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날 때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은 현재 세 개다. 유퀴즈, 금쪽이, 그리고 나는 솔로. 그중 얼마 전부터 본방을 사수하게 된 프로는 only one, <나는 solo>.
삶이 묻어나고 사람 냄새가 나고 같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만나러 모이는 이곳!!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서로에게 맞는 짝을 찾게 해주는 곳이다. 공개 구혼의 현장이다.
모든 참가자는 패를 들고 있다. 들고 있는 패는 기회의 수다. 상대방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 참가자들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바닥에 있는 패와 매치되는 자신의 패를 들여다본다. 바닥에있는 패는 상대방이다. 선택하고 싶은 패가 많을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어떤 패를 먼저 가져올지 고민이 된다. 남들이 어떤 패를 가져갔는지도 본다. 그리고 승산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패를 가져온다. 한편 판은 돌아가고 있는데 자신의 패와 맞는 것이 없어 기진맥진한 사람도 있다. 남들이 패를 가져가면서 환호를 지를 때 멀뚱히 관망만 한다. 강 건너 불구경이 따로 없다. 판을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도 훅 올라온다. 그러나 판의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충동은 가볍게 참아주고 게임을 하는 동안 참가자들과 추억 쌓기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이미 가진 것을 다 잃을 수도 있고 뜻밖의 행운도 얻을 수 있다. 심장 떨림!! 예측불가!! 긴장의 연속!! 자신감이 충만했다가 갑자기 포기하는 마음도 들었다가 자신의 선택이 확신이었다가 아니었다가.
고스톱 판 안으로 <나는 솔로>를 대입하니 얼추 비슷한 것 같다. 재밌다. 고스톱의 묘미처럼 <나는 솔로>도 타이밍이자 심리전이다.
<나는 솔로> 참가자들의 목적은 짝을 찾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패를 모두 이용해서 자기를 어필하기도 하고 데이트권을 이용하기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체험도 해가면서 진정한 짝꿍을 만나는 모험판이다. 공통점이 많을수록, 생각이 비슷하고 대화가 잘 통할수록 짝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음에 꼭 맞는 지점들이 많을수록 점수가 쌓이고 기쁨도 쌓인다. 내가 수확한 점수를 세어보면서 설레기도 한다. 물론 한 번에 모든 것이 결정나지는 않는다. 만날수록 다른 면이 궁금해지고 그러니까 계속 연장전을 펼쳐 나가는 것이다. 서로 정보를 탐색하기도 하고 그 과정 안에 녹아든 희로애락에 일희일비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심리전이 있고 나름의 전략과 전술도 있기에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시청자)도 덩달아 흥겨워진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중요한데 처음부터 한눈에 딱 맞아 커플에 성공한다면 얼마나 지루한 프로가 되겠는가.
오래전 <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을 때도 숨죽이고 TV에 빨려 들어갈 듯한 자세로 집중해서 봤었다. 그러다 갑자기 종영이 됐었는데 후문으로 출연자의 자살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다. <나는 솔로>는 잘 몰랐다가 6기 때 보게 되었는데 6기 멤버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재방 사수하다가 이제는 아예 본방 사수까지 팔 걷어붙였다. 이어 7기 멤버들은 40대 미혼 남녀들로 구성된 선남선녀들이었다. 특히 이 멤버들 가운데서 종결판을 뒤집어 놓은 사람이 있었다. 순자!! 순자를 보면서 내가 보였다.
순자는 대한민국의 입시 메카로 불리는 강남 대치동의 학원 강사다. 과목은 나와 같은 국어. 순자의 성격은 나랑 비슷하다. 솔직함 끝판왕이다. 법 없어도 양심으로 살아갈 사람. 주변에 아무도 없어도 대쪽같이 곧은 기세로 잘 살 수 있다고 떵떵거리고 소리치지만 속은 외롭다. 겉으로 보기엔 꺾이지 않을 듯 올곧고 푸르러 늘 당차 보이지만 누군가 단면을 똑 잘라 보면 속은 텅 비어서 바람 소리가 날 것 같은 대나무처럼. 씩씩하고 바쁘게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애쓰지만 사실 알고 보면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라는 걸 오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알아 버렸다. 순자는 나와 닮아 있었다.
순자는 학원 강사인 남자가 싫다고 했다. 아마도 진상 남자 강사들을 많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내가 본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있기는 했지만 나는 강사를 시작한 지 2년 반 만에 만난 남자 강사와 결혼했으니 순자만큼 나쁜 경험을 한 예는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순자는 학원 강사는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 자기소개 시간에 그 얘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순자를 보면서 난 순자가 뭔가 왜곡된 기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사람을 진중하게 만나 본 경험이 없고 겉으로만 판단한 결과가 아닐까 했다. 왜냐하면 같은 직종의 사람이 부부가 되었을 때 같은 고민을 나누고 공감해 주면서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일하는 데, 살아가는 데 엄청난 힘이 된다는 걸 나는 알기 때문이다. 아마 순자는 고집이 세고 예민한 사람일 거라고 판단했다. 결국 순자는 처음에 0표를 받고 좌절하고 만다. 그러나 주어진 기회를 사용하느라 죽도록 싫어한다던 학원 강사, 영호와 데이트를 나간다. 절대 일 얘기는 안 하기로 약속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학원 얘기로 저절로 이어지고 화기애애했던 데이트는 화기 애매한 분위기로 종결된다. 그러다 또 한 번의 기회, 순자는 다른 사람은 알아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사실 이때 순자는 영호에게 마음을 뺏긴 뒤였다. 개그 코드가 딱 질색이라면서도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리하여 영호와의 두 번째 데이트, 조금 더 현실적인 대화를 하고 영호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결벽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젠틀한 깨끗남 영호는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은 전적으로 자기 몫이라고 공언하며 준비된 남편임을 어필했고 이틀 만에 순자는 자신의 20년 편견이 단숨에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알수록 진국인 남자, 진실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존심은 세지만 정이 넘치는, 그래서 남들을 웃겨주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며 자기 입가에도 미소를 간직하는 남자, 그런 영호를 향해 직진하기로 한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표현한다. 아무리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했고 또 그 여자를 최종 선택했다손 치더라도 끝까지 자신에게 솔직하기 위해 손을 뻗어 영호를 잡는다. 결국 그 자리에선 짝을 이루지 못하지만.
짜잔~ 대박 반전!!
2개월 후 최종 선택 그 자리에 두 사람이 나타난다. 최대한 멋지고 우아하게 차려 입고 멀리서 통통거리며 걸어오는 순자를 영호가 마중 나가 안아준다. 부끄러워하는 순자한테 평소대로 해~ 하면서 손깍지를 낀다. 그들은 2개월 전에 올랐던 작은 단상에 다시 올라가 서로를 선택한다. 7기 멤버들 편을 보면서 이 두 사람은 커플이 될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막판에 뒤집어지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런데 대박 반전으로 영호와 순자는 촬영 이후 연인이 되어 있었다. 반전 해피 엔딩이었다.
인터뷰에서 순자의 마음을 읽었다.
“울 타이밍이 아닌데 왜 눈물이 나오지?” “울 타이밍이 아닌데...” 순자는 울었고 자기를 울린, 자신의 편견을 단박에 부숴뜨리고 텅 빈 가슴을 순식간에 뜨끈한 정으로 채워버린 남자 영호를 생각했다. 학원 강사로서의 고단함이 얼마나 클지도 이해가 되었고 치열한 입시 경쟁만큼이나 치열한 삶에 얼마나 지쳤을지도 가늠이 되었다. 순수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골이 났을 거고 자신의 소신과 가치관을 가진 남자를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거다. 경력, 돈, 자신감, 혼자 살 능력 다 갖추었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의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주고 위로해 주고 웃게 해 줄 단 한 사람이 기적처럼 나타나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영호는 단단하고 따뜻하고 유머도 있는 남자니까 순자가 기다리던 그런 사람이었을 거다. 그래서 다시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40대에 만난 이 인연을 꼭 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뚝심 있게 행동한 거다. 그건 진정한 승리였다. 솔직함이 얻어낸 당당하고 멋진 승리. 브라보. 많이 닮았고 둘 다 괜찮은 선남선녀다. 천생연분이다. 외모도 생각도 성향도 잘 맞는다. 이렇게 잘 맞는 커플을 보면 내 마음도 덩달아 설렌다. 결혼식장의 풍경이 벌써 눈앞에 그려진다. 순자의 눈치를 보며 엽기 개그를 하객들에게 선물할 영호와 죽도록 싫다고 생각은 하지만 얼굴은 웃고 있는 순자의 모습. 머리 따로, 가슴 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