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런던, 꽃과 선데이 로스트

엄마와 영국 여행-7 : 콜럼비아 로드 꽃 시장, 타워브리지, 그리니치

by 세런 Seren

런던 여행 일정을 세우기 막막하다면 런던의 '특색 있는 마켓' 일정에 맞추어 주변을 여행하는 동선을 짜는 걸 추천한다. 예컨대 토요일에는 포토벨로 로드 마켓(Portobello Road Market)을, 일요일에는 콜럼비아 로드 꽃 시장(Columbia Road Flower Market)을 가는 것이다.


버스를 내려 포토벨로 로드 마켓 걸어가는 길

일요일 아침, 우리는 꽃 시장을 보러 콜럼비아 로드로 향했다. 8월 말 한국은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겠지만, 런던의 아침은 겉옷을 입어야 딱 맞다. 특히 그늘에 서있으면 쌀쌀해서 일부러 햇빛을 쬐며 걷게 된다.


한편, 우리가 오늘 방문할 콜럼비아 로드 꽃 시장도 우리나라 고속터미널 꽃 시장처럼 오전부터 시장이 열리기 때문에 이른 시간에 가는 걸 추천한다.

우리는 8시쯤 도착해 동네 카페에서 라테와 갓 구워낸 파이 하나를 먹고 구경을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천막이 이어져 있고, 그 아래 다양한 종류의 싱싱한 꽃들이 가득가득 담겨있었다. 우리는 꽃과 화훼용품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그때 엄마가 '저 남자 봐'라며 속삭였다. 그 남자는 우리가 생일이나 졸업식처럼 특별한 날 받는 꽃다발의 두 세배될 거 같은 꽃다발을 여러 개 안고 가는 중이었다. 그 남자는 앞이 보일까 싶을 정도로 꽃다발을 들고 가면서도 꽃을 더 살 것처럼 점포 앞 꽃들을 살폈다. 저 많은 꽃들로 뭘 할지 궁금했다.



콜럼비아 로드 꽃 시장, 앞이 안보일 정도로 꽃다발을 안고 가는 남자

꽃 시장을 나와 브릭레인(Brick Ln)을 거쳐 폴게이트 스트릿(Folgate Street)을 걸을 때였다. 몇 백 년 전 거주지였을 거 같은 붉은 벽돌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현재는 배티 랭글리스(Batty Langley's) 호텔로 이용되는 듯했다. 엄마는 이 건물의 시초가 1700년대 초라는 걸 보여주는 표지석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길을 나오자 18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터널을 지난 것처럼 고층 유리 빌딩이 나왔다. 아침부터 꽤 많이 걸은 우리는 리든홀 마켓까지 갈 수 있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리자 또다시 고풍스러운 큰 석재 건물들이 연달아 등장했다. 나는 석재 건물을 보면 유럽에 온 기분이 든다. 그리고 엄마는 이렇게 큰 석재 빌딩을 보면 '돌삐'라고 표현한다. 엄마 표현을 해석해 보자면 대충 '몇 백 년 전 어떻게 저런 돌로 건물을 올렸나'하는 놀라움을 뜻하는 말 같다.


폴게이트 스트릿의 배티 랭글리스 호텔과 뱅크 역 주변 웅장한 석재 건물들 사이를 걷다

리든홀 마켓은 해리포터 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다. 일요일 오전이라 문을 연 상점도 없고, 사람들도 없었다. 나처럼 해리포터 촬영지라 들른 거 같은 동양인 관광객 한 팀만 보였다. 철제 단조, 버건디와 금색으로 대조 미를 이루는 인테리어를 감상하며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으로 향했다.


밝은 회백색의 외관을 가진 세인트 폴 대성당은 사람은 물론, 버스조차 미니어처로 만드는 웅장한 건물이다. 유럽 대부분의 성당, 교회처럼 가까이에서는 건물 전체를 담은 인물 사진을 찍기 어렵다.


리든홀 마켓과 세인트 폴 대성당

우리는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타워 브리지(Tower Bridge)를 건너 12시로 예약한 스완 앳 더 글로브(Swan at the Globe)를 갈 계획이었다. 여유롭게 런던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타워 브리지를 건너려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가까이 가 보니 타워 브리지의 타워에 사람들이 몰려 있고, 경찰들과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은 보행 통제를 한다는 것이었다.

배도 고프고 발도 슬슬 아파오던 차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니 '왜 하필 오늘!'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그리니치로 가기 위한 여객선을 탔을 때 타워 브리지가 열리는 걸 볼 수 있는 기회였음을 깨닫고 인생지사 새옹지마를 느꼈다.


런던 탑에서 타워 브릿지 건너는 길

한편,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Shakespeare's Globe) 바로 옆에 있는 스완 레스토랑에는 부지런히 걸어간 덕에 늦지 않았다. 이 식당에 온 이유는 영국인들의 일요일 전통 식사인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를 템스강을 보며 즐기기 위함이었다. 특히, 여행 전에 예약을 하면서 창가 자리를 요청한 덕에 우리는 2층 창가로 안내받았다.

구운 소고기와 요크셔푸딩, 감자, 그레이비소스로 구성된 전통 선데이 로스트를 시켰다. 분위기를 제대로 내보기 위해 와인 한 잔도 시켜 런던의 화창한 날씨와 템스강을 보며 설정샷을 찍은 뒤 식사를 즐겼다.


일요일 스완 식당에서 선데이 로스트를 브런치로 즐기기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있었다. 거기에 빗방울까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리니치에 비가 안 오길 바라며 얼른 식당 앞에 있는 유람선을 탔다. 배가 런던 교를 지나 타워 브리지로 향할 때였다. 서서히 타워 브리지가 열리고 있었다.

직전 영국 방문했을 때 야경 도보 투어를 함께 한 가이드가 '영국에 살아도 타워 브리지가 열리는 걸 보기 어렵다'라고 한 기억이 났다. 엄마와 왔을 때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더 기분이 좋았다.


뱅크 사이드 터미널에서 유람선 타고 가는 길에 본 타워 브릿지 열리는 광경

한편, 우리가 비를 피해 도착한 그리니치 공원은 다행히 너무나 화창했다. 마침 그리니치 마켓(Greenwich Market)도 열려 있어 소품들을 구경하며 공원으로 걸어갔다. 공원은 평화로웠다.

그리니치에 왔으니, 천문대를 보러 가야 한다고 했는데, 엄마는 오늘 너무 많이 걸었다며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아쉽지만 엄마는 벤치에 앉아 쉬기로 하고, 나홀로 천문대로 향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걸어야 해서 혼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실제 천문대를 보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엄마 혼자 두고 온 게 걱정도 되고 해서, 전망을 구경한 뒤 천문대가 있는 외벽 밖으로 그어져 있는 본초자오선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그리니치 공원, 천문대 관측소가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풍경

돌아갈 때는 버스를 타고 바깥 구경을 하며 사실상 원래 출발한 곳에서 내렸다. 템스강을 마지막까지 눈에 담기 위해 세찬 강바람을 맞으며 밀레니엄 교(Millennium Bridge)를 걸었다.


밀레니엄 교의 끝과 끝에는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1700년대에 지어진 세인트 폴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이 다리는 마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를 잇는 다리로 느껴진다. 밀레니엄 교를 걸으며 엄마와 보낸 런던에서의 일요일에 한번 더 특별함을 느끼게 되었다.


밀레니엄 교에서 본 풍경, 강 바람이 엄청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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