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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부부로 산다는 것

신혼을 즐기다 출산을 앞둔 부부에게

by 김혜정


'결혼 적령기'는 옛말

요즘 결혼의 적령기는 예전에 비하면 한참이나 늦어졌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남녀 모두 30~35세 사이에 결혼을 한다는데 초혼이 그렇다는 것이지 재혼하는 사람들의 연령까지 평균을 낸다면 37~38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시대가 변하면서 결혼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20대 청년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절반을 차지하니 말이다. 그 이유로는 내 집 마련을 실현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1위요, 굳이 내 인생을 희생하면서까지 출산과 양육을 부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2위를 차지한다. 자기 인생의 가치를 우위에 두고 워라벨을 진정으로 향유하고자 하는 MZ 세대의 가치관이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자신의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결혼을 늦추고 결혼 후의 비극이 두려운 사람은 외로움의 뒤안길에서 방황할망정 비혼을 선택한다.

허나 한 번 실패하고 두 번째도 실패했다 하더라도 결혼 생활에서 안정과 기쁨을 누렸던 사람은 또또또 재혼하기를 원한다. 요즘 늘어가는 돌싱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사랑을 원하는, 가정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는 결혼은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게 내 지론이다. 결혼 생활이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 나간다면 성숙한 삶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나를 전적으로 이해해 주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면 결혼하자. 결혼의 적령기는 따로 없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3년이면 끝난다. 긴 인생을 함께 할 벗을 내 배우자로 맞아들이는 것이 애꿎은 연애만 반복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랑의 삼각관계



결혼한다고 해서 쭈그러졌던 내 인생이 쫘악 펴지는 건 아니다. 배우자가 자신과 찰떡궁합인지 아닌지도 결혼을 해 봐야만 알 수 있다. 연애 시절엔 간도 쓸개도 빼 줄 것처럼 행동하고 변덕스러운 성격이라 해도 손발 척척 맞춰 주지만 결혼에 골인하고 아이까지 낳은 다음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나 반복되는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고 내뺄 수 있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는 그 전과 부부간의 밀도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다.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샘솟던 연애 감정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불어난 지방 덩어리에 엉겨 붙어 뒤룩뒤룩 살찐 몸매를 바라보면 자연스레 성욕도 감퇴된다.


반면 앞으로 보고 뒤로 보아도 이쁘기만 내 아이는 나를 힘들게는 할지언정 내 몸속에 엔돌핀을 돌게 해 주고 모성애를 자극시킨다. 남편은 안중에 없어지고 아이만 보인다. 이때부터가 결혼 생활의 위기를 맞이하는 시기다.


아빠는 엄마만큼의 부성애를 갖고 태어나지 못했으므로 아이를 바라보아도 엔돌핀이 샘솟지 않는다. 이쁘기는 하지만 온몸이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기를 아이만큼 사랑해주지 않는 아내에게 속으로는 섭섭함을 느끼는데 그걸 표현했다가는 쪼잔한 인간이라는 누명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태연한 척한다.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태생부터 사랑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인 것이다.


남자는 줄곧 아내만 바라보지만 여자는 아이를 출산한 후 남편과 아이에게 사랑을 배분한다. 실은 아이에게 80~90%의 사랑을 쏟게 된다. 그러니 이때부터가 삼각관계의 시작인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뒷모습을, 아내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기. 끝날 듯 말 듯 좀처럼 끝나지 않는 삼각관계에 남편의 한숨은 깊어만 가고 아내의 짜증은 늘어만 간다. 서로 좋자고 한 결혼인데 귀하디 귀한 아이가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어느샌가 사랑의 짝대기를 분질러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 러블리한 상황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인데 서로 심통만 늘어난다.


아이를 출산한 후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은 모성애 넘치는 아내를 귀하게 여겨줘야 하고 아내는 해바라기 남편을 조금, 때론 많이 신경 써 줘야 한다.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신경이 아이에게만 쏠리면 삼각관계마저도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기둥을 세우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며 기둥을 세우고 울타리를 쳐야 한다.



부부간에는 솔직한 대화가 중요하다



서운한 건 서운하다, 내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냐, 나는 이런 부분이 싫다, 좋다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부라야 건강한 부부로 살아갈 수 있다. 마음속에 응어리를 그냥 두면 그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랑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하게 굳어버리고 만다. 시간이 흐르고 흐른 후에 그동안 묵혀 두었던 옛날 얘기를 꺼낸들 배우자가 그 마음을 알아줄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응어리로 남기지 말고 그때그때 해소해 주어야 한다. 부부 관계가 매끄럽지 않고 서로 얼굴도 마주 보기 싫은 사이라면 그 감정은 고스란히 마음속에 저장된다.


이왕 맞을 거면 매도 빨리 맞는 것이 낫다고 했고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나머지 단추도 잘 들어맞는다고 했다. 출산 직후부터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을 겪게 되면서 부부가 엄청 당황하게 되는데 그땐 서로 손뼉을 부딪치고 손을 맞잡아야 할 때이다. 혹시나 내가 먼저 내미는 손이 배우자에게 부담이 될 것을 염려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면 그런 마음도 얘기해야 한다. 내가 힘드니 도와달라고, 당신이 이렇게 해 주면 정말 좋겠다고 마음을 하소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남자는 여자의 속마음을 모른다.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초인적 능력을 애초에 신이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부 관계에서 솔직한 대화와 타협, 그리고 공감의 시그널이 필요한 이유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힘들고 민망하다. 솔직한 내 심정을 꺼내 보이는 것이 한 편으로는 불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말 안 해도 알아주겠지 하고 어물쩍 넘어가다간 나중에 서로를 미워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미움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대화를 끊어버리고 대화가 사라지면 종국엔 결별만이 남는다. 비참한 최후를 맞기 싫다면 지금 당장 내 마음을 고백하라. 잠깐, 고백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바로 말투다.



말투를 바로잡자



말투는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준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 헤어스타일이 인상의 70%를 좌우하는 것과 같이 말투는 언어의 70%를 차지한다. 걸음걸이에서 성격이 배어 나오듯이 말투에서도 사람의 인품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할 때는 굉장히 고상하고 품위 있는 말투를 사용하려고 애쓰지만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순간 돌변한다. 밖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에 덕지덕지 붙었던 때를 떼어내듯 화살처럼 쏘아붙이고 곤봉처럼 휘두르며 짜증 섞인 말을 던져 버린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걸 받아줄 수 있는 건 아닌데 불꽃놀이같이 펑펑 터트리면 그 잔재는 어떡하란 말인가.


만만한 게 가족이고 부부라서 그렇다고 하면 안 된다. 부부 사이일수록 품위를 지켜 주어야 한다. 같은 말이어도 조금 더 따뜻한 언어를 사용하고 문장의 끝을 올려서 질문해 주어야 한다. 옆에서 듣기만 해도 거북할 정도로 딱딱한 말투로 '이거 해. 저거 해.' 하며 명령을 쏟아붓거나 '이거 했어? 저거 했어? 으이구~ 내가 하고 말지.', '그걸 말이라고 해? 당신이 뭘 알겠어~.' 하며 빈정거리며 말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심한 모욕감을 준다.


부부의 관계가 당사자는 물론 건강한 가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대신 이렇게 말하자. '오늘 이거 해주기로 했는데 혹시 알고 있어?' '시간 없으면 내가 할까?' '자기 몸 안 힘들면 같이 산책 나갈까?' '얘기 들어주니까 내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고 말이다. 우리 남편의 경우는 결혼 초반에 존댓말을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었다. 내 말투를 보면 싸울 일이 많을 것을 우려한 처사였을까? 그런데 연애 당시에 이미 반말을 사용했던 터라 난 존댓말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존댓말이 결정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상대방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인 거니까. 일단은 배우자를 먼저 이해하고 남녀의 성별 차이를 인정하고 그리고 말투를 최대한 가다듬자. 그래야 갈등이 생겼어도 냅다 쏘아붙이지 않고 부드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투가 중요한 이유는 온화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사랑하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속상해하다가

또다시 사랑으로 돌아온다.

18년 간 부부로 연을 맺으며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건

말이고 말투였다.

그 말 때문에 상처받고

그 말 때문에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우리는 언제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

갓 출산한 부부, 혹은 출산을 앞둔 부부라면

진심을 표현할 줄 아는 근사한 말로써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사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을 주제로 쓰려고 했다. 그런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바로 <좋은 부부, 건강한 부부>라는 것. 그래서 이 주제를 먼저 올려 본다. 맞잡은 손 부디 놓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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