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들판이 바람에 나부낀다. 따뜻한 바람이 소리도 없이 귓가에 맴돌다가 어느새 거센 풍랑이 되어 철썩철썩 몰아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기에 언제 다시 잠잠해질는지 언제 다시 휘몰아칠는지 알 수가 없다.
2년 동안 애써 온 보람도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바이러스가 내 몸에 들어왔다. 코 시국이 시작될 무렵부터 우리 가족은 그 흔한 커피숍에도 가지 않았고 외식도 작년에 딱 두 번, 숯불에 구워 먹는 고기가 너무 그리워 사람 없는 시간대를 골라 후딱 다녀온 것이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2주 전 작은 아들이 친구와 오랜만에 자전거 타며 놀고 들어오더니 확진자가 되었다. 작은 아들이 약간의 통증과 감기 증세를 보인 날 바로 병원에 가서 항원 검사를 받았는데 곧바로 양성 판정이 나온 것이다. 그때부터 작은 아들은 철저히 격리되었고 우리도 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지내기 시작했다. 나는 수업을 한 주 미루고 피치 못할 수업은 줌으로 진행했다. 작은 아들은 격리된 상황이 처음이라 어리둥절했지만 일주일 간 갖게 된 혼자만의 시간에 격앙되었다. 학교 수업이나 학원 수업은 모두 줌으로 진행되었고 나머지 남는 시간에는 마음껏 뒹굴거리며 유튜브를 보고 노래도 부르며 쾌재를 불렀다.
그런 작은 아들의 자유를 배 아파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큰아들이었다. 중학생인 우리 큰아들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했으나 코로나를 담보로 하는 건 원치 않았기에 스스로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그런 마음을 달래주는 휴일(선거일)을 맞이했고 행복을 만끽하며 하루를 마감하려던 자정 전 무렵, 진단 키트를 해 보고 자라는 아빠의 말에 순순히 키트로 검사를 하던 큰아들의 입에서 외마디 감탄사가 툭 툭 튀어나왔다. “어!”“뭐야!” 아무 생각 없던 나는 세상 친절하게 “왜에~?”하고 멀리서 목소리만 보냈다. 당황한 큰아들 “두 줄 나왔는데!!” 그제서야 놀란 나. “뭐?!” 후다닥 가서 보니 두 줄이 선명했다. 와~ 작은 아들 격리 해제를 하루 앞둔 마당에 웬 두 줄인가. 분명 작은 아들한테 옮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고 있고 급식도 먹고 있으니 총알 없는 총만 들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은 이 상황에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남편과 나도 서둘러 진단 키트로 검사를 해 보았지만 음성이었다. 다음 날 우리 셋은 작은 아들만 집에 방치한 채 서둘러 병원에 가서 항원 검사를 해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 아들과 나는 pcr검사까지 마치고 약을 조제해서 집으로 왔다. 그날부터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2~3주 전에 친정 엄마가 일을 시작한 지 2주 된 일터에서, 검사를 안 받고 약만 지어먹는 것으로 의심받는 다른 분에게 감염이 되셨었다. 목이 심하게 붓고 목소리가 바로 변성되어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전화 상으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몸살, 고열, 근육통, 가래, 인후통 등 다양한 증세가 한꺼번에 발생했고 이비인후과에서 조제한 약으로도 통증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주말이 끼어 있었기에 전에 사두었던 비상약 세트를 갖다 드렸고 심한 통증을 잠재울 약들을 추가로 드시게 했다. 주말이 지나고서는 비대면 진료로 약을 증세에 맞게 바꾸어 갖다 드렸고 그렇게 꼬박 1주일은 앓아누우셨다.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3일이면 낫고 멀쩡해진다기에, 그만큼 오미크론 바이러스는 경미한가 보다 하고 안심했었는데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3차 백신까지 맞았다 하더라도 증상이 심한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고 고위험자들은 사망에 이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절로 들었다.
그런 코로나에 내가 걸린 것이다. 난 젊으니까 사실 걱정은 안 했다. 경미한 상태로 지나갈 거라고 예상했고 다만 수업을 더 못 하게 되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검사받은 목요일 <1일 차>부터 당장 아파지기 시작했다. 목이 빠른 속도로 붓고 염증이 생겼으며 두통과 몸살기도 동반되었다. 당장 약이 없다면 급속도로 나빠질 정도였다. 밥을 챙겨 먹고 약을 먹고 몸을 쉬었다. 조금 쉬면 나아지겠지 했던 마음은 귓방망이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음 날 <2일 차>은 목이 찢어질 듯 아픈 고통이 시작되었다. 침을 삼키기가 무섭게 목구멍이 부어올랐고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었다. 몸이 늘어지고 기운이 바닥을 쳤다. 항상 쌩쌩했던 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운이 없어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도 어려웠고 어깨도 축축 쳐졌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조차도 tv를 보고 싶은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그저 누워 있게만 되었다. 약을 먹어도 목에는 차도가 없었다. 더 나빠지기만 했다. 그다음 날 <3일 차>은 인후에 뭔가가 거슬리는 부분이 생겼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니 하얀 알갱이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세균성 염증이 생긴 것이다. 아무래도 소아청소년과에서 약을 지어서 그런가 약효가 너무 떨어진다 싶었다. 목의 통증은 낫지 않고 밤에는 기침까지 하느라 잠을 설쳤다. 다음 날 <4일 차> 약이 모두 소진되고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져서 새로 생긴 증상들을 털어놓고 다시 약을 받았다. 약을 가져온 사람은 이미 격리 해제되어 자유를 찾은 우리 작은 아들. 항생제가 포함된 약을 먹기 시작하자 그다음 날부터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거의 하루 만에 침을 삼킬 때 찢어질 것 같았던 통증은 반으로 경감되고 참을 수 있을 만큼만 아프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다시 그다음 날 <5일 차>은 조금 더 호전되어 마른기침과 인후염만 살짝 있고 <6일 차>에는 코막힘과 가래 살짝 이외에는 거의 증상이 사라진 완쾌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내가 젊은 사람이 아닌 것인지, 면역력이 많이 부족한 탓인지, 그저 개인차에 불과한 문제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코로나라는 것에 호되게 당했다. 혹독한 일주일이었다. 물론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는 찜질을 하면서 책을 읽는 달콤함을 맛보기는 했으니 내내 혹독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 최대한 걸리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신신당부는 전보다 진실한 부탁이 되었다.
오미크론 확산이 정점을 찍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물론 오미크론은 그 전의 알파, 베타, 감마, 델타에 비해 전파력은 강하지만 증상이 경미하기에 그렇게 큰 두려움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 게다 한 번 감염이 되면 슈퍼 항체가 생겨나서 보통 사람들보다 큰 면역력을 가진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게 되는 면도 있다.
하지만 곧 델타 바이러스와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결합된 형태인 델타크론이 국내로 유입될 위기에 처해 있다. 소리 없는 바람처럼 소리 소문 없이 언제 우리들 곁으로 파고들지 모르는 일이다.
1년 전만 해도 코로나 종식을 염두에 두고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전망을 내놓았었다. 2분기쯤에는 위드 코로나가 실행될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고 그로 인해 여행이나 비즈니스, 백화점, 쇼핑 등 오프라인 활동 관련 주식들도 상한가를 치고 또 예술, 공연 등에 대한 기대도 곧 현실화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반기 갑작스러운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모든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해가 바뀌어 지금은 코로나 3년 차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중학교 1학년 입학하자마자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어 친구들조차 화상으로 만나야 했던 불쌍한 아이들이 벌써 3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마스크 없이는 만날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이제는 그들의 화두에 ‘확진/미확진’ 여부가 오르내리게 되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코로나에 이미 걸렸고 완치가 된 학생들은 쾌재를 부르며 이제 놀이동산에도 갈 수 있고 찜질방에도 워터파크에도 갈 수 있는 거냐고 감격스러워한다. 세상 어느 곳이든 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마음에 해방감을 크게 느낀다. 그러나 아직 코로나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혹시 확진자는 아닐까 노심초사하고 누군가 옆에 바싹 다가오는 일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비극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 무서운 바이러스가 사람들 사이에 경계를 만들었다가 허물었다가 아주 장난을 치고 있는 모양새다.
북극의 영구 동토층에는 중생대 시대생물체의 바이러스가 얼어붙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고 동토층에 균열이 생기게 되거나 부서지게 되면 고대의 희귀한 바이러스가 우리를 엄습할지도 모른다. 단순히 오미크론, 델타크론만을 견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2년 남짓, 어찌 보면 짧은 시간에 다섯 가지의 변이, 돌파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렸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굳이 《페스트》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처한 어려움과 고통은 죽은 자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삶은 얼마나 힘들 것이며 턱없이 부족한 병상과 씨름하는 의료진들의 한숨은 얼마나 깊을 것인가. 이제는 병원 측에서 임신부들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아이를 임신한 사람은 무슨 죄인가. 코로나 확진율 전 세계 1위, 우리 대한민국도 오미크론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머지않은 건 알겠다. 하지만 그동안 탄탄하게 쌓아 올렸던 신뢰까지도 해제될까 두렵다. 급속도로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대응 체계에 혼란을 겪지 않도록, 어떤 위기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서로를 믿는 마음으로 잘 헤쳐 나가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