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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Apr 30. 2023

나를 깨우는 음악, Jazz

세렌디피티


나를 깨우는 시간


April. 30. 2023, 오늘 4월 30일은 '국제 재즈의 날(International Jazz Day)'이다. 재즈의 날을 2011년도에 유네스코가 지정했었다니 놀랍다.


내가 재즈를 진정으로 처음 들은 건 파주의 한 카페에서였다.


2주 전 월요일 갑자기 나의 업무에 펑크가 났다. 요즘 분위기도 좋고 책 읽거나 글 쓰기 좋은 대형 카페를 탐방 중인 나로서 갑작스럽게 생긴 공돈 같은 이 시간을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었다. T-map과 네이버 검색을 오가며 광산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듯 간절한 마음으로 손가락을 놀렸다. 집 근처로 갈까 조금 멀리 가볼까. 시간은 넉넉히 잡을 수 있었지만 찾아간 곳이 마음에 안 든다면 메뚜기처럼 카페 쇼핑을 해야 할 일이었다. 자기 방 침대에 널브러져 티비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해 못 할 짓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날은 날씨도 상콤했고 허파에 이미 바람이 가득 들어간 오후였기에 마음을 먹고 드라이브를 감행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오랜만에 가게 된 파주출판도시의 <지혜의 숲>. 검색한 카페는 나인식스였지만 그곳은 <지혜의 숲> 안쪽에 자리 잡혀 있었고 이미 지혜의 숲이 카페를 겸하기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편안한 자리에 앉아 1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나왔다.



다시 제2 자유로를 타고 간 곳은 헤이리 마을. 외관이 멋들어진 <컴프에비뉴>라는 카페에 도착. 하지만 당일은 실내 인테리어로 카페 이용이 어렵다고 해서 의자에 엉덩이도 대 보지 못하고 바로 리턴.



갑자기 지인에게 전에 들었던 카페 이름이 생각났다. 그 이름도 어려운 <모쿠슈라>. 검색해 보니 1분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호수를 바라볼 수 있게 지은 카페가 아니었다. 지인에게 들었던 곳은 <모쿠슈라 프렌치카페> 2호점, 30분은 더 가야 있었다.



<모쿠슈라>. 그 이름이 찬란해 보였다. 뜻을 찾아보니 '나의 소중한, 나의 혈육'이었다. 건물 앞길은 현재 공사 중이었지만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감미로운 느낌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카페는 3층까지 있었고 층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었다. 레스토랑 겸 카페 1층, 키즈들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된 2층, 다락방 같은 느낌으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낸 3층.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듯 아무도 없는 카페를 휘적휘적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화장실마저 맘에 드는 디퓨저 향과 은은한 조명으로 아늑해서 화장실을 내 자리로 내준대도 감사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아무도 없다는 것이 무한한 자유와 감격을 선사해선지 3층의 창가 자리를 점거한 나는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따뜻한 자몽레몬티를 홀짝이며 노트북을 열고 지금 쓰는 이런 이야기를 마구 적어갔다. 근사한 한 편의 글을 쥐어짜서라도 적어야지 하고 갔던 카페였는데 그 카페는 순식간에 그런 일종의 의무감을 해제시켜 버렸다. 난 정신적인 자유를 느꼈다. 편안하고 아늑했다.



그 편안함과 아늑함이 내 마음 안에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문득 궁금했다. 자유로움은 있었지만 그 자유와 해방감이 왜 그렇게 팝콘 터지듯 팽창한 건지. 글을 쓰다 보니 영혼의 자유를 느낀 건 일차적으로는 그 공간 자체에 대한 만족감과 이차적으로 그 공간을 흐르던 선율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공간도 물론이지만 재즈가 영혼을 깨워주는 음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간에 대한 만족은 금방 까먹게 되지만 음악은 정서적 만족을 훨씬 더 지연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재즈의 선율은 부드럽고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흘렀다. 귀에 들어온 재즈의 그 선율은 나의 의식을 목마처럼 태우고 아무 곳으로나 내 시선이 가는 대로 마구 달려가 주었다. 통제받고 싶지 않은 나의 의식이 마음대로 날뛰어도 모두 받아주고 튕겨주었다. 음악에 어떠한 힘이 있는 것인지 주체할 수 없는 자유로운 황홀감을 주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스파에 몸을 담그고 앉아 시원한 바람을 코로 들이마시는 느낌이기도 했고 드넓은 벌판 위에서 흔들거리는 조랑말을 타고 가는 느낌이기도 했다. 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나의 자아가 나를 꽉 채워 주어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3층 카페가 그랬기에 가능했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날 받은 인상은 분명 재즈로부터 왔다.



그날 이후 집에 혼자 있게 되면 나는 폰으로 재즈를 틀어 멀찌감치 두었다. 조금 큰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그 카페에 와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단순히 음악이라는 건 우리의 굴곡진 삶을 쉬게 해 주고 멍든 마음을 위로해 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했는데 그 가운데 재즈라는 장르가 이렇게 자유를 주고 해방감을 줄지는 몰랐다. 난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속박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내 영혼을 풀어주고 싶을 때면 재즈를 들을 것이다. 재즈에 몸을 싣고 마음껏 나의 의식을 따라갈 것이다. 마음이 뾰족해져 있을 때 재즈는 내 마음을 연유처럼 부드럽게 해 주고 몸이 몹시 힘들 때 내 육신의 고됨도 잊게 해 줄 것 믿는다.






p.s  '모쿠슈라'라는 말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영화에 등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랭키가 매기 피츠제랄드에게 붙여준 별명. 나의 소중한, 나의 혈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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