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母乳) 딜레마
출산 10일차에 적은 일기
임신기간 동안 여러가지의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난 그 중에서 제일 싫었던 점이 가슴이 커지는 것이었다. 임신 후 속옷 사이즈가 세컵이 커질 정도로 가슴이 커졌고 무거운 가슴에 어깨도 아프고 뭘 입어도 옷 태가 안나는게 싫었다.
출산만 하면 가슴이 작아질 줄 알았다. 임신으로 인한 변화니까 출산으로 해결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임신 기간동안 커졌던 가슴은 모유를 만들기 위한 유선의 발달 때문이었고,
출산 후 가슴은 모유를 만들어내면서 팅팅 붓기 시작한다.
가슴이 붓는다는건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말 그대로 딱딱한 돌덩이 두개가 얹혀진 기분이다.
팅팅 부은 가슴을 풀어주지 않으면 출산보다 고통스럽다는 젖몸살이 오는 것이고 팅팅 부은 가슴을 풀어주려면 고통을 감내하며 가슴마사지를 받고 만들어진 모유를 어떻게든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임신 전에는 임신, 출산에만 관심이 있었고 모유라는 세계에는 관심도 없었다.
임신 후에는 출산, 육아에만 관심이 있었다.
모유는 나오면 먹이고 안나오면 그냥 분유 먹이지 정도의 생각만 있었다. 요즘 분유도 잘 나온다 생각하여 모유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는 예비맘이었던 것이다.
난 모유가 나온다는 것에 유축지옥과 직수자세의 어려움이 있는지는 몰랐고,
분유를 먹인다는 것에 분유를 먹이고 싶어도 계속 만들어지는 모유를 유축해야 내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다.
모르고 당하는게 차라리 나은 경우도 있지만 모유의 세계는 모르고 당하기에는 너무 큰 변화였다.
출산으로 인해 몸이 회복도 되지 않은 3-4일차 부터 젖이 돌기 시작하며 답답해서 속옷을 안입고 있는데 갑자기 젖이 뚝뚝 떨어지고 옷이 흥건히 젖어버릴때는 너무나도 당황스럽다. 수치스러운 감정이 들기도 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모유양은 다르다고 한다. 보통 모계 쪽 유전자가 50% 정도의 영향을 준다고 한다.
나는 마사지 선생님들이 말하길, 유선이 타고나서 모유양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모유양이 적은 엄마들은 모유 촉진차, 맘라떼모아 같은걸 마시면서 모유양 늘리기에 집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유양이 많다는 건 수시로 유축을 해주지 않으면 가슴이 계속 붓고 직수를 하는게 제일 좋지만 이맘때 신생아들은 빠는 힘이 부족하고 초보맘들이 제대로 직수를 하기는 어려워서 유축을 해서 모유를 얼려둬야 한다.
게다가 아기가 기저귀 발진 때문에 분유만 먹어야 해서 직수 연습도 못하다보니 유축을 하는 보람도 없고 그냥 내가 젖소가 된 기분이 든다.
특히, 조리원 입소 후에는 모두가 본격적으로 젖젖젖!! 하기 시작한다.
하루 일과가 밥 먹고 마사지 받고 유축하는게 전부다.
젖 이라는 글자를 쓰는 것도 아직 부끄러운데 젖 얘기를 빼 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되버렸다.
나처럼 모유욕심이 없던 사람은 엄마의 회복보다 아기를 위한 모유양 늘리기에 집중되는 산후조리원의 분위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처음에는 4시간 간격으로 30분간 꼬박 유축을 해내다가(30분 유축이면 30분만 지나서 바로 잠들 수 있는게 아님...) 수면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살이 너무 빨리 빠져서 이러다 내 몸이 축나겠단 생각에 새벽에는 유축을 포기하고 가슴이 아프더라도 잠을 자기로 선택했다.
출산 후 이렇게 모유 스트레스를 받은 이유는 아마도 아기를 하루 한번만 안아볼 수 있었던 5박6일의 입원기간과 조리원 입소 후에도 기저귀 발진 때문에 3일차에야 모유수유 연습을 시작한 영향도 있는거 같다. 왜냐하면, 서툴지만 처음으로 아기가 모유를 먹는 모습을 보니 유축만하던 젖소가 된 기분에서 진짜 모유(母乳)를 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 몸에 베이는 아기의 냄새도 기분이 좋다.
아기가 젖을 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나와 합이 맞아질 수록 더 새로운 감정이 들겠지만 그렇다고 모유 딜레마가 끝나는 건 아니다. 직수를 할지, 분유와 모유를 같이 먹이는 혼합수유를 할지, 분유만 먹이는 완분을 할지 등의 선택은 엄마의 상태와 아기의 상황에 따라 또 달라질거다.
하지만, 임신, 출산, 육아로 분류될게 아니라 임신, 출산, 모유, 육아로 분류되야 할 정도로 모유는 출산 후 엄마가 맞이하게 되는 첫번째 딜레마인건 확실하다.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알고 당하는게 낫다.
수유 선생님께 모유가 엄마에게 좋은 점이 뭐냐고 물으니 바로 되돌아오는 대답이 아기한테 좋으니까 엄마한테 좋은거라고 하신다.
질문을 바꿔서 엄마 건강에 좋은건 뭐냐고 물으니 살이 빨리 빠지고 행복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나와서 산후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적어진다고 한다.
가슴 석회질도 빠져서 가슴건강에도 좋고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수유하면 칼슘이 빠지는거 아니냐고 되물으니 단유 후에 오히려 칼슘이 빨리 생성된다고 하신다.
나중엔 단유하기 서운해하는 엄마들이 많다고 하는데 지금은 잘 믿기지 않는다. 직수만큼 편한것도 없다고 하고 완모하기에 너무 좋은 가슴이라고들 하는데 지금은 믿기지 않는다.
과연 너와 나의 모유세계는 어떻게 될까.
오늘 처음으로 직수를 성공했다.
한쪽씩 15분 이상 성공한건 처음이다. 수유 후 몰려오는 허기짐에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저녁을 먹고도 또 밥을 먹었다.
아가야, 우리 일단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졌으니
내일도 한번 잘 해보자!
아직 세상에 태어난지 열흘밖에 안된 아가야,
엄마도 처음이라 아직 혼란스럽고 힘들지만
잘 부탁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