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을 이사 왔을 때 텃밭 곳곳에 작물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오이, 가지, 고추, 토마토, 참외, 깻잎 등 전 주인이 정성스럽게 키워 놓은 작물에 대한 호사는 우리 가족이 누렸다. ^^ 그중 고추와 깻잎은 텃밭 곳곳에 심어져 있어서 그 양이 엄청났다. 비록 상품성은 떨어지나 무농약으로 우리 가족과 지인에게까지 후한 인심을 베풀 수 있었다. 그 외 참외와 토마토도 늦가을까지 매주 맛있게 먹었다.
덩굴 식물인 오이는 고추랑 함께 담벼락을 타고 자랄 수 있게 해 놓으셨는데 오이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담을 따라 자라서 지저분해 보여 오이만 수확하고 뽑아 버렸다. 그런데 이후 오이값이 이리 폭등할지 누가 알았는가 2개 5000원이 말이 되는가..ㅠㅜ 엄청 후회했다. 좀 더 키워봤어야 하는 건데...
올해 오이 농사(?)는 패스하려 했으나 오이가 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텃밭 작물 중 하나라고 한다. 오이꽃이 피고 이후 작은 오이가 달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한번 크면 폭풍 성장을 하기 때문에 수확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지 않아 키우는데 재미있단다. 그래서 5월쯤 5일장에 가서 모종을 사볼까 한다. 이번에는 고추대에 이용하여 틀을 잡고 오이망 또는 내림줄을 설치해서 키워 볼 예정이다.
고추와 깻잎은 정리한 곳에 우리는 상추를 심었다. 호야 군과 같이 읍내 농약사에 가서 직접 고른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줬으며 생각보다 빨리 나온 싹을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했다. 여기서 곁들이로 호야 군에게는 이와 관련된 그림책인 『농부달력』,『어진이의 농장 일기』, 『농장은 시끌벅적해』 등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읽어주었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우리아이가 이렇게 말이 많은 아이였던가^^:)
상추가 이후에도 무럭무럭 잘 크긴 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상추는 물을 많이 먹는 작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가서 물을 주니 일반적으로 먹는 야들야들 부드러운 식감이 아닌... 흔한 시골 용어로 상추가 겁나게 뻐셨다. 또 모종이 아닌 씨앗을 직파하여 심었기 때문에 솎아내기를 해야 하지만 이게 어떻게 자란 아이들인데 마음이 약해서 솎아 내질 못했더니 상추가 잘 크질 못했다. 이후 솎아내기 할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슬슬 시골집이 어느 정도 정돈이 되니 베란다 화분에서 잘 자라지 못하고 있는 방울토마토를 텃밭으로 옮겨심기로 했다. 열매를 바라고 매일 유치원 가기 전에 물을 주고 인사도 했지만 꽤 시간이 지난 후에도 꽃도 안 피고 더 이상의 성장이 없자 호야 군은 극단의 선택으로 토마토에게 편지를 썼다. "토마토야 잘 자라라. 꼭 꽃도 피고 맛있는 토마토가 되어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텃밭으로 옮긴 토마토가 잘 적응하지 못하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안 되겠다 생각했을 때쯤 방울토마토가 하나 두 개 열리기 시작했다. 많이 열리진 않았다. 호야 군은 토마토가 힘을 내줬다고 어찌나 좋아하면서 한입에 꿀꺽해 버렸다. 잔인하구먼...ㅋ
이렇게 겨울이 되어 마당 텃밭은 맨땅을 드러내며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작년에는 이미 심어져 있는 작물에 대해 관리하고 먹었지만 올해는 직접 어떤 작물을 심을지에 대한 결정과 각 작물의 파종 시기 등도 알아야 한다. 또한 파종 전에 미리 밭갈이도 해야하고 비료도 줘야하고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특히 무엇을 심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 날이 슬슬 따뜻해지고 어떤 작물을 심을지에 대해 매주 시골 어르신들과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어르신을 만나면 무엇을 심어야 하냐고 꼭 물어본다. 우리 아랫집 어르신은 아파트 주변 작은 텃밭에 이것저것 많이 심고 계신다. 그래서 여름엔 수박도 얻어먹고, 깻잎, 고추 등 문 앞 손잡이에 걸고 놓고 가신다. 이번주에는 우리가 동네 밭에서 따온 시금치를 아랫집 문 손잡이에 걸어 놓고 왔다.
현재 우리 집 가장 햇빛이 잘 들어오는 방에는 올해 모종들이 수분과 적정온도를 유지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