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봐. 내 말 안 듣더니 걸렸지. 내 말 무시하더니 꼴 좋아. 그러게 내가 돌아다니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그렇게 신나게 돌아다니더니 내 말이 맞지, 안 그래?”
아빠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 와서 박힌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
그래, 엄마가 돌아다니지 말라고, 듣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 아빠 등 뒤에다 대고 자나 깨나 했었지. 그 잔소리. “듣는지 마는지 사람이 얘기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무시할 수가 있어. 진짜 니 아빠는 나를 어쩌면 그렇게 무시하니. 내가 바본 줄 아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대답 한 번을 안 하고 들은 척도 안 하니.”
평생을 들어온 것 같은 잔소리다. 이제는 똑같은 이 말들을 듣기에도 지쳐 버렸다.
어렸을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잔소리. “남편 복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더니, 누구더러 하는 얘기겠어. 내가 딱 그 꼴이지~.” 나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남편 복 없다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 옛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었다.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나는 죄인이 되고 말았다.
엄마는 왜 그렇게 비난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나 혼자서 궁리하고 고민한 시간이 많았다.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수시로 들려오는 엄마의 짜증과 한숨 소리,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기복, “이런~ 썅놈의~ ”로 시작하는 악다구니는 분노의 신호탄이었다. 그런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이면 우리 식구들은 그 소리가 가장 작게 들릴 수 있는 공간으로 몸을 피해 버렸다.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아빠, 오빠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아마 나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는 건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런 감정의 폭발이 과거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시당해서 불편했고 불쾌했고 억울했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과거에 꽉 묶인 채 실종되었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디론가 공중분해되었거나, 그도 아니면 어느 착하고 품 넓은 의인의 도움으로 모두 해소되었다면 지금의 우리 엄마는 태어난 본성대로 너무 여리고 순해서 사랑으로 하늘거리는 꽃처럼 살아가고 있을 텐데 과거에 닿아 있는 현실은 하늘거리는 꽃이 아니라 차디찬 시멘트 같다.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엄마가 반평생을 아빠에게 무시받은 설움이 얼마나 큰지,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긴지 잘 알고 있다. 아빠더러 엄마한테 사랑을 느껴보라고 권할 수도 없고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하라고 말할 수도 없는 내가 자식으로서 너무 용기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징검다리를 예쁘게 놓아주고 서로 가운데서 만나게 해 주려는 노력을 안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자식의 도리란 말인가?
부부 간의 문제는 부부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엄마가 푸념을 하고 하소연을 하면 나는 전적으로 엄마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엄마 마음은 잘 알지만 아빠의 입장도 한 번 역지사지로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모든 관계는 자신을 중심으로 성립되어 있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누가 중심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게다 부모 둘 중 어느 한 편을 든다면 그건 다른 한 편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무시당하는 것을 평생의 한으로 생각하듯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고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무시하는 행위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그런 나름의 입장으로 중립을 택한 나는 훌륭한 상담가가 못 되었다. 좋은 상담가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끝까지 내담자의 말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여주고 반응함으로써 내담자의 마음속 찌끄러기가 모두 해소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엄마의 하소연 끝에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봐.” 같은 결론이 기다리고 있으니 엄마가 여태껏 분풀이를 속시원히 못한 원인이 나라면 나다.
아빠는 오미크론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여태 늘 친구를 만나 돌아다니고 걱정 없이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도 남들이 다 걸리도록 당신은 안 걸렸으니 오미크론에 안 걸리고 그냥 지나갈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엄마도 걸리고 우리 식구도 모두 걸려서 아빠도 이번에는 식겁하셨을 거라고 예상했다. 아빤 3살 때부터 천식을 앓으셨고 지금도 잠바 주머니 안에는 천식용 스프레이를 늘 상비하고 외출하시는 만큼 호흡기에 치명적인 코로나를 이제는 염려하시겠지 했지만 엄마 말에 의하면 독불장군으로서 호언장담 “나는 안 걸렸어.”로 일관하셨다는 거다. 오미크론에 걸려 앓아누웠던 때에도 보통의 지극한 정성과 보살핌은 고사하고 엄마와 마주칠세라 걸어 잠근 문에 똑똑 노크하고는 “나갔다 올게.”“나 들어왔어.”하며 행적만을 보고하는 아빠에 대한 복수심이 큰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아빠가 이 바이러스 때문에 폐렴이라도 들면 어떡하나 하는, 병상이 부족하다던데 입원할 위기에 갈 곳 없는 환자가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엄습한 것인지, 엄마는 걱정보다도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물론 앙심과 걱정 두 가지의 양가감정이 있다는 거 안다. 그런 감정들이 둥글어지지 않고 모난 채로 사방팔방 뻗어나가려고 하니 주체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프면 “쯧쯧, 그러지 말랬지. 거 봐. 조심하랬지!”하면서 핀잔을 놓고 마음을 멍들게 할 게 아니라 “에구. 어쩌다 그랬어. 힘들겠다. ” 이런 말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당장은 화가 들끓고 몹시 기분이 상했다손 치더라도 더 아픈 사람은 상대방일 테니까 말이다. “쯧쯧, 거 봐~”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들어온 말이라서 내가 받은 상처, 우리 아이들한테 대물림해 주지 않으려고 한 번도 그런 말 입에 담은 적 없는데, 슬프게도 우리 엄마는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화법을 바꾸지 못했다.
엄마의 부정적 언어를 들으면 내 마음은 비틀어지고 멍이 드는데 정작 엄마는 그게 화살이라는 걸 모른다. 아빠 역시도 수많은 화살을 맞았지만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애써 참아온 건 그 화살이 불화살이 되어 온 집안을 태워버릴까 봐서였을지도.
말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 평온하던 가정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일들이 많았기에 쓰디쓴 화법을 무기로 삼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 때문에 오늘도 난 엄마의 화살받이가 되어 아빠한테 꽂힐 비수를 대신 맞아 주었다.
그리고 아빠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더 자라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물론 아빠가 엄마 걱정 뒤로 하고 자주 외출하고 식당도 간 건 맞지만, 일부러 엄마를 무시하려고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아빠는 나가는 게 신나고 요즘 사람들 만나는 게 너무 좋아서 그런 거야. 엄마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서 이제는 벗어났으면 좋겠어. 아빠가 코로나 시국에 돌아다닌 건 백번 잘못이지. 근데 엄마가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감염되었던 것처럼 아빠도 똑같이 그냥 감염이 된 거야. 엄마가 걱정이 되면 걱정을 해. 내 말 안 들어서 그렇게 된 거라고 탓하지 말고~. 그냥 약 잘 먹고 푹 쉬고 빨리 치료되라고 얘기해 줘. 나한테 해 줬던 것처럼. 그럼 아빠도엄마한테 크게 위로받고 엄마한테 더 잘 할 거야. 나는 엄마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세월이 쌓이면 부정적인 감정도 그 세월에 켜켜이 파묻혀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있다가 일상에서 누군가와 부딪히는 순간에는 송곳이 되고 못이 되어 튀어나온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이리저리 튕겨 나간다. 녹슨 감정은 아무리 누가 깨끗이 씻어주려고 해도 씻겨지지가 않고 박박 문질러 벗겨내려고 안간힘을 쓰더라도 잠시 깨끗해졌다가 도루묵이 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어디로부터 나올까.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그 탓을 부모에게 돌린다고 해결될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은 거 같다. 그건 스스로 나쁜 감정을 좋은 감정으로 바꾸려는 순수한 의지와 노력이 아니면 해결될 수 없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그다음 못난 상대방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긍정적인 감정도 생기는 것이다. 매번 남을 사랑하고 모든 행동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작은 사랑과 넓은 이해심이 없다면 도루묵이 될 뿐이다.
진실된 인정을 받지 못해 늘 인정받길 갈구하고 진실된 사랑이 지속되지 못해 텅 빈 마음이 되어버린 늙으신 우리 엄마의 외로움을, 그 고단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엄마를 이해하려고 한다.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쓸쓸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쓴다 하는데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것을 보면 엄마에게는 나의 관심과 보살핌보다 아빠의 작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 같다. 지고지순한 우리 엄마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