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편 말썽으로 시작부터 쉽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뮌헨에 도착하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직장인이 되니 '크리스마스'가 좋아졌다. 아주 어릴 때는 산타 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크리스마스 그 자체가 선물이 된 것 같다. 연말이 다가와서 인지 차분하면서도 들뜨고, 날은 춥지만 마음은 푸근하게 해주는 느낌이 있다. 그런 와중에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대한 기사를 봤다. 한눈에 반해버린 나는 2022년, 남동생과 둘이 독일로 떠났다. 엄마 아빠가 같이 있는 가족 단톡방에 실시간으로 인증(자랑)하며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겼다. 그리고 정말이지 마지막 날 공항에서 비행기가 결항했으면 싶을 정도로,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 좋았던 기억을 리마인드 하기 위해 엄마의 환갑을 보내고, 아빠의 환갑을 맞이할 "특별한 2024년 겨울", 우리 네 가족이 함께하는 유럽 겨울 자유 여행을 기획했다. 성실한 자영업자이자, 유럽 여행이 처음인 아빠가 주저했다. 하지만 나의 미친 추진력과 두 차례 유럽 여행에서 자신감과 재미가 붙은 엄마의 강력한 설득으로 결국 독일 in, 체코 out 티켓을 끊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독일 뮌헨이었다. 카타르 항공을 타고 경유하면 2시쯤 뮌헨 시내에 도착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동생은 일정상 후발대로 다음날 오고, 엄마 아빠와 셋이 먼저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는 서울역에서 만나 공항철도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가 탈 비행기가 내다 보이는 창문 앞에서 부모님은 즐겁게 인증 사진을 찍고 비행기에 올랐다.
10시간 반 정도 밤 비행기를 타고 카타르 도하 하마드 공항에 도착했다. 엄청 큰 노란 테디베어, '램프 베어(Lamp Bear)'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증 사진을 찍고 있었다. 중동 국가 카타르 답게 낙타 인형도 전시되어 있었다. 덕분에 잠시 카타르를 여행하는 기분을 즐겼다.
카타르에서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데 4시간 정도 대기 시간이 있었다. 애매하게 긴 시간이라 탑승 게이트 쪽에서 쉬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 알람이 왔다. 우리가 탈 비행기가 지연된다는 알람이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경유 편을 탔는데 하필 부모님과 여행할 때 이런 일이 생겨서 당황스러웠다.
한편 처음에는 얼마나 지연될지 안 알려줘서 불안했는데, 다행히 출발 시간이 뜨긴 했다. 덕분에 한숨 돌렸다.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항공사에서 보상 의미로 식사 쿠폰을 제공했다. 덕분에 모노레일이 다니는 쇼핑몰 쪽으로 가 온실 정원 구경도 했다.
뮌헨에는 결국 저녁때 도착했다. 공항 입국심사가 까다로워서 불법 체류 기미가 보이면 출입국 직원이 붙들고 있는다. 우리 앞 팀이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 셋은 한 번에 통과했다. (부모님과 크리스마스 마켓 보러 왔고, 우리는 체코로 이동해서 out 할 거라고 말했다!)
지하철 S-Bahn을 타고 뮌헨 중앙역 근처에 잡은 호텔로 이동했다. 구글 지도로는 역에서 나오는 출구가 분명하지 않아 헤매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독일인 두 분이 먼저 다가와서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해도 지고 나 혼자도 아니라 캐리어를 끌고 무작정 이동하기 부담스러웠는데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부모님도 독일에 대해 좋은 첫인상을 갖게 되었다.
호텔 체크인 후 조금이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마리엔플라츠(Marienplatz)로 갔다. 신 시청사(Neues Rathaus) 앞의 거대한 트리가 눈에 들어왔다. 금빛 전구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목조 부스마다 글뤼바인(Glühwein)을 한 잔씩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브랏부어스트(Bratwurst)를 먹는 사람들, 크리스마스 공예품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가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독일에서는 보통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전까지 마켓이 열린다. 이곳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그 자체로 선물이자,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나라면 크리스마스만 기다리며 1월부터 11개월까지 열심히 일할 거 같다!) 이런 곳에 엄마 아빠와 같이 온 게 꿈만 같고, 내가 가봐서 좋았던 곳을 부모님에게 보여줄 수 있어 감사했다.
한편, 사람이 너무 많아 이산가족되기 쉬운 신시청사 앞을 벗어나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직접 소시지를 구어내고, 나름 손님들이 많은 부스 하나를 찾았다. 소시지를 빵에 끼운 음식인 브랏부어스트(Bratwurst)와 양배추로 만든 독일식 김치 같은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를 곁들인 소시지와 맥주를 주문했다. (접시와 맥주병은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준다.)
배를 채우니 덜 추운 거 같았다. 셋이 잘 붙어 다니며 마켓 부스마다 진열하느라 고생했을 거 같은 크리스마스 소품 구경을 했다. 한 목공예 부스는 그냥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에다 갖가지 동물 조각품을 집합시켜놓았다. 어린애들이 뛰어다니다 다 부수면 어떡하나 싶은 장면이었다. (물론 부수더라도 혼내지 않을 거 같다!)
좀 추워진다 싶더니,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모자를 안 쓴 내 머리에는 눈이 금방 쌓였다. 아쉽긴 했지만, 어서 호텔 들어가 쉬라는 하늘의 뜻으로 생각했다. 여하간 도착하는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계획했던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까지 마친 뿌듯한 하루였다. 우리 가족의 진정한 겨울 유럽 여행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