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 쉬지 않고 기도로 감사하며 기다림의 영성을 갖는다면 우리는 바라는 것을 응답으로 얻게 된다. 하나님은 응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기를 오래 기다리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하여서는 오랜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칭얼거리는 아기처럼 원하는 것을 단숨에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 믿음을 가지고서 기도의 행위를 반복해야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래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응답을 내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자는
거룩하고 착한 그릇을 예비한 자이다.
하나님은 축복의 선물을 아무 그릇에다 담아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응답의 선물을 받는 그릇은 완전히 새롭게 바뀐 그릇이어야 한다.
그것은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양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거듭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거듭났다는 것은 완전한 변화를 이룬 것이고, 마음이 완전히 변화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 오전 11시 예배,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기다리라는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이 영적 생활이 글쓰기의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굳건한 믿음
내가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아무런 의심 없이 글을 쓰며, 이 글쓰기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는 그 굳건한 믿음은 아무리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더라도, 나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나의 인생에서 이제는 하나님과 나를 별개로 놓고 살아갈 수 없듯이, 글이라는 대상도 이제는 나와 따로 떨어뜨릴 수 없는 존재적 의미를 갖는다. 나와 하나님이 불가분의 관계, 은밀하고 영속적이고 긴밀한 관계이듯이, 나에게 글은 더 이상 객체만이 아닌 주체이기도 하고 상대이기도 하며, 질투하고 끌어당기고 깊은 속을 나누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신실한 기도
기도라는 행위는 반드시 두 손을 모으고 가부좌를 틀거나 엎드린 자세에서 초집중하여 하나님만 부르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눈을 뜨고 그 어떤 것을 바라보더라도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 감탄하거나 걱정되는 순간마다 나직하게 "오~!! 주여!!"하고 하나님을 외치는 것 또한 기도가 된다. 글쓰기도 그렇다. 반드시 오랜 시간을 한 자리에 앉아서 순백의 화면에 글자들을 넣는 행위만이 글쓰기가 아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있든 감고 있든 깨어 있든 잠자고 있든 상관없이 나의 글이 머릿속에서 혹은 입 언저리에서 쓰이고 있다면 그게 바로 신실한 글쓰기다. 그렇게 모이고 모인 것이 하나의 글로써 탄생할 것이며 그 글 쓰기 행위의 반복은 기도처럼 쌓이고 쌓여 결국 나만의 영적 세계를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기도의 축적이 나에게 응답을 가져오는 것처럼, 글쓰기의 축적 역시 나에게 응답으로 돌아올 것이다.
영적인 기다림
그런 응답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바로 영적인 기다림이다. 물적 기다림이 아닌, 영적 기다림! 오~ 숭고하고 거룩한 기다림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물적 세계가 아니다. 고통과 환란으로 가득한 악한 속세를 떠나 나는 희락과 평안이 있는 저 지평선 너머로 가고자 한다. 영적 세계 안에서 나는 언제나 자유롭게, 평화로운 풀밭 위에 뛰놀고 싶다. 글쓰기에도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취할 것은 영원한 자유로움이다. 글쓰기는 정신의 해방이며, 온전한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영성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외적 표출도 물론 숭고하지만, 그 이면엔 남이 모를 영적인 인고의 세월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