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연재를 마치며
열 번째 마지막 상담. 2024년 1월 24일.
상담의 마지막 커튼이 내려갔다. 50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 했던 무대가 어느덧 끝났다. 우리는 연극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는 기획 연출을 통해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느낌이었다. 그 연극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고 상담 선생님은 조연 배우로서 내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묵묵히 이끌어 준 존재였다. 영화에서도 주연 배우보다 더 중요한 조연 배우가 영화를 더 빛내줄 때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드라마도 그랬던 것 같다. 연극이 끝난 후, 누군가 무언의 커튼콜로 상담 선생님과 나를 불렀다. 우리는 다시 무대의 중앙으로 달려가 서서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로 따뜻하게 어깨를 서로 끌어안았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않았을 개인 상담이었다. 나는 내 문제를 스스로 분석하고 해석하고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던 사람이었기에 내 돈을 주고 상담 선생님과 마주할 일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는 거지만.) 하지만 개인 상담을 이렇게 10회기 하고 나니 상담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은 나의 내면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었고 편도에 박혀 있는 하얀 이물질(결석) 같은 것이 쏙 빠져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나를 괴롭히고 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나는 그것들에 정면으로 대결할 수 있었다. 나 혼자서는 버릴 수 없었던 것들을 상담 선생님의 지렛대를 빌려 쉽게 내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상담 선생님처럼 지렛대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흔쾌히 내 지렛대를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어제는 작은아들과 오랜만에 찜질방을 갔다. 나는 오랜만이 아니지만 작은아들은 거의 1년 만이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집결한 듯 처음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는 간신히 매트 하나를 얻어 찜질방 공용 거실 바깥 외딴 섬으로 나가 있다가 40분 쯤 후 다시 들어가 보았다. 우연히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던 그 자리 옆에서 한 커플이 일어나는 찰나를 발견했다. 그들이 천천히 일어나 잠시 서 있을 때 나는 냉큼 물었다. "완전히 가시는 건 아니시죠?" 완전히 가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커플 중 남자는 "완전히 나가는 거예요."하고 친절하게도 대답을 건네주었다. 예히!!~~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사이 내 방정맞은 입술이 습관처럼 나불거렸다. "아, 감사합니다!!" 흐윽, 지금으로부터 완전히 퇴장해 주셔서 감사하다니, 친절하지 못한 나의 추임새에 스스로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렇게 두 자리를 확보하고 나니 이내 마음이 유쾌해졌다.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가. 나는 몹시 기쁜 마음으로 뒹굴거리며, 주어진 자유를 만끽했다. 종이 넘기는 asmr에 동반된 피아노 반주를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두꺼운 벽돌책을 들고 벌러덩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고, 찜질방과 족욕탕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면서 시원하게 내 몸의 열기를 올렸다가 아이스방에서 식혔다가 매트 위로 푹 퍼졌고, 유튜브에서 추천 알고리즘으로 떠오르는 영상 중에 땡기는 영상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달아 시청하는 자유를 누렸다.
그중 내가 본 마지막 영상은 김창옥의 <포프리쇼>였다. 김창옥은 알츠하이머를 앓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작년 12월에 처음 접했던 이 소식은 충격적이었고 유독 슬프게 느껴졌다. 남들의 고통과 번민, 남의 죄책감과 슬픔을 들어주고 위로하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데는 소홀했던 게 아니었을까 해서. 그가 그동안 걸어온 길은 단순한 강연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전문 상담가를 능가하는 고된 상담자의 길이었기 때문이기도 해서 말이다.
사람의 겉과 속은 수박의 겉과 속만큼 다를 수 있다. 그는 외적으로 화려하며 너무 유머러스해서 참 재밌게 강의를 잘 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깊은 심연에 잠재되어 있는 강박관념과 죄의식, 자책감이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기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더 바쁘고 힘든 상황으로 자기를 옭아맨 것이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린 사람이었다.
마음속에 걱정과 번민, 괴로움과 고통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이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라 해도 내일이면 또 다른 갈등과 문제를 이고 지게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이련만.
인간의 가혹하고 불쌍한 많은 운명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ㅡ 아르투어 쇼펜하우어ㅡ
우리 인생에서 나를 사랑해 주고 기억해 주는 사람을 잊는다는 것,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는 것이다. 더욱이 나의 인생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 그리고 <스틸 앨리스>처럼 결국은 자기 자신을 잊게 된다는 것, 그것만큼 슬퍼지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알츠하이머가 우릴 집어삼켜 버린다 해도 한 가지 삼킬 수 없는 것이 있다고 김창옥 아저씨는 말했다. 그건 바로 추억이라고 했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에 콕 박혀 있다고. 나에게 추억으로 간직된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 오늘 이 글을 쓴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난 아마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 모든 글들을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브런치가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고 추억의 공간이었다는 것, 하소연하는 모든 말들을 묵묵히 들어준 둘도 없는 나의 친구라는 것은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도 실은 사라지는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 오늘 아니면 지난주에 내가 했던 행동이나 말, 새로운 경험, 가족과의 에피소드, 지나고 나면 사라져 버릴 기억을 이렇게 담아놓으면 내가 문맹자가 아니고서는 먼 훗날이라도 다시 읽으며 추억할 수 있겠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그리고 내가 세상을 떠나도 나를 기억해 줄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단 한 권이라도 내 마음을 책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게 당장은 아니지만 내가 좀 더 여물어서 좋은 언어들을 쓸 수 있게 되면 그때 내놓아야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나에 대한 기억이 추억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건 불변의 진리다. 그들에게는 괴롭고 복잡한 마음을 하소연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건 브런치가 될 수도 있고, 정신과가 될 수도 있으며, 상담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마음이 멍들고 피로 물들기 전에,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기 전에 우린 털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인생의 무게는 원래부터 가벼웠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날이 단 한 번뿐이고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것임을 항시 명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ㅡ 쇼펜하우어 ㅡ
p.s. 10회기 상담을 마치면서 나의 상담일지 연재도 마친다. 월요일 연재일에 결국 올리지 못하고 화요일 새벽이 되었지만 이렇게 사소한 일은 냇물 속 바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물고기의 기억에 불과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