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ene Aug 26. 2021

긴장과 포기

2년 전, 건강 검진했을 때의 일이다.

위내시경을 처음 해보는 날이라서 그랬을까.

내 생에 처음으로 혈압이 높게 치솟았다.

5분간 휴식 후에 다시 정상 혈압으로 떨어져서 무사히 검사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혈압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혈압계 앞에만 서면 ‘또 오르면 어떡하지?’ 걱정하게 되고 이 걱정은 내 심장을 방망이질하며 혈압을 보란 듯이 치솟게 했다.

5분 후에 다시 잴 때는 정상 수치로 떨어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마저도 점점 세 번째 측정할 때가 돼서야 괜찮아졌다. 혈압 한번 잴 때마다 서너 번을 재야 하다니 나의 이런 예민한 성격이 몹시 까다롭고 피곤하게 느껴졌다.


“여보, 혈압 재는 게 너무 스트레스야.”

“그럼 아예 신경을 쓰지 말고 재지 말아 봐.”


그렇게 혈압계를 멀리해보았지만 생각은 계속해서 걱정을 생산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여보, 혈압을 측정하지 않아도 불안한데?”

“뭐가 그렇게 불안해? 혈압이 높으면 어떻게 될 거 같은데?”

“약을 먹게 되겠지.”

“먹으면 되지 뭐.”

“약 먹기 싫어,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된다잖아.”

“그럼 안 먹으면 되지.”

“그럼 죽잖아.”

“혈압이 높다고 죽는다고? 하하하. 그런 걱정은 마. 근데 나는 내가 혈압이 높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데.”


남편과 얘기하다 보니 아.. 나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나와 남편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니! 나도 남편처럼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편안할 수는 없을까. 또 한 번 부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겠지만 나는 왜 유별나게 혈압 하나에도 겁을 내는 것인지, 게다가 아직 고혈압도 아닌데 앞으로 고혈압이 될까 봐 민감하게 반응하며 현재를 망치고 있는 걸까.


긴장을 잘하고 예민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어린 시절, 엄마의 자살 기도를 목격한 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허구한 날 싸우는, 아니 아빠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엄마가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다며 고작 대여섯 살인 내가 보는 앞에서.

나는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아빠에게 달려가고 아빠는 엄마를 들춰 업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뛰어가던 그날의 일...


어쨌든, 나는 이런 불편함에서 나를 구출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혈압 측정 전에 천천히 깊게 호흡을 해보라는 글이 있었다. 나에겐 별로 소용이 없었다.

혈압이 좋아진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라는 영상도 봤다. 나에겐 통하지 않았다.

혈압이 오른다는 건 내가 위기 상황에서 더 빠르게 반응하기 위한, 내 몸의 좋은 스트레스 반응이야.라고 감사하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 역시 그저 그랬다.

명상에서 배운 대로 ‘아 나는 긴장을 잘하고 긴장하면 혈압이 높아지는구나. 그래도 괜찮아.'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려 했지만 '긴장하지 않고 싶다. 혈압이 높은  괜찮지 않다.'라는 거부감이 비집고 들어오는 힘은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나에게 통하는 방법을 하나 찾았는데, 바로 노출법이다.(노출 요법이란 불안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행동 치료 중 하나로 불안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풍덩 노출시키는 방법이다.)

한동안 혈압을 재지 않다가 아예 제대로 된 혈압계를 구매해서 수시로, 어쩔 때는 1분마다 혈압을 재기 시작했다. 질리도록 재서 혈압계 앞에서 무뎌질 수 있도록.

그러다 보니 측정 때마다 정확히 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뭐랄까. 노출법 때문이라기보단 [포기]라는 작용 때문에.

재고 재고 또 재니 지쳐버려서 ‘아 몰라, 오르려면 오르던가, 귀찮다.’라는 지경이 되니 오히려 혈압이 오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에게는 지금까지 효과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