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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찻집 주인장 Dec 08. 2019

[안녕, 영국] 빈티지에 눈뜨다

보물 찾기

  동네를 걷다가 *중고 상점을 발견했다. 큰 유리창 너머로 촌스러운 꽃무늬 접시와 찻잔들이 보이기에 잠깐 걸음을 멈췄다. 궁금한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선 가게 안에는 온갖 물건이 가득했다.


  장식장, 소파, 테이블 같은 가구부터 옷, 신발, 책은 물론이고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가지각색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모두 기부받은 물건들이라고 하는데 언뜻 보아서는 사용하던 물건인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깨끗하다.


  금박을 두른 찻잔 하나가 눈에 띄었다. 보자마자 마음에 꼭 들었다. 찻잔 몸통에 가늘게 긁힌 실금이 보였지만 상관없다. 똑같은 물건은 한 개, 혹은 두 개 정도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결정해야 한다.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첫눈에 반하는 경우는 점점 드물어지기에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한다.


Royal Albert Bone China, 'Regal Series'


 첫사랑의 설렘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풋풋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걸 보면 이미 빠져든 게 아닌가 싶다. 금박의 눈부심 때문만은 아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에서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린 우연의 효과가 제법 컸기 때문이다.   


  보물 찾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차곡히 진열되어 있는 머그잔과 찻잔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잔을 하나 발견해낸 것으로 마음이 금세 들뜬다. 백화점 진열대에 세련된 자태로 놓여 있는 신상품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세월의 가치를 지닌 빈티지는 그것대로의 매력을 머금고 고즈넉이(잠잠히 다소곳하게) 놓여 있다. 자신을 알아보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것처럼, 조용하고도 수줍게.




  사람의 인연 또한 그렇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우연히 맞닥뜨린 누군가의 고즈넉함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은은하게 감도는 향수의 잔향처럼 오래 머문다.


  뜻밖의 만남이 주는 즐거움을 한 번 알아버리고 나면, 인연도 보물 찾기를 하듯 ‘찾아낸다.’ 진짜 보물은 쉽게 찾을만한 곳에 숨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여, 모두의 눈에 띄는 세련됨과 화려함보다는 고요하게 잠잠히, 다소곳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물 같은 인연에 시선을 둔다.


  빛바랜 찻잔과 받침을 잘 닦아 두었다. 원래의 화려한 색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빛깔도 이대로 참 그윽하다. 곁을 지나며 볼 때마다 처음 만났을 때 들떴던 마음이 떠오른다. 제법 그 잔상이 강렬하다.


  빈티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족: 영국의 기부 문화

영국에는 ‘Charity shop’이라고 불리는 중고 상점이 곳곳에 있다. 기부받은 물품을 판매하여 얻은 수익을 구제기금으로 활용한다. 구세군(Salvation Army), 옥스팜(Oxfarm), 영국심장재단(British Heart Foundation) 등의 민간단체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영국 암 연구소와 심장재단에서 운영하는 구제 상점. Birmingham,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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