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단 7일이 남았다면, <더 웨일>

by 김혜정


유 어 디스거스팅!!



역겹다. 이렇게 육중한 몸으로 자기 체중도 감당하지 못하는 당신의 모습이 역겹다. 어렸을 때, 엄마가 외할머니댁에 갔던 날, 남자친구를 데려와서 스테이크 요리를 해 주고 사랑을 속삭였던 당신이 역겹다. 8살짜리 딸을 두고 남자친구를 따라 떠난 쓰레기 같은 당신, 아빠라고 부르는 것도 역겨운 당신이 역겹다.


8살이었던 엘리의 상처는 이미 깊다. 이유를 불문하고 자기를 두고 떠난 부모는 자식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법이다.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곪아터져서 아무데나 튀긴다. 범법을 하고 남을 조롱하고 자기를 해한다. 결국은 타인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용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진정한 사랑이 체득되기 전에 상처가 곪아터진 사람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거라고, 성경에서는 구구절절 말하고 있지마는,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엘리의 아빠인 찰리. 찰리에겐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자신의 제자 앨런. 가족을 등지고 동성애자 앨런을 선택할 만큼 그에게 앨런은 소중했다. 사랑이었다. 그러나 가족에게 버림받고 자살을 선택한 앨런이 세상을 떠난 후, 찰리는 폭식증에 시달리다 결국은 심부전증으로 7일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된다.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 찰리는 자신의 딸 엘리를 보고 싶어 한다. 자기를 버린 아빠 찰리에 대한 원망과 세상에 대한 증오심으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던 딸이지만, 찰리에게 엘리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아무리 자기를 역겹다고 말하고 은둔자로 살아왔던 자기의 실체를 SNS에 올렸다 하더라도 찰리는 딸을 사랑했다. 스스로에게 솔직할 줄 알고 남을 도우려는 본성을 갖고 있는 딸 엘리가 그의 인생에서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엘리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 깨닫게 하는 것이 죽어가는 찰리에게는 마지막 사명이었다.


찰리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한 편의 글이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읽고 4년 전에 딸 엘리가 쓴 감상문.

책의 초반부엔 작중 화자인 이스마엘이 작은 어촌에서 퀴퀘크라는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워 있다. 이스마엘과 퀴퀘크는 교회에 갔다가 배를 타고 출항하는데 선장은 해적인 에이해브다. 그는 다리 하나가 없고 어떤 고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고래의 이름은 모비 딕. 백고래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에이해브는 많은 난관에 직면한다. 그는 평생을 그 고래를 죽이는 데 바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불쌍하고 큰 짐승일 뿐. 에이해브도 참 가엽다. 그 고래만 죽이면 삶이 나아지리라 믿지만 실상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될 테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찰리가 전 와이프인 엘리의 엄마에게 요청해서 받은 엘리의 감상문. 에세이 온라인 교수였던 찰리에게 이 글은 엘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엘리는 어리지만 성숙했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기를 해한 짐승인 고래를 죽이면 자신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살아가지만 결국 그것은 허상일 뿐이라는 걸 그 어린 나이에 알고 있었다. 에이해브 선장의 삶에 빗대어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긍정심이 높은 아이였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인간인 자기를, 고래와 같이 짐승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기를 딸은 비로소 용서하고 불쌍히 여길 수 있으리라.

그래서 찰리는 죽기 전에 눈물을 뿌리며 진심으로 딸에게 고백한다.


널 떠나서 미안해. 사랑에 빠져서.. 그래서 널 떠났어. 너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나도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넌 훌륭한 애야. 그 에세이도 훌륭해. 그 에세이는 너야.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야.




단 7일을 시한부로 남겨두고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을까.


아침에 일어나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뒤엉킨 하얀 이불을 공중으로 활짝 펼쳤다가 한 번에 촤악 착지시키며 나는 매일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 하루를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 이렇게 생각한다. 밤새 꿀잠 자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오늘 이렇게 눈 뜨고 하얀 이불을 활짝 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오늘 하루를 덤으로 주셨으니, 오늘도 잘 살아보겠다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물론 하루를 보내면서 뜻하지 않은 일들, 혹은 속상한 일들, 황당한 일들도 겪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소중한 가족들을 매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하냐고. 나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나를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가족들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나는 정말 운도 좋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열심히 놀고 수많은 친구들과 추억 쌓으며 스스로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나고 있는 착한 우리 아들, 중요한 것부터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공유하고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는 멋쟁이 우리 아들, 묵묵하고 성실하게 지내는 게 천성이어서 여태껏 어떤 불평불만도 없이 모든 걸 청소기처럼 흡수하는 우리 남편, 그리고 이 세 남자와 함께 사는 천덕꾸러기 같고 말 많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나까지 달처럼 고요하게 비춰주는 너무 이쁜 우리집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말이다.


그러니 내 앞에 내 인생 7일이 남았다면, 그동안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다고. 한 사람 한 사람 너무 나에게 소중했다고. 하지만 슬퍼하지 말라고. 내가 죽으면 하늘에 가 있을 거라고. 하늘 아득한 곳 저 멀리 안 보이는 곳이 아니라, 밤이면 총총거리며 바자니는 별들 중 하나로 빛나고 있을 거라고. 만약 어느 별인지 몰라서 눈물이 난다면, 날마다 가장 환하게 빛나고 있을 북극성으로 태어나 있겠다고. 그렇게 날 매일 보러 밤마다 나와 달라고. 나는 별이 되고 싶고, 정말 별이 될 거라고.





이 작품에서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크게 두 가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죽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

남을 돕는 일 / 남을 구원하는 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일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일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


에세이에서 중요한 것

글의 구조와 단락 구성, 글의 논지 등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논지의 진실성

자신의 아이디어

그리고 끊임없이 수정하는 것



에세이를 쓰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솔직한 것, 진실한 것이라는 걸 마음에 다시 새겨 본다. 눈물이 나도록 가슴 깊이 슬픈 영화, <더 웨일>이었다.



<더 웨일>의 주인공 브랜든 프레이저가 개인적으로도 힘든 일들을 겪어서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더 가슴이 아팠다.


1) 브랜든 프레이저의 과거 모습 2) 현재 모습 3) 95회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모습 ㅡ 남우주연상 수상


영화 속 찰리 ㅡ 분장만 4시간, 분장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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