있다. 웬수 같은 남의 편인 그도, 골칫덩어리 아이도 어느 순간 내게 하늘의 힘을 보태줄 수 있지만, 그런 것은 내 마음과 영혼이 유연할 때 보이는 것들이다.


그들의 순수함과 연민의 지지에 잠시 기대어 기력을 회복해 가자, 자신은 늘 그들을 위해 살고 있으니까. 내가 내려앉으면 누군가는 올라가고 있다...인생은 시이소이니까...


유연한 사고력과 적절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평소에 너무 감정적이거나 너무 이성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도 가끔 보고, 맥주도 마시며, 수다의 시간도 갖고 있다면, 먼저, 자신만을 위한 고요와 고독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심장과, 지쳐서 소외된 내 안의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야 할 순간이다.  시간을 외면하면, 우리는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질병으로, 실직으로, 실패로, 이별의 상처로...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건, 우리가 고독하게 침잠하며 자신과 만나야 할 시간을, 무심히 지나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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