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행복 호르몬 4종 세트를 모두 분비한다.
요즘 나를 제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일이다.
개인적으로 경험해 보니 일은 행복 호르몬 4종 세트를 전부 분비할 수 있다.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엔도르핀 모두 일의 다양한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통해 행복을 찾아라.’ 외치는 것일까? 결국 일이 행복과 관련된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면 기왕에 하는 일이 내가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일, 잘하는 일, 행복 호르몬 4종 세트를 더 많이 분비할 수 있는 일이면 좋은 게 아닐까 싶다.
작년 ‘코칭대화’라는 것을 접했다. 코칭은 누군가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거울처럼 비춰주며 상대방의 잠재력을 이끌어내 줄 수 있는 대화기술이다. 한동안 ‘타인에게 공간을 잘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경청하는 사람이 되자.’ 주문처럼 되뇌었던 내게 마법과도 같이 코칭이 다가왔다. 내가 평생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앞날의 출발선에서 코칭과의 만남은 필연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과거에 내 머릿속이 가득 차있을 때 누군가와의 대화가 마음을 비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된 적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판단 없이 바라보고 지지해 주는 그 기분. 힘든 시기를 겪으며 그 기분이 얼마나 귀한 경험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거울과 같은 공감이 나의 복잡함을 단순하게 만들었고 용기를 주었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땐 상대방의 이야기가 곧잘 들렸는데 내 마음에 여유 공간이 하나도 없자 타인의 말이 잘 안 들어오더라. 미국에서 고립되었던 나와 남편은 대화할 상대도 서로 뿐이었다. 그런데 우린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서로를 공감해 주기보단 힘듦을 토로하기 바빴다. 늘 나 자신을 방어하고 변명하는 대화를 늘여놓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우리에겐 변화가 필요했고 우선 나부터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다짐했다.
경청의 구체적인 방법은 알 수 없으나 우선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암시였다. ‘나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된다.’ 등의 내용을 담은 주문을 매일 아침 소리 내어 되뇌었다. 그렇게 한 반년이 지났을까.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반복하며 말했던 이 문장에 대한 해답을 하늘에서 준 것이다. 경청과 공감의 기술을 알려주는 ‘코칭’이란 게 있다는 사실이 정말 얼마나 하늘이 내린 선물 같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부단히 코칭을 배우며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상대방에게 잘 다가가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깊은 연결이 우선되어야 함을 알았고 깊은 연결을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이고 갖가지 방법을 시도하며 나와 만났다. 넘치는 열정으로 단숨에 자격도 땄고 20대와 30대를 대상으로 진로상담일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올해 드디어 심장이 뛰는 일을 발견했다. 보육원 출신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코칭 프로그램이다. 한 아이를 1년간 코칭해 주며 그 아이의 꿈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돕고 있다.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마음도 따듯하고 매사에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내게 찾아왔다. 세상에 내가 타인에게 공간을 내어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부단히 갈고닦은 노력 끝에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아이와 연결되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한 아이가 매칭되어 나에게 연락처가 전달되던 순간, 넘치는 마음을 다잡고자 선배 코치님들께 어떻게 하면 코칭을 더 잘할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하던 순간, 나의 빛이 너무 뜨겁거나 차갑게 느껴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아이와의 거리를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 고민하던 순간, 상담을 더 잘하고 싶어 어떻게 더 배우고 실력을 갈고닦아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카카오톡 연락처를 들여다보며 마음을 나누던 순간, 평소에는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잘 들여다보지도 않지만 나의 프로필 사진이 너무 단란해 보이는 가족사진으로만 되어있지는 않을까 고민하며 한 아이에게 선입견을 주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순간, 코칭은 줌으로 진행하면 되지만 온라인으로의 만남과 실제의 만남은 너무나도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반드시 그 아이를 만나러 두 시간 반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야겠다 결심하던 순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차표를 예매하던 순간, 만나러 가는 길에 마주한 택시 기사님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 따사로운 봄날 학교 안 캠퍼스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던 순간, 심지어는 책 속의 저자가 전해주는 메시지와 오늘의 나의 행복감이 너무 적절하게 들어맞아 감동이라고 느꼈던 순간,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헤어지며 너무 반가웠다고 내가 포옹을 해주던 순간, 아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ktx기차역에서 선로 끝에서 다가오는 기차를 보며 지금 내가 보는 이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고 느꼈던 순간, 등
한 아이 덕분에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사물이 연결되는 모든 순간들에서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나는 늘 너무나도 많은 축복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다고 생각했다. 내가 싹을 잘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잘 뻗을 수 있었던 것도 비옥한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때문에 나도 누군가에게 늘 아낌없이 내어주는 대지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내가 한 아이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를 해줄 수 있는, 깊은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내게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모르겠다.
이 행복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만족감, 감사함, 사랑, 따듯함, 연대감, 애착과 더불어 성취감, 기대감과 흥분까지 도파민, 엔도르핀, 세로토닌, 옥시토신이 모두 관여하고 있었다. 도파민으로부터는 심리상담과 코칭이라는 일을 맡으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성취감이 있었고 동기부여를 느꼈다. 두 아이를 모두 유치원에 보내고 부랴부랴 10분을 남기고 KTX역에 도착하며 바쁜 와중에 지방에 다녀온 일을 수행해 낸 나 자신에게 엔도르핀은 행복감을 주었다. 따사로운 봄날씨와 햇살이, 길가에 피어있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이렇게 여유를 내어 지방에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이 모두 내게 세로토닌의 감사함과 평온함과 안정감을 주었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며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애착도 생기고 교정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어서 나의 옥시토신도 행복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사실 호르몬을 위와 같이 딱 분류하여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만 그저 하나의 일이란 다양한 영역의 행복 호르몬과 관련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난관을 극복해 냈을 때의 성취감, 일 자체에 대한 만족감과 감사함, 일에 대한 정신적 혹은 물질적 보상,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며 느낄 수 있는 사랑과 연대감, 공감 등 다양하다.
때문에 다른 어떠한 활동보다도 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종류가 다양하니 나이 먹도록 일을 놓지 말아야겠다 싶은 확신이 든다. 여기서의 핵심은 그냥 하는 일이 아닌,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야 그저 모두가 뚝배기처럼 열심히 살았던 세대다. 스스로의 마음을 돌볼 겨를 없이 진로를 정했으면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노력했어야 하니 적성이니 천직이니 하는 소리도 사치였겠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다. 더 이상 조급해하지 말고 더 이상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의 목소리를 찾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며 행복을 위한 나만의 ‘일’을 찾아 나아가야 할 때다.
조만간 좋아하는 일을 찾아나가는 나의 긴 여정에 대해서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