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가 흘렀습니다. 우리 아들이 꼼짝없이 병상에 누운지가요. 처음 입원하고 열흘은 진짜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가던지 시간의 속도가 얼마나 상대적인가를 실감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도 그동안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습니다.
열흘이 흐른 후 처음으로 TV를 켰고 열흘이 흐른 후 먹고 싶은 음식을 사다 먹었습니다. 아들의 아픔은 내 살을 후벼 파고 들어왔고 아들이 행여 잘못될까 싶은 두려움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3주가 흘러 일상으로 복귀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닌데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성경 구절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동안 수많은 생각이 뒤죽박죽 엉켜있었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혹여나 이 순간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후에 먼 훗날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 가슴이 서늘해져서 이곳에 글을 올려 자문을 구해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습니다. 브런치 작가님들 중에는 현명하신 분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다른 분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실례인 것 같아 그러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나는 동굴 속에 앉아 고요한 외침 끝에 돌아오는 나의 메아리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봅니다. 그리고 홀로 던진 질문에 조심스럽게 대답도 해봅니다. 그 대답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지금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건 시간이 한참 흘러간 후에야 알 수 있는 일일 테니까요. 지금은 그냥 우리 아들의 건강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큰아들이 3주 전에 다쳤습니다. 처음엔 친구들의 호기로운 장난과 단순한 재미로 시작된 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놀이는 불과 1분 후 우리 아들의 척추를 골절시키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순간 아들은 숨을 쉴 수 없었고 극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벤치에 누워 숨을 고른 후 안정을 찾고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자전거를 끌고 집에 걸어갈 수 있겠노라고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말에 척추가 골절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부러진 척추는 단순히 부러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압박되어 찌그러졌습니다. 찌그러진 척추는 다시 펴지지 않는다고 의사 선생님들께서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충격으로 낙상했길래 척추가 찌그러질 정도인지 아들이 숨이 턱 막혔다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렇게 활동적인 아이가 꼼짝 못 하고 병상에만 누워 여름 방학을 다 날려 버리고 있는 것도, 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되어 보고 싶은 친구들도 만날 수 없는 것도 참으로 불쌍합니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벌써 3주가 흘러갔네요. 엄마가 하루에 두 번씩은 오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길고 지루할지.
4주 입원 기간을 마치고 퇴원을 해도 끝난 것은 아닙니다. 두 달 이상 척추 보조기를 착용하고 3km 거리의 학교에 등하교해야 하고, 유일하게 체육 수업시간에 천하를 호령하는 아이가 그 시간을 뜬 눈으로만 참여하는 고역을 감당해야 하며, 좌우로 비틀거나 굽히지 않고 몸을 최대한 똑바로 펴고 누울 때를 제외하고는 항시 보조기에 의지해야 합니다. 이런 수칙부터 잘 지킬지 걱정스러운 저는 혹여나 후유증이 생기지는 않을지, 후유증이 생기면 나중에 직업 선택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척추가 더 압박되어 기형이 심해지면 또 다른 질병이 생기는 건 아닐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도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아직 키도 덜 컸는데 키 성장에 크게는 아니어도 약간은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몇 년 치의 걱정이 밀려듭니다.
제발 후유증 생기지 않도록 몸 관리 잘 하자. 눈앞의 즐거움과 편안함은 잠시 접어두고 당분간만 불편하게 지내자. 타고 싶은 자전거, 치고 싶은 탁구 배드민턴, 하고 싶은 배구 농구, 마음껏 뛰고 땀 흘리고 싶은 순간들 잠시만 내려놓자. 제발~ 잘 참아내기를.
아들이 공부를 싫어해서 치열하게 신경전을 펼쳤던 무렵, 나는 나중에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 아들을 닦달했습니다. 끝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 것도 어쩌면 무책임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들은 자기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말에 힘을 주었고 나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늘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나는 아들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음악 작곡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어찌나 척척 작곡을 잘하는지, 콩나물 대가리 하나 그려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대략 난감하고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수행평가를 준비하던 우리 모둠 방을 나와서 공용 거실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거기 있던 모둠 아이들은 더 천재적으로 작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내 몸은 너무 작고 보잘것 없어지고 마음이 사정없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어요. 누구한테 물어보고 싶어도 다들 척척 해내고 있는데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내 자신이 미워지고 속상하고 너무 슬퍼서 억장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그 꿈에서 나는 아들의 심정이 어떤 것이었나를 육체적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내색할 수 없는 그 암담한 심정, 자존심이 바닥을 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없어지는 것 같은 황망함.
눈을 뜨고 나는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바닥에 엎드려 시 한 편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을 때 아들의 책상에 올려놓았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나는 널 응원할 거야.
내 아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너 자신을 사랑하렴!
넌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니란다.
어디서든 움츠러들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해.
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완소남이니까.
그런 메시지였습니다. 아들은 별다른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아들의 책상 앞 타공판에는 한동안 그 시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샌가 아들과 나 사이에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들을 이해해 가는 동안 바란 건 단 하나였습니다. 건강하기만 해라. 건강하기만 하면 너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그게 언제가 됐든 상관없어.
아들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존재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은 저도 잘 알거든요. 그럼에도 자식을 키우다보면 조금 더 욕심이 나고 지금 더 잘 하면 훗날 더 멋진 모습으로 살아갈 거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일 테죠.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내 내려놓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건강하기만 해라, 그러면 더 바랄 게 없다, 하고 주문처럼 외우고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그 꿈을 꾼 지도 어언 2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게 된 거죠. 이번에는 진짜 아이의 건강이 걱정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말로만 되뇌었던 건강 주문이 이제는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또다시 나는 깨닫기 시작합니다. 진짜 중요한 건 몸 건강이라는 것을요. 누워만 있어야 하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건강하자. 건강해야 돼~!!
만약 평생토록 누워만 있는 상황이 된다면 어땠을까요. 생각만 해도 눈앞이 깜깜합니다. 그만하길 천만 다행이지요. 조금 키가 덜 자란다고 해도, 공부를 조금 덜 한다고 해도 건강하기만 하다면 더 바랄 게 없어집니다.
여전히 내 소망은 그렇습니다.
건강하기만 해라. 건강이 최고란다.
건강하기만 하면 너가 원하는 게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친구들이랑 자전거도 실컷 타고 말이야 .
아들의 건강을 이토록 간절히 바랐던 적은 없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입으로만 뱉었을 뿐 마음 속으론 건강보다 공부가 더 먼저라는 생각을 꿀꺽했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