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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ge Lutens Aug 22. 2023

<전어팔이 아저씨>

얼마 전 혼자 떠난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첫 느낌은 꿈꾸다가 온 기분이다. 밤에 도착해 심야버스를 타고 집에 내려오니 아침이었고 곧바로 짐만 둔 후 출근을 하니 모든 것이 똑같다. 45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자 8시 30분에 집 앞 정류장에서 탄 후 9시까지 출근하는 루틴이 여행 갔다왔다고 달라질 리는 없다. 익숙한 나의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직 정리가 안된 캐리어와 잔뜩 사온 물건들, 지갑 속에 들어있는 다른 언어로 적힌 영수증이 여전히 잔상을 뿜어낸다. 아, 나 오늘 아침에 여행을 마쳤구나. 


여행모드가 되면 늘 귀에 꽂고 다니던 에어팟 대신 구글맵을 켠다. 그리고 혹시나 내 소지품이 분실될까 늘 염려하며 주위를 살피느라 신경이 곤두서있다. 눈 앞에 보이는 모습들이 모두 새로워 음미하다보면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곤 한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호의적이다. 하루는 파르페를 먹고 계산하려고 하니 돈이 부족해서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휴대폰을 가게에 두고 갈테니 호텔방에 가서 돈을 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구글맵도 없이 낯선 거리를 헤매었다. 길을 잃겠다는 걱정보다 빨리 갔다가 돌아와야 의심을 안할텐데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어찌저찌 찾아서 가게로 돌아가 가격을 지불하고 미안한 마음에 팁을 조금 건네었다. 한사코 거절하셔서 드리진 못했으나 이방인으로써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다행히도 그 진심이 느껴졌는지 언어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여행은 마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로를 거니는 것과 같다. 어디론가 떠난 낯선 곳에서 누군가의 일상이자 공간 속을 한발짝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다. 특별한 오늘 속에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뒤섞여있다. 들떠있는 기분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늘 위에서 받쳐주고, 마음에 드는 옷을 사게 만들도록 호객행위를 하고, 주문이 들어오는대로 같은 음식을 일정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의 특별하지 않은 하루들이 내게 특별한 하루를 선사한다.


돌아오는 날은 밤에 공항에 도착하여 새벽에 이동하여 내일 아침에 출근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바로 본가로 가는 버스가 없어 다른 곳을 거쳐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자 새벽 3시가 되어 도착하였다. 처음 와보는 낯선 곳에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하고, 두 손엔 캐리어와 짐들이 가득해서 터미널 안 대합실에 머물고 싶었으나 규정상 안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근처 맥도날드에서 빅맥 세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시켜 기다린다. 가능한 오래 시간을 때우기 위해 라지 세트, 커피 역시 가장 큰 걸로.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첫차를 타고 출발하기를 기다리며 졸린 눈을 감아 잠시나마 잠을 청하려 할 때, 뒷쪽 대각선 어딘가에서 대화소리가 들려온다. 잠결에 들었던 거라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대화내용으로 기억한다.


“어디서 오시는 것입니꺼?”


“내서에서 아는 기사가 있어가, 거 타고 오는기라.”


“전어는 많이 팔았십니꺼?”


“고마 쪼매 팔았지. 지금도 삼천포로 가가꼬 이제 또 진영 가서 팔아야제.”


“욕 보시네예.”


“밥벌어 묵을라면 이렇게 해야지 뭐 우짜겠노. 다 이리 사는 거 아이긋나.”


대화내용에서 나는 일상을 맞이했다. 전어팔이 아저씨의 고되고,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이 내게는 마지막 여행이었다. 메모장에 간단한 키워드만 적은 후 다시 나는 눈을 붙였다. 첫차가 출발한다. 나 역시 전어팔이 아저씨처럼 시시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속에서, 훗날 누군가에게 특별한 티끌이 될지 궁금하고 흥미진진하다. 때로는 시시함 속에 특별함을 스스로에게 선물하자, 언제나 여행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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