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포쉬(Posh)한 하루 보내기

엄마와 영국 여행-8 : 코벤트 가든, 켄싱턴 궁, 하이드 파크

by 세런 Seren

영국에서 포쉬(posh)는 단순히 부자나 상류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품위 있고 세련되며 고급스러운 생활방식이나 말투, 태도, 취향 등을 아우르는 문화적 개념이라고 한다. (의미 전달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하에서는 'posh'라고 쓰겠다.)

우리의 오늘의 여행 테마는 posh로 잡고 시작했다.


코벤트 가든의 중심, 쥬빌리 마켓

먼저 도착한 곳은 런던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에 위치한 쥬빌리 마켓(Jubilee Market)이다. 현재 건물은 198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참석 하에 개장했다고 한다.


앞서 영국 여행 계획을 세우기 막막하다면 요일마다 열리는 '특색 있는 마켓'을 중심으로 동선을 짜볼 것을 제안했다. 월요일은 '쥬빌리 마켓'을 기억하면 좋겠다. 왜냐하면 posh의 대표, 골동품(Antiques & Collectibles)을 파는 마켓이 열리기 때문이다.


우리 모녀가 영국 여행을 할 거라는 꿈을 꾸기 훨씬 전에 엄마가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보내줬다. 영국에 사는 일본인이 골동품 마켓들을 체험하는 영상이었다. 당시 우리가 인터넷에서 앤틱 접시와 컵 수집에 꽂혀 있을 때라 알고리즘에 뜬 거 같다.

이 영상 덕에 나는 영국 현지 앤틱 마켓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남동생과 둘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여기서 득템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쥬빌리 마켓을 방문했었다.

때는 1월이었는데, 미련을 못 버리고 가게 주변을 맴도는 나에게 가게 주인이 시원하게 할인과 덤을 얹어 주었다. 덕분에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실시간으로 내가 산 그릇과 접시를 자랑했었다.


쥬빌리 마켓에서 득템해서 의기양양한 엄마

여하간 '득템'의 재미를 엄마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월요일의 쥬빌리 마켓'을 방문했다. 겨울에 방문했을 때보다 물건도 다양한 거 같았고, 날이 좋으니 물건을 살펴보기 좋았다. (앤틱이다 보니 상품 상태를 꼼꼼하게 보는 게 중요한데, 겨울에는 아무래도 추워서 손도 굳고, 옷 부피 때문에 둔해져 구경이 어려운 거 같다.)

예상대로 엄마는 물 만난 고기 마냥 신나게 구경했다. 그리고 이모들에게도 기념품으로 하나씩 줄 생각으로 이것저것 골라 담았다.


쥬빌리 마켓 구경 후 코벤트 가든 둘러보기

참고로 물건을 살 생각이라면 꼭 튼튼한 장바구니나 에코백을 가져가길 추천한다. 왜냐하면 물건을 사면, 마켓 주인이 오래된 신문지로 둘둘 말아 얇은 반투명 비닐, 그러니까 시장 좌판에서 야채 같은 걸 담아주던 이른바 '비닐 봉다리' 같은데 넣어 주기 때문이다. 이 비닐은 들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자칫 봉지가 찢어질 수도 있을 거 같아 우리는 주인이 포장해 준 채로 어깨에 멜 수 있는 튼튼한 장바구니에 담아서 들고 다녔다.


칸델라 티 룸 방문하기

열심히 걸어 다니며 쇼핑을 한 후 우리는 애프터눈 티를 즐기러 켄싱턴 궁(Kensington Palace) 근처의 칸델라 티 룸(Candella Tea Room)을 방문했다. 나는 친한 언니와 첫 영국을 방문했을 때 애프터눈 티의 세계에 입문했다. 애프터눈 티가 처음이었던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제대로 플렉스(Flex)해보자'는 마음으로 에든버러에 있는 발모랄 호텔(Balmoral Hotel)을 선택했다. (이 호텔은 J.K 롤링이 해리포터 마지막 편의 집필을 마친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마침 영국 할머니들이 애프터눈 티 모임 중이었다. 그 분들이 앉은 테이블에 딸 같은 젊은 여성과 'Happy Birthday'가 적힌 풍선이 있었는데, 우리는 딸이 엄마의 생일 축하를 위해 엄마 친구들 또는 자매를 모셔와 파티를 하는게 아닐까 추측했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그 분들의 여유와 우아함이 너무나 인상 깊었다. 덕분에 나에게 애프터눈 티는 영국적이고, posh한 문화가 되었다.


애프터눈 티 구성

한편, 영국에서는 호텔이 아니더라도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는 티 룸이 많다. 따라서 본인의 예산 범위에 맞춰 선택할 수도 있으니 꼭 한번 경험해 보면 좋겠다. 특히 모녀 여행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추천한다.

1층의 샌드위치, 2층의 딸기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곁들이는 스콘, 3층의 달달한 디저트까지 완벽한 조합을 놓고, 함께 간 이와 향긋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 (나는 주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티 또는 얼그레이 티에 우유를 부탁해서 밀크티로 마신다.)

여하간 우리가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나왔을 때, 나는 이 시간을 엄마와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감동과 행복, 감사함으로 마음이 벅찼었다.


켄싱턴 가든스의 산책로

차와 디저트로 든든해진 우리는 켄싱턴 궁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화창한 날씨에 바람이 선선해서 걷기 좋았다. 특히나 넓은 길이 마음에 들었다. 한편, 이곳의 나무들도 장난 아니게 커서 벤치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빅토리아 여왕 동상(Queen Victoria Statue)과 켄싱턴 궁을 구경한 뒤, 맞은편에 있는 백조와 오리가 유유자적하고 있는 연못으로 갔다. 백조는 정말 반질반질한 새하얀 털을 가지고 있고, 목은 절대 부러지지 않을 것처럼 꼿꼿해서 '한 성깔할 거 같은 포스'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도도한 모습이 마치 영국 왕실 패밀리와 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켄싱턴 궁 앞의 연못
백조의 몸 단장을 구경하는 엄마

엄마는 한참 쭈그리고 앉아 몸 단장 하는 백조를 구경했는데, 바쁜 일상을 벗어나 여유롭고 자유로운 사람이 된 듯해 보기 좋았다. 또한 엄마가 동심으로 돌아간 듯 귀여워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백조가 안 움직였으면 그냥 사진인 줄 착각할 거라 동영상을 보여주며 놀렸다.)


posh함은 결국 물질적인 걸 떠나 마음의 여유라는 깨달음을 주는 하루였다. '앤틱', '애프터눈 티', '백조'는 영국의 posh를 상징하는 소재이긴 하지만, 진정한 posh는 엄마와 내가 함께한 "시간"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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