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전야제 고백
긴 연휴가 시작됐다.
단순한 연휴가 아닌 추석이다.
누구는 즐거운 연휴라 하고 누구는 반갑지 않은 명절이라고 한다.
개인주의자를 자처하는 내게 이 기간은 연휴 반, 명절 반이다.
추석은 10월 6일 월요일,
나는 해마다 최선을 다해 명절 전날까지 자유를 만끽한다.
우리 집에서 명절을 지내기에 당일부터는 손님맞이 주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일 전까지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을 내 맘대로 사용하고,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기도 한다. 미리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즐거움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마시고 싶지 않을 때도 의식처럼 남편과 마주 앉아 잔을 기울인다.
명절의 한 글자도 생각하지 않고 마치 휴가를 맞은 사람처럼 희희낙락한다. 혼자 있기를 즐겨하는 사람이기에 폭풍처럼 떼를 지어 몰려올 친인척들을 상대할 생각을 하면 반드시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어쩌자고 장손과 결혼했을까. 내가 선택했어도 결혼은 과정도 결과도 미스터리 하다.
역설적으로 그런 단체 모임(?)이 있어 혼자만의 시간이 더 즐겁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일 년 내내 혼자 있다고 상상해 보면 그 또한 너무 따분하지 않은가. 가족 안에서 사회성을 끌어내 안부를 묻고 친근함을 표시하고 자주 볼 것을 약속하다 보면 명절은 끝나간다.
올해는 옷방을 바꾸고 그 안에 작은 나만의 공간을 만들 계획으로 명절 전 연차까지 써서 2박 3일 동안 내내 정리와 청소를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내 서재가 생긴다는 설렘이 더 컸다. 그동안 식탁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불편했던 시간이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모든 상황에는 배움이 있다.
그런 생각으로 명절에 임한다.
어차피 혼자가 아니라면 피할 수 없는 시간들도 나의 태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명절 스트레스가 생길 때마다 나는 감사로 마음을 돌린다.
골난 사람처럼 힘든 티를 내고 불편하게 지낼 것인지, 건강하게 만나서 하루 즐겁게 식사하며 안부를 주고받을 것인지는 나의 선택에 달렸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상황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와 맞지 않는 가족도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그런 분들과는 최대한 무신경하게 대한다.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고 최대한 함께 있지 않으며 대화를 피한다. 하루, 이틀 정도니 참을만하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불편한 어른으로 남지 않으려고 선을 지킨다.
명절, 생신 외에는 단절된 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시는 시부모님들께 늘 감사하다. 결혼 초에는 애교 없는 며느리에 대한 서운함도 간혹 비치시더니 이제는 포기하셨는지 그러려니 하신다.
그래도 우직하게 한결같다고 말씀을 해주시니 애교 없어도 맏며느리로서 만족해하시는 것 같다. 뭐 나만의 생각일 수도.
이 모든 상황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남편의 도움이다.
알고 있다.
전화를 자주 드리지 않아도 한 번도 안부 전화하라는 부탁을 한 적 없는 남편.
최소한의 청소만 마치고 손님맞이를 해도 불평 한 마디 없는 남편.
고부 사이에서 불편한 상황을 전달하지 않고 입을 무겁게 하는 남편.
최대한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먼저 물어봐 주는 남편.
명절이 끝나면 시원한 맥주를 준비했다가 따라주며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말하는 남편.
그런 남편이 있기에 내게 명절은 선택이다.
불만보다 감사한 일을 찾게 되는 만남이다.
서운한 일이 있어도 금세 잊히는 날이다.
나에게 완벽한 동반자는 아니어도 (그런 사람은 있지 않다는 현실;;^^)
서로 맞춰갈 수 있는 당신이라 좋다.
크게 화내는 법 없이 모든 일을 여유롭게 생각하는 당신이라 좋다.
그런 태도가 나의 인생에도 영향을 주어,
나도 너그러워지는 사람이 되어 감사하다.
스트레스 많은 명절이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로 바꿔본다.
당신이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