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삭 속았수다
어떡하면 좋아. 애순이를.
그 험한 돌무더기 인생밭길 무쇠의 힘으로 함께 견뎌 준 양관식 세상 밖으로 떠나고 제주도 꽃밭에 덩그러니 남은 애순이를 애잔해서 어떡하나.
너밖에 없어, 애순이밖에 없어, 애순이가 좋으면 뭐든지 할 거야, 세상 끝까지 따라가 책임질 거야, 모든 슬픔 함께 짊어져 주고, "등 두드려" 하면 자장자장 노래로 재워주던 양관식이 없는 밤 애순이 얼마나 허전할까.
대학원 마지막 학기가 지옥같이 흘러간 후에, 그 지옥 같던 시간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애순이의 인생을, 몹시 보고 싶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애순이의 시간을 훔쳐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 다 본 다음 후에
단맛 다 녹아 없어져서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질 무렵에야
고독허니 혼자 보기 시작했지만,
애순이의 삶은 시간이 지났다 하여 결코 바래질 색이 아니었다. 애순이의 히스토리와 우리가 함께 살아낸 이 시대를 담은 거대한 이 작품도 결코 바래질 드라마가 아니었다.
160년 같은 16시간은
우리의 힘겹고 지친 마음을 폭삭 뭉그러뜨려주고도 모자라
무언가 묵직한 걸 남겨 두었다.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와 이선균이 그랬던 것처럼
애순이와 관식이는 내 마음을 후벼 파고 그 후벼 판 자리에
다른 걸 넣어주었다.
몰래 아그작아그작
다음엔 언제 먹을 수 있으려나 하 기다리던 동명이.
동명이가 좋아하던 빨강 초록 알사탕과
알사탕과 과자와 계란말이를 펼쳐놓고
동명이 무덤 위를 추위에 새빨개진 손으로 쓰다듬으며
얼굴을 대고 가만가만 있던 애순이
우리 동명이 추워서 어떡해 추워서 어떡해
온몸으로 무덤을 덮어 주려던 애순이.
애순이가 바당에 몸을 던질까 봐 단 한 번도
얼굴 마주하지 못하고 나무등걸에 등 대고 앉았던 무쇠
무쇠다리 무쇠주먹 세상무쇠로 온몸을 두르고
내 아내 내 딸 하고 싶은 거 뭐든지 다 해,
여보 내가 다 해줄게. 아빠 여기 있어 딸. 부르짖던 관식이.
(근데 그렇게 떠나가면 어떡해.. ㅠㅠ.. 그렇게 말라서 ㅠㅠ)
동명이가 애순이가 무쇠가 금명이가
주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서로에게 남긴 건 무엇이었을까.
내 가슴이 이렇게 아픈 건 단지 슬프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인생이 가난해서, 서러워서, 불쌍해서도 아닐 것이다.
그들의 가슴속엔 깊은 우물이 하나씩 있었다.
가끔씩은 우물에 물이 바닥날 때도 있었지만
그들은 우물을 넘치게 할 마중물을 또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마중물이 있었기에
그들은 풍족했고 행복했고 날마다 서로를 그리워할 수 있었다. 그들에겐 넘치는 우물물 같은 사랑이 있었다.
사람이 얼마만큼의 사랑을 받아야
평생을 사랑에 고프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냐고 물으면
오애순이랑 양관식이 정도의 사랑이면
두 번 생 정도는 살 수 있겠노라 말하겠다.
서랍 가득가득 애순이가 늙어 죽을 때까지 꽂을 수 있게
머리삔을 채워둔 당신, 양관식이의 사랑이면.. ㅠㅠ
이렇게 애달픈 사랑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