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영국 여행-5 : 빅벤, 테이트 브리튼
엄마와 영국 여행-5
The Cenotaph에서 웨스트민스터 역, 빅벤(Big Ben)으로 다시 걸었다. 아침부터 살짝 추위를 느끼며, 내내 걷느라 고단했던 엄마가 잠시 쉬고자 했다. 때마침 벤치가 보였다.
The Red Lion이라는 간판의 펍(Pub) 앞이었다. 외관을 둘러싼 가스등 인테리어와 노랑, 주황, 진분홍, 연분홍의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 있는 꽃바구니가 웨스트민스터궁을 지근거리에 둔 펍임을 보여주듯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엄마에게 벤치에 앉아 쉬라고 한 뒤, 펍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그러다 정면에서 엄마를 찍으면 화보 같을 거 같아 얼른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 건물 반대편에서 사진으로 담았다.
다시 빅벤을 향해 걸었다.
한 블록 정도 걸어가니, 영국 국기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지하철 역 입구가 보였다.
영국의 지하철은 Tube라고 부르는데, 선로를 깔기 위해 만든 지하 터널과 지하철 디자인이 원통형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역 간판 역시 우리가 바닷가에서 타고 노는 '튜브' 모양인 거 같다.
한편, 영국의 국기 유니언 잭(Union Jack)과 영국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인 '웨스트민스터' 역이 한 눈에 담기니 영국에 온 게 다시 실감이 났다.
벤치에서 잠시 쉰 덕에 다시 힘차게 빅벤을 향해 걸어가는 엄마를 불러 세워 사진에 담았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빅벤이 보였다. 빅벤은 영국의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궁(Palace of Westminster)의 일부인 큰 시계탑이다. 내가 영국을 첫 방문한 2019년에는 빅벤을 수리 중이었다. 당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실물 크기의 빅벤 프린팅 가림막을 설치해 두었지만 실제가 아니라 감흥이 없었다. 찾아보니 2022년에야 수리를 마치고 빅벤 외관을 공개했다고 하는데, 엄마에게 실물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부터 화이트홀 거리와 런던 아이가 보이는 템스강변, 빅벤을 보기까지 2시간 가까이의 아침 산책을 마치니 허기가 졌다.
오늘은 특별히 엄마에게 영국의 전통적인 아침식사를 소개해주기 위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간 곳은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미술관 근처에 위치한 Sapori라는 음식점이었다. 외관부터 현지인 맛집으로 보이는 식당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진짜 맛집인지 알려면 나이 많은 손님들이 있는지를 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현지 어르신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베이크드 빈스(baked beans)와 소시지, 베이컨, 달걀, 버섯, 토스트로 구성된 전통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를 시켰는데 여자 둘이 먹기에 충분했다. 엄마는 베이크드 빈스를 실제 먹어본 건 처음인데 한국 돌아가면 생각날 거 같다고 했다.
식사를 마친 후 테이트 브리튼으로 이동했다. 미술관은 내셔널 갤러리 못지않게 넓고 작품이 많았다. 반면, 내셔널 갤러리보다 사람이 별로 없어 여유롭게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미리 구매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가이드가 소개해 주는 작품들을 찾아다녔는데, 그림이 너무 많고 말한 위치에 없기도 해서 결국 오디오를 끄고 끌리는 그림 위주로 감상했다. (소장 작품이 워낙 많아서 오디오 가이드 녹음 후 전시물을 한번 교체한 거 같다)
엄마와 나는 이 그림 앞에서 한참 서 있었었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비석에 기대어 생각에 잠긴 여성의 표정이 시선을 끌었다. 찬찬히 보다 보니 그림 정중앙에 위치한 비석을 기준으로 그 왼편 아래에 해골이 보였는데 특히 두개골 위의 앉아 있는 파랑 나비가 눈에 띄었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 그 자리에서 그림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설명 중 비석에 새겨져 있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인상 깊었다. 비석 하단에 적혀 있는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문구는 성경에 나오는 글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후 세계와 부활에 대한 희망'을 뜻한다고 한다.
종합하면 이 그림 속 여성은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고, 인간의 삶과 죽음에 있어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편 18세기 세인트 제임스 공원(St. James's Park) 풍경을 담은 그림 역시 멋있었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출신 화가인 카날레토가 당시 공원 풍경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실제 사물들의 크기를 고려해 사람들은 아주 작게 그려 넣은 걸 볼 수 있는데 카메라 줌을 당겨 인물들 하나하나의 옷차림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약 2시간 정도 테이트 브리튼 구경을 마치고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는 길에 몇 백 년이 아닌, 몇 천년 간 뿌리를 내린 듯한 거대한 나무를 본 엄마가 나무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영국에 온 날부터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가다 나무가 어쩌면 이렇게 클 수 있냐고 종종 감탄하고는 했는데 이 나무 역시 어마어마하게 컸다.
엄마의 주문에 따라 나무와 나란히 서서, 그 뒤로는 테이트 브리튼 걸개가 걸려 있는 구도로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다시 보니 안에서 오늘날까지도 감동을 주는 당대 최고의 미술 작품들을 본 것이 무색해지게,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