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편견을 버리다
교육 시스템은 너무도 획일적이며 억압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는 내게 만성적인 불만을 품게 되었고, 나는 만성적인 고통(무의식적인 분노를 포함한 고통이다)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서른 살에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 아버지는 무척 기뻐한 듯하지만, 그 시점에 우리 부자 관계는 이미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나는 지금도,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버지를 줄곧 실망시켰다, 기대를 저버렸다 하는 기분을 – 또는 그 잔재 같은 것을 – 품고 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넘어서부터는 ‘사람은 각자 개성이란 게 있으니까, 뭐’ 하고 떨어 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십 대의 내게는 어느 모로나 그다지 마음 편한 환경이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막연한 가책 같은 것이 따라다녔다. 지금도 때로 학교에서 시험 치는 꿈을 꾼다. 나는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재깍재깍 흘러간다. 그 시험에 떨어지면, 나는 몹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도... 그런 꿈이다. 그러고는 대개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뜬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책상에 들러붙어 주어진 과제를 하고 시험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받는 것보다,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듣고, 밖에 나가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마작을 하거나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이 옳았다고, 지금은 확신을 갖고 단언할 수 있지만.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 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